[추천] 요리계급전쟁 - 흑백요리사 : 모처럼 넷플릭스 정주행
넷플릭스, 한동안 뜸했었다.
연휴 동안 넷플릭스에서 '무도실무관'을 봤다.
극장 가서 본 베테랑2 못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주말엔 '흑백요리사'.
'시간 순삭' 느낌으로 4화까지 바로 정주행했다.
(10개 에피소드 중 4화까지 공개한 상황이다)
[스포 유의]
백수저로 이름 붙인 베테랑의 경험과
흑수저로 명명한 무명의 혈기가 맞대결하는,
'요리 계급 전쟁' 포맷을 표방하고 있다.
피지컬 100의 요리버전처럼
100명의 요리사가 나와 대결한다.
먼저 80명의 흑수저 가운데 20명을 추리고,
백수저 20명과 1:1 대결을 펼친다.
4화까지 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우둔살대결이었다.
무척 대조적이다.
흑수저 '장사천재 조사장'은
조선시대 샤브샤브 컨셉으로
대형 '전립투' 및 우둔살, 야채 등을 활용하며,
다양하고 풍성한 요리를 만들었다.
반면,
노련한 백수저 이영숙님(한식대첩 승자)은
달랑 놋그릇 하나를 내놓았다.
미나리를 우둔살로 말아서 지져낸 말이와
채소를 우려낸 미소곰탕 국물이 담겨 있었다.
백종원과 안성재(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 쉐프),
두 심사위원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
백수저의 승리!
대결 초기 흑수저 조사장은 백수저 이영숙님이 우둔살을 갖고 완자나 구이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백수저 이영숙님은 뻔한 걸 하기 싫었다며 "새로운 걸 찾으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라며 색다른 맛을 만들어냈다.
흑수저 조사장의 피드백이 와 닿았다.
"내가 10년동안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참 덜어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걸, 오늘 진짜 너무 크게 깨달았어요."
개인적으로 요알못(잘 모른다)이지만,
이영숙님이 말이를 지져낸 뒤, 기름기가 배인 걸 없애기 위해 미소곰탕 국물로 데쳐내는 부분 등 '맛'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섬세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마치 건축물을 설계하면서 여러 조합을 고려하는 과정처럼,
여타의 많은 작업들에 동반되는 '고민 내지 문제'와 그걸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창의성'을 정의하기는 참 어렵지만,
'뻔한 걸 내놓기 싫어서 고민을 거듭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바로 그런 과정에서 불꽃이 튀듯 튀어나오는 아이디어가 얼추 비슷한 개념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본질에 집중하고 핵심을 간명하게 꺼내는 고수의 면모.
(앞선 심사과정 중에서, "맛도 좋고 다 좋은데 쓸데없이 꽃잎을 얹은 게 마음에 걸리더라"는 안쉐프의 심사평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대결을 통해 '덜어냄의 미학'을 깨달은 후배.
선배는 후배의 어깨를 토닥이며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다.
참 보기 좋았다.
P.S.
요리계급이 아닌, OTT 계급으로 보면 넷플릭스는 귀족 계급이라 하겠다.
1000평의 공간에 조리기구 및 식재료들을 제대로 갖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쉬움없이 돈 쓰고 지원해준다...' 그런 인식을 뒷받침하는 작품이구나 싶다. 그런 측면에서 넷플릭스는, 공격적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구독료 덜 아깝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커진다.
이미 시장내 독주자인데, 압도적 자본력 기반으로 오리지널 투자규모가 남다른다보니... 토종 OTT사업자들에겐 경쟁전선의 장벽이 더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연말에 오징어게임2가 나오면 더 그럴 듯 하다. 국내 제작사들 또한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가 더 공고해질 듯 싶다. 무조건 토종을 우선하자는 게 아니라, 건강한 콘텐츠 제작 유통 생태계 조성은 멀어저겨나는 불편한 느낌 때문이다.
이미 플랫폼 전쟁에선 합병 움직임 포함해 치열한 노력을 경주중이고 제작진영에서도 생산적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어 보인다. 말 그대로, 창의적인 해법과 꾸준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력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