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가요? 이런 세상
“아 또 빵빵거리네” 뒤에 있던 차가 그새를 못 참고 빵빵거렸다. 속으로 ‘크렉션은 인공지능이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조금 기다리면 알아서 갈터인 테, 잠시를 못 참고 빵빵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사뭇 ‘뭐가 그렇게 급한 걸까? 정 급하면 어제 나오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로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때릴 때면 언제나 인상이 찌푸러졌다. 크렉션 소리를 바꿔보면 어떨까? “잠시만요 저 좀 지나갈게요”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던가. 아니면 조금 더 경쾌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던가, 하였으면 좋겠다.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찔러올 때마다 조금 힘들고 지쳤다.
그렇지만, 나라고 뭐 다를까? 조금만 답답하게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크렉션에 몇 번이나 손을 가져다 댄다. 실제로 누르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은 감정이 쑥쑥 올라오는 것이다. 깜빡이를 안 키고 들어오는 차를 만날 때는 욕지거리가 입에서 맴돈다. 그러나 역시 나도 가끔은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똑같은 거다. 남이 할 때는 지적도 하고, 욕도 하고, 욱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사실 반대가 되면 조금 더 괜찮은 세상이 될 텐데 쉽지 않다. 나에게는 한 없이 엄하면서, 남에게는 조금 관대한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우리가 한 번씩 더 웃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들에게, 딸에게 언성을 높이며 ‘끼니 챙겨 먹는 게 중요하다.’ 잔소리하시는 부모님들은, 정작 제대로 식사를 안 하신다. 연예인이 하는 음주운전, 연예인이 하는 실수들에, 손가락질을 하고, 죽어 마땅하다며 너무 쉽게 댓글 다는 세상에서, 자신이 한 것은 쉽게 용서해버리고 잊어버리는 순간들을 맞딱 드릴 때가 있다. 우리가 그런 순간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부끄러워할 수 있다면, 남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린 조금 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IF.
‘당신의 하루를 보여드립니다’ 신청만 하면 누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하루를 녹화해준다. 눈치 채지 못하게,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우리가 우리의 하루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신청하기를 아직도 꺼려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몇몇 용기 있는 자들은 속속들이 신청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그중에 용기를 내고 싶었고, 결국 미루고 미루다 신청했다. 신청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이 영상은 오로지 나만이 볼 수 있었기에 그나마 빨리 결정했다. 하지만 딱 하루, 촬영을 한 나의 하루를 보고, 나는 계속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 고민해야만 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나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모습이 아니었다. 거울에 비추고 나를 보아왔는데, 실상 그 거울이 거짓말 거울이었던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모습이 진짜라며 매일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날 것, 즉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거울을 만나자 나는 불편해졌다. 그 거울 속에 진짜 나는, 어떤 일도 바로바로 하는 부분이 없고, 미루기만 했다. 내가 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아내에게 집안일을 미루는 모습도 꼴불견이었다. 꽤나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난폭운전에 잠깐잠깐 시원한 욕도 막무가내로 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인지 못한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이 불편하고, 또 죄스러웠다. 남들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직장동료과 신나게 험담을 하면서 죄책감 따위 보이지 않았고, 남들 모르게 슬며시 쓰레기도 여기저기 버렸다. 회사에서는 매너 있기로 유명한 나였는데, 내가 인지 못한 내 모습에서는 야비하고 치사했다. 그런 척들의 연속이었을 뿐 나는 결코 매너 있지 않았다. 한 시간 전에 뒤에서 험담을 해놓고서는, 후배를 앉혀놓고 다른 사람들을 험담을 뒤에서 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설교하는 나를 볼 때, 나는 모니터를 꺼버렸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이건 완전 내가 하면 다 로맨스고, 남이 하면 전부다 불륜이었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인간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겨우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남에게는 한 없이 엄격하고, 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지만, 이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도가 심했다. 고민되었다. 이 서비스를 계속할지 말지. 결국 계속해보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 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조금은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있고 싶었다. 착각 속에서 바라보는 내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숨는 내가 아니라. 조금은 나를 다듬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하고 싶었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엄마들은 자신이 못난 엄마라고 생각한다. 더 잘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디오를 보고 난 후 엄마들은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울음바다가 되어 버린다.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화면 속에 내가 악마처럼 보였다’라는 말을 하는 엄마도 있었다. 정말 나쁜 엄마들일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이 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모르고 싶을 때도 많다. 나에게 관대 해지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며 우리가 살아나가기 위한 방법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그것은 사람을 지탱하는 강력한 힘 중에 하나이다.
그래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 덜 관대할 필요는 있다. 나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봄 직하다. 그래야 내 말이, 우리의 관계가 조금 더 진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남에게는 엄하면서 스스로에겐 관대한 사람을 우리는 좋아할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상상만 해보았던 저 시스템을 삶에 녹여내는 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 시스템은 정말 오랫동안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화면도 녹화 되어있다. 절대로 속일 수 없고, 세상에서 나만 볼 수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다만 어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고 멀리했고, ‘바쁘다’라는 이유로 던져두었을 뿐이다. 우린 그것을 오랫동안 ‘일기장’라고 불렀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하루를 기억해두는 순간. 부끄러워도, 불편해도 용기를 내어 하루를 정리하는 일. 적어도 그 일기 장안에서는 나를 속이지 않고 반성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일어날 힘을 가지는 시스템이 ‘일기장’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봄으로써 우리에게 조금 더 엄해지고 조금 덜 관대 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나에게 관대해지기 위해, 수많은 핑계와 변명을 통해 누군가와 관계할 수 있고, 또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속이고 거짓말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즉, 나 자신이다.
내가 하든 네가 하든 다 로맨스인 세상, 내가 하든 네가 하든 모두가 불륜인 세상이면 조금 더 살 만하지 않을까?
글_사진 이인석 (Myst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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