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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Sep 04. 2024

연재소설_1화 초대할게. 나의 지옥으로.

침묵이 감도는 교실. 스무 명의 학생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교탁 옆에 선 전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민준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맞선다. 고양이처럼 뾰족 솟은 눈이 먹이를 찾는 짐승의 것처럼 날카롭다. 맞다. 먹이를 찾고 있다. 누가 먹이로 적합한지.


“자, 자! 여기 보세요!”


담임이 손뼉을 쳐 아이들을 집중시킨다. 커피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슬랙스를 받쳐 입어 제법 중후해 보이지만, 그래 봐야 이십 대 초반에서 중반쯤에 불과하다는 것을 민준은 안다. 신선한 피 냄새는 포장지로는 감출 수 없으니까.


“우리 반에 두 명의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음…… 민준이가 먼저 소개해 볼까요?”


전학생을 받는 게 익숙지 않은지 담임의 목소리가 떨린다. 정작 전학 온 민준은 아무렇지 않다. 왼편에 선 여자아이도 그래 보인다. 연신 입술을 옴짝달싹하는 게 오히려 입을 빨리 열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다.


“난 한민준.”


짧은 소개가 끝나자 정적이 흐른다. 담임이 무언가를 더 기대하는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보지만, 안타깝게도 민준은 뜻대로 해줄 마음이 전혀 없다.


“아, 아하하하……. 민준이가 많이 긴장했나 봐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차차 친해지도록 해요.”


긴장한 건 너 아니야? 민준이 가소로워하며 담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태연한 척 양 눈매를 한껏 구부려 미소 짓고 있지만, 입 주변 근육은 안쓰러울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다. 이 여자로 먹잇감으로 바꿀까? 그녀를 집에 데려가는 상상을 해 보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영이가 소개해 볼까요?”


담임이 여자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민준도 담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귀를 기울인다. 여자아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양손을 흔든다.


“안녕, 얘들아!”


어우, 깜짝이야. 민준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며 왼쪽 귀를 틀어막는다. 영이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쓸데없이 우렁찬 탓이다. 하지만 영이는 작게 소리를 내는 법을 모르는지 방금 그 목소리 크기 그대로 소개를 이어 나간다.


“난 주영이야. 성이 주, 이름이 영. 외자야. 이름 특이하지? 그런데 성격은 전혀 특이하지 않아. 코노 가는 거 좋아하고, 떡볶이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해. 특히 우리 집에 같이 가서 노는 거 좋아해. 오고 싶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줘. 언제든지 초대할게.”


민준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방금 민준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영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탓이다. 언제든지 초대할게, 초대할게…, 초대할게……. 그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돈다.


‘나도 초대해 줘, 영이야.’


초대받을 생각에 입꼬리가 제멋대로 솟는다. 황급히 손으로 가리고 무표정을 유지한다.


“그러면 자리를…… 민준이가 창가 쪽에 앉고, 영이가 복도 쪽에 앉을까요?”


담임이 가리킨 자리를 본다. 첫 번째 줄 맨 뒤에 있는 책상 위로 창문을 뚫고 침입한 4월의 볕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제가 복도 쪽에 앉을래요.”

민준이 단호하게 말한다.

“어…… 이유가 있을까, 민준아?”

담임이 난감한 기색을 보이지만 무시하고 마법의 말을 내뱉는다.

“그냥요.”


이렇게 하면 교사나 아이들의 귀찮은 관심을 차단할 수 있다. 햇볕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불필요한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다. 오랜 세월을 학생으로 살면서 터득한 지혜다.


“어…… 그럼 영이한테 양해를 한 번 구해볼까?”

그러면서 담임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영이에게 묻는다.


“영이야, 민준이가 복도 쪽 자리가 좋은가 보다. 혹시 영이가 양보해 줘도 괜찮을까?”


“선생님! 전 어디에 앉아도 괜찮아요. 민준이한테 양보할게요.”


영이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망설임 없이 창가로 걸어간다. 계획대로 복도 자리에 앉은 민준은 눈동자를 굴려 가방을 정리하는 영이의 옆모습을 길게 응시한다.


종이 울리고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 영이의 주위로 여자아이들이 모여든다. 남자아이들은 민준을 힐끔댈 뿐 감히 다가오지 못한다. 만족스럽다. 애들은 날파리처럼 성가시기만 하다.


그런데 민준의 책상 위로 그림자가 지더니 누군가가 “안녕?”하고 달갑지 않은 인사말을 건넨다. 민준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치켜든다. 은테 안경을 쓴 남자아이가 안경 너머의 맑은 눈으로 민준을 내려다보고 있다.


“난 윤태영이야. 내가 반장이거든.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필요 없을 거 같은데?”


민준은 냉랭하게 말을 던지고는 책상 옆에 건 가방 쪽으로 허리를 숙인다. 1교시인 국어책을 꺼내고 고개를 들었을 땐 귀찮은 무리가 사라지고 없다. 태영을 따라온 그의 친구들이 쑥덕대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민준의 험담인 듯하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안녕? 난 윤태영이야.”


타겟을 바꾼 태영이 영이의 자리에서 떠든다. 저 자식 끈질기네. 민준은 고개를 15도 정도 틀고 영이를 주시한다.


“내가 반장이거든.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태영아,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너 엄청 친절하구나.”

“영이야, 너도 성격 엄청 좋던데? 이전 학교에서도 친구 많았지?”

“아니야. 근데 말이라도 고마워.”


영어 교과서의 다이얼로그 같은 진부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영이가 고개를 젖히고 깔깔댄다. 머리에 경고 사이렌이 울린다. 영이가 생각보다 성격이 밝아서 조만간 여러 친구를 사귈 것 같다. 저 아이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늘어나면 곤란하다. 사냥을 서둘러야 한다.


“너! 거기가 누구 자린 줄 아냐?”


이번에는 목에 기름이 낀 듯한 탁한 목소리가 민준을 귀찮게 한다. 민준은 영이에게 향했던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본다.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남자애 둘이 서 있다. 한 명은 키가 백칠십 센티미터인 민준보다 한 뼘은 작고 깡말랐다. 얼굴이 새하얘서 콧잔등 양옆에 붙은 주근깨가 선명하게 보인다. 다른 한 명은 열네 살 치곤 덩치가 크고 가슴팍과 배에 살이 두둑하게 붙어 있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쪽인 듯하다.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지 교복 밖으로 삐져나온 얼굴과 목, 손등이 죄다 까맣게 탔고, 지금도 목이 땀으로 번들거린다.


“너도 조심해.”


덩치 큰 애가 다짜고짜 경고한다. 민준은 붉은빛이 감도는 눈동자로 소년들을 훑는다. 주먹다짐으로 서열을 정리하려는 덜떨어진 애들인가? 하지만 적의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깝죽대기 좋아하는 애들인 듯하다.


그렇게 판단한 민준이 위협적인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본다. 그러나 겁을 먹고 사라질 줄 알았던 덩치와 주근깨가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나누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다. 웃어? 급격히 불쾌해진 민준은 땀이 삐질 난 덩치의 목을 무는 상상을 한다. 비릿한 맛이 입안에 도는 것 같아 미간이 구겨진다.


“야! 장성웅!”


뒤에서 태영이 버럭 소리치더니 엄한 얼굴로 입술 가운데에 검지를 올린다. 제 이름이 불린 덩치가 깨갱하고 입을 다문다. 그러고는 주근깨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주근깨도 자연스럽게 팔로 덩치의 허리를 감싸더니 둘은 한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엉겨 붙어 교실을 나간다.


이제 민준의 주위엔 아무도 없다. 민준은 책상에 양팔을 그러모으고 마음껏 교실을 훑는다. 한 번의 쉬는 시간만 관찰하면 인간관계는 대강 파악된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 사이에 홀로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하나, 둘, 셋. 지금 이 반에는 세 명의 외톨이가 있다. 한 명씩 한 명씩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는 상상을 한다. 누가 먹잇감으로 좋을지 가늠하며.     


수업이 끝났다. 민준은 본관을 빠져나오자마자 후드를 뒤집어쓴다. 지구가 단단히 병들었는지 4월 중순인데도 기온이 25도를 넘어섰다. 인간과 섞여 사는 뱀파이어의 고충 중 하나는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에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후드 양옆에 달린 줄을 쭈욱 잡아당긴다. 쪼그라든 후드가 민준의 얼굴을 가려 준다.


“한민준!”


민준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영이가 민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바닥을 향해 거친 숨을 내뱉는다.


“헉, 아까부터 불렀는데.”

숨을 헐떡이면서도 영이가 꿋꿋하게 말한다.


“민준이라는 이름이, 헉, 흔해서 그런가 싶어서, 헉, 성까지 붙여서 불렀거든, 헉. 근데 못 듣더라, 헉.”

핫팩처럼 뜨거운 영이의 손을 치우며 민준이 묻는다.

“왜?”

“뭐가 왜야?”

“왜 불렀냐고.”


말을 내뱉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평소 습관대로 말을 툭툭 내뱉고 말았다. 먹잇감인 영이에게는 살갑게 굴어야 하는데.


“미안. 운동장이 시끄러워서 못 들었나 봐. 어휴, 땀 좀 봐.”

소매로 영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톡톡 닦는다. 표정도 어린 여동생을 대하는 오빠처럼 자상하게 꾸며낸다.

“고마워, 민준아. 근데 너 어디 살아?”

영이가 대뜸 묻는다.

“나 저기…….”

민준이 얼버무리자, 영이가 끈질기게 묻는다.

“저기 어디?”


민준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이래서 미성년 인간은 딱 질색이다.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아 예의라는 걸 도무지 모른다. 경험상 특정 누구의 문제가 아니다. 발달 단계상 성장기에 놓인 인간은 죄다 민준과 맞지 않는다.


“저기 빌라촌에…….”

“와! 나랑 방향이 같다. 우리 같이 갈래? 동네 지리도 익힐 겸!”

영이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사랑을 듬뿍 받은 듯한 해사한 미소다.


내 착각인가? 민준이 영이를 예리하게 훑는다. 그럴 리 없다. 분명 영이에게서 고독의 냄새를 맡았다. 첫 등교부터 엄마가 아닌 사람과 손을 잡고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지켜보기로 한다.


둘은 나란히 걷는다. 영이는 때 하나 타지 않은 새하얀 운동화를 착실하게 움직여 민준을 따른다. 이 발걸음 끝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듯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지껄인다. 정문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언덕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도 영이의 수다는 계속된다. 민준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영이의 옆얼굴을 살핀다.


얘는 나한테 왜 살갑게 구는 거지? 오지랖이 넓나? 애정결핍이 심한가? 아니면…… 설마, 나한테 호감이 있나? 그렇다면 일은 아주 쉽게 풀릴 것이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찜찜한 거지……?


십 분쯤 걸었을까. 영이가 민준과 사이를 벌리더니 발을 멈춘다.


“다 왔다.”


영이의 뒤로 웅장한 저택이 서 있다. 연갈색 벽돌로 쌓은 높다란 담장을 따라 소나무가 심겨 있고, 그 너머로 2층 높이의 단독주택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거대한 철문 뒤에 초록 잔디가 깔린 정원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거기다가 집이 넓고 깔끔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불안의 정체가 이건가? 이 아이의 고독이 기대만큼 짙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버느라 바쁜 부모님, 그에 비례해 풍요로운 삶. 그게 감사한지 모르고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철없는 딸. 고작 그 정도이려나? 집 안에 들어가 봐야 정확하게 파악할 것 같다. 부디 영이가 부모와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아이이길 빌어 본다.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 와.”


뒷짐을 지고 선 영이가 몸을 배배 꼬며 말한다.


빙고! 좀처럼 없을 횡재에 민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뱀파이어는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한 인간만 사냥할 수 있다.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한 인간의 멸종을 막기 위한 뱀파이어 간의 협약이다.


“그럼 너도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 와.”

민준은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짓는다.


널 초대할게. 나의 지옥으로.

이 말은 쏙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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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Image by Vicki Hamilt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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