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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Sep 06. 2024

연재소설_2화 다신 오지 마. 이 거지 새끼야!

다음날, 민준은 바로 착수한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건 백치나 하는 짓이다.


“오늘 너희 집에 가도 될까?”

씨익. 중학교 1학년생처럼 순박하게 웃고 있지만, 속은 아주 검다.


“정말? 그럼 끝나고 같이 가자.”

영이가 감격한 듯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이거, 너무 쉽다.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린 적은 처음이다.     


***

영이의 집 앞. 민준은 드라마 세트장 같은 영이의 집을 올려다본다. 다시 봐도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규모다.


철문 앞에서 영이가 목에 건 스마트폰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친구랑 들어가.”


딱 한 마디 뱉었을 뿐인데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철문이 지잉― 소리를 내며 열린다.


“들어가자.”


영이가 앞장선다. 그 뒤를 따라 민준도 집 안에 발을 들인다. 갑자기 뒤에서 쿵― 소리가 난다. 뒤돌아보니 철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 있다.


돌계단을 열 칸 정도 오르자 갑작스레 펼쳐진 별세계에 민준의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정원이 상상한 것보다 넓고 호화스럽다. 초록 잔디가 깔린 정원 한편에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 있다. 연못 중앙에 설치된 분수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 물에는 황금색과 주황색, 두 종류의 잉어가 엉켜서 헤엄치고 있다. 그 옆에는 고풍스러운 정자와 자그마한 석탑이 놓여 있다.


민준은 영이의 뒤를 따라 잘 닦인 돌길을 따라 걷는다. 길 양옆에 이파리가 둥글게 다듬어진 소나무가 심겨 있다. 줄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듯 제멋대로 휘어있다. 부챗살처럼 펴진 가지가 앞서가는 영이를 호위하는 것 같다.


돌길을 지나자 새하얀 현관문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하얀 원피스에 하얀 에이프런을 두르고 공손한 자세로 영이를 기다리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영이와 함께 교무실에 온 여자다. 나이가 마흔 남짓인데 영이를 향해 깍듯이 인사하며 현관문을 열어준다. 영이와 민준이 안으로 들어가자 여자도 문을 닫으며 따라 들어온다.


민준은 손으로 양팔을 문대며 긴 복도를 걷는다. 집 안이 굉장히 으스스하다. 난방비를 아낀다고 보일러를 켜지 않는 민준의 집보다 춥다. 집이 으리으리한 만큼 난방비도 어마어마할 테니 난방을 꺼둔 모양이다.


복도 끝에서 민준의 추측은 깨진다. 이 집이 추운 이유는 거실로 통하는 중문 위에 달린 오십 센티미터쯤 되는 십자가 때문이다. 제길, 당장 뛰쳐나가고 싶다. 하지만 먹잇감이 코앞에 있다. 민준은 영이만 보려고 애쓴다.


거대한 중문 앞에서 영이가 멈춰 서더니 여자에게 이제 가라고 명령한다. 여자는 로봇처럼 딱딱한 동작으로 양손을 배에 올린 채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옆에 난 문을 열고 사라진다.


“너 손발 닦고 와.”


갑자기 영이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말한다. 고압적으로 바뀐 말투에 민준은 제 귀를 의심하며 멀뚱히 서 있는다. 민준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영이가 여자가 사라진 맞은편을 가리키며 다시 말한다.


“화장실은 저기야. 거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 닦고 와.”


그래도 민준이 쭈뼛거리자, 영이가 고함친다.


“뭐해! 어서 가지 않고!”


어이쿠! 민준은 피신하듯 황급히 화장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민준은 또 한 번 놀란다. 세면대와 샤워부스만 있을 뿐인데도 민준의 방보다 넓고, 세면대의 손잡이며 거울 테두리가 모두 금장이다. 심지어 꺼끌꺼끌한 돌바닥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영이가 시킨 대로 하기 위해 양말을 벗고 샤워부스로 들어간다. 하지만 비누가 보이지 않는다. 선반에 올려진 플라스틱 통을 하나씩 살핀다. 깨알 같은 크기의 알파벳으로 뭐라 적혀 있지만 뜻을 전혀 해석할 수 없다. 대충 바디워시처럼 보이는 것을 발등에 짠 다음 발바닥으로 발등을 대강 문대고 샤워기를 튼다. 그러자 밖에서 영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양말은 새것 줄 테니까 버려.”


민준이 바닥에 벗어 둔 양말을 본다. 바닥 부분이 꼬질꼬질하다.


“야!”

“응?”

“대답 안 해?”

“알았어.”


민준은 반항기를 담아 대답하고는 화장실에서 나온다.


아까는 없던 발수건이 놓여 있어서 거기에 발을 닦고 맨발을 바닥에 댄다. 그러자 차가운 감촉이 발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까지 전해져 몸이 부르르 떨린다. 민준은 발을 한껏 오므린 채 영이가 서 있는 중문으로 뒤뚱대며 걸어간다.


영이가 중문을 연다. 그러자 설원에 온 듯한 새하얀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고 빛이 쏟아진다. 갑자기 눈앞이 핑 돈다. 민준은 저도 모르게 풀썩 쓰러진다.     


눈을 뜬다.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민준을 내리쬔다.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키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덮여 있던 하얀 담요가 스르륵 흘러내린다.


“깼니?”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영이가 무심한 얼굴로 핸드폰을 뒤적이며 묻는다.


“일어나. 밥 먹게.”


민준은 영 입맛이 없지만 일어선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순간 다리가 휘청한다. 사방이 십자가투성이다. 진열장에, 기둥에, 벽면에, 없는 곳이 없다. 심지어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선반 위에는 은으로 만든 십자가가 놓여 있다. 무려 민준의 몸통만 하다.


“허억.”


심장이 오그라드는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는다. 부엌으로 향하던 영이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묻는다.


“왜 그래?”

“아, 아냐.”


민준이 고개 젓자, 영이가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그러고는 다시 부엌으로 간다.


부엌에는 치킨 냄새가 진동한다. 배달 기사가 왔다 간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있었다니. 벽에 달린 시계를 확인한

다. 벌써 다섯 시 십 분이다. 사십 분이나 기절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몸은 여전히 덜덜 떨린다. 뼈를 찌르는 오한에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그러나 먹이를 눈앞에 두고 도망치는 뱀파이어는 없다.


영이가 제 앞과 민준의 앞에 앞접시를 내려놓는다. 포크 두 개와 조그마한 집게도 한 세트씩 놓고는 박스 주둥이를 연다.


“흐악.”


민준이 의자와 함께 뒤로 자빠진다.


“또 왜?”


허둥대며 의자를 일으켜 세우는 민준에게 영이가 짜증을 낸다.


“아, 아니야. 벌레가 있는 줄 알고.”


치킨에 한가득 뿌려진 건마늘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치우며 변명한다. 하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마늘! 그놈의 마늘! 한국인은 치가 떨릴 정도로 마늘에 환장한 민족이다.


칠십 년 전에 민준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다. 당시 전쟁 중이었던 한국에서는 피를 구하기가 쉬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오판이었다. 뱀파이어에게 한국만큼 살기 어려운 나라가 또 없다. 민준이 그간 봐온 한국인들은 무언가에 꽂히면 광적으로 집착한다. 모든 요리에 마늘을 한 주걱씩 넣는 것도 그렇고, 어느 지역에 가든 붉은 십자가가 별처럼 떠 있는 것도 그렇다.


민준은 가장 안쪽에 있는 치킨을 집어 한 입 베어 문다. 하지만 튀김옷에서 마늘향이 번진다. 숨을 참고 입의 것을 겨우 삼킨다.


“왜, 맛없어?”


영이가 싸늘하게 묻는다. 눈빛이 암살을 시도하는 자객처럼 날카롭다.


그제야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십자가부터 마늘까지……. 영이가 자기 집으로 초대한 이유가 민준의 정체를 알고 죽이려는 게 아닐까? 한국에 오기 전, 루마니아에서는 그런 일이 성행했었다. 친하게 지낸 이웃 마리오도 민준의 아버지를 집에 초대해 암살하려고 시도했었다. 한국에 온 후로는 그런 일이 없어서 너무 방심했다.


“배가 부르네.”


민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둘러대자, 영이가 벌떡 일어선다.


“됐어. 그만 먹어.”


치킨이 든 상자를 들고 가더니 내용물을 싱크대에 죄다 부어버린다. 거침없는 동작에 민준은 어리벙벙하다.


“이제 내 방으로 가자.”


영이가 부엌을 나간다. 민준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작게 한숨을 내뿜는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열네 살 꼬마의 행동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여러 먹이를 사냥했지만 이렇게 당혹스러웠던 적은 처음이다.


“야!”


거실에서 영이가 버럭 소리친다.


“왜?”

“빨리 안 와?”


오지 않으면 십자가로 내려찍기라도 할 기세다. 민준은 거실로 후다닥 달려 나간다.


흰색으로 칠한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간다. 또다시 펼쳐진 광활한 공간에 민준은 넋을 잃고 만다. 아래층보단 작지만 꽤 넓은 거실이 하나 더 있고, 복도를 따라 방문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 마치 루마니아 백작들이 살던 저택 같다.


“여기서 기다려.”


영이가 두 번째 문 앞에서 명령한다. 그러고는 혼자 방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잘 개어놓은 옷을 들고나온다. 흰색 바탕에 연한 은색 줄무늬가 사이사이에 들어간 실크 소재의 잠옷이다.


“이걸 입으라고?”


민준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묻는다.


“그럼 내 방에 먼지투성이인 채로 들어올 거니?”


영이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민준을 위아래로 훑는다. 기분 나쁜 눈빛과 힐난조는 도저히 어린애의 것 같지가 

않다.


영이는 다시 방에 들어가고, 민준은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상의를 벗자 어디선가 찬바람이 훅 끼쳐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잠옷 상의를 집어 든다. 그 순간 자괴감이 민준을 덮친다. 천하의 뱀파이어가 고작 열네 살짜리 인간에게 휘둘리고 있다니. 이런 수모를 당하느니 그냥 영이의 목을 콱 깨물어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 아이는 아버지의 것이다. 아버지께 드려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입고 있던 교복을 개서 문 앞에 둔다.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린다. 그 바람에 민준이 나자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는다.


“야야! 다시 갈아입어! 그리고 내려와!”


영이가 쿵쾅대며 계단을 내려간다. 어깨까지 기른 머리카락이 다급하게 흔들린다.


민준의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꼬리뼈 쪽의 통증도 잊을 만큼 거세다. 민준은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울분에 찬 긴 숨을 뿜어낸다. 일단 죽이고 새로운 먹이를 구할까? 그게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아래층에서 영이가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옷을 교복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려가자, 영이가 중문 앞에 서 있다. 양손은 공손하게 앞으로 모으고 고개는 빳빳이 든 채. 민준은 눈치껏 그 옆에 선다.


중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거실로 들어선다. 두 팔이 훤히 드러난 하얀색 원피스에 입고 있다. 민준의 시선이 그녀의 멀끔한 목덜미에 꽂힌다. 조금 말라서 아쉽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좋아할 듯하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영이가 애교 묻은 말투로 인사하더니 민준의 팔을 살포시 잡는다.


“엄마, 제 짝 민준이에요. 민준아, 우리 엄마야. 인사드려.”


내가 왜 네 짝이야? 민준이 의아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영이가 두 눈에 힘을 준 채 민준을 노려본다. 두 눈동자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다.


“어머! 영이한테 벌써 친구가 생겼구나?”


여자가 두 손으로 원피스의 엉덩이 부분부터 오금까지 쓸어내리며 쪼그려 앉은 후 민준과 눈을 맞춘다.


“이사 온 뒤로 영이의 첫 친구구나. 귀엽게 생겼네.”


그러면서 민준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민준은 여자를 노려본다. 어린것이 어딜 함부로……! 한국에 오래 살다 보니 나이에 민감해졌는지 그 생각부터 든다.


“민준이가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요. 정문까지 바래다주고 올게요.”

영이가 민준의 소매를 잡아끈다.


정원을 지나 철문 앞으로 간다. 문을 나서려는데 영이가 불러 세운다.


“야, 한민준”

말투가 다시 돌아와 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야! 대답 안 해?”

“왜?”


민준이 짜증 밴 목소리로 대꾸하자, 영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한다.

“다시는 오지 마.”


자기가 초대해 놓고 이건 또 무슨……? 황당해하며 뭐라 대거리하려는데 틈을 주지 않고 영이가 빽 소리친다.

“알아들었어? 다신 오지 말라고! 이 거지새끼야!”


거대한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문틈으로 씩씩거리며 돌계단을 오르는 영이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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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Image by Vicki Hamilt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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