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를 읽고
나는 7년 차 B2B 마케터다. 그러나 마케터이기 전에 나는 14년 차 일기러다.
일상 속의 소중한 순간들, 스치는 생각과 감정을 허무하게 흘려보내기가 아쉬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움켜쥔 기록은 자산으로 남아 내 삶을 더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새해를 맞이하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365일이 주어지지만,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면 결국 기록을 남긴 사람에게 더 많은 남들이 남겨진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나만 볼 수 있는 일기를 오랫동안 쓰다 보니, 내 글을 일기장 밖으로 꺼내어 세상과 닿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그렇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어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기 시작했고, 이것이 좋은 기회로 이어져 2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는 확장되어 이제는 업이 되었다. IT 스타트업의 B2B 마케터로서 한 달에 약 6개의 콘텐츠를 회사 블로그에 발행하고, 전문 리포트를 작성하여 잠재고객이 다운로드하도록 유도하고 브랜드 SNS 채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방황하며 진로 고민이 많았던 내가 마케터라는 직업에 정착한 것은, 특히 그중에서도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영역에 엣지가 생긴 것은 단순 우연이 아니다. 그 모든 시작은 내가 기록을 남기면서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의 끝에 잠에 들 때까지 내 일상은 글쓰기로 가득 찼고, 이제는 기록은 내 삶의 무기가 되었다.
우연히 <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같은 마케터가 쓴 책이라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위한솔 저자는 내가 팔로우하고 있던 @wi_see_list 계정의 운영자였다! 작가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니(물론 실제 아는 건 아니지만). 무척 반가웠고, 책의 내용이 더욱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제일기획, 카카오페이, 배달의민족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회사를 거친 브랜드 마케터다. 특별한 취향도 없는, 스스로를 무향무취라고 여겼던 저자가 기록을 통해 '나다움'을 찾고 본인의 존재를 세상에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성장 스토리를 읽는데 내가 겪었던 상황과 참 비슷하더라. 그래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지?”하고 자책만 하던 시간조차 어쩌면 지금의 ‘나’라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재료였다는 걸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어요. 누구나 각자에게 이런 시간과 소재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대게 그저 맴돌거나 놓쳐버리기 일쑤죠. 그렇기에 저는 기록이만 그저 ‘남기는 것’을 넘어 ‘자신을 발견하는 힘’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 '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 중 일부
우리 모두는 각자 삶 속 드라마 주인공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도 가끔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이다. 괴롭고 힘든 상황이 생겨도 나 스스로를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래도 버틸 만 해졌다. 그런 측면에서 기록은 나라는 유니크한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고 있는 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범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생각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거든요. 그때 "그래, 기록이라도 해보자 “하고 다짐했죠. 누군가의 눈에 대단해 보이지는 않아도, 내가 보고 듣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다 보면 언젠가는 나라는 존재가 조금 더 세상에 또렷하게 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직업적 공통분모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나의 자아가 쓴 것이 아닐까' 흠칫 놀랄 정도로 저자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나와 유사해서 놀랐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해 끊임없는 성찰과 일상에서 스치는 모든 것에서 배움을 얻고자 하는 태도가 책 전반적으로 스며들어있었다. 이쯤 되니 저자의 MBTI가 나와 같은 ENFJ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알게 됐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쓰는 행위는 그저 과거를 붙잡아두는 행위만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고 새롭게 빚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요.
<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를 읽으며 내게 기록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잔잔히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매일의 기록이 쌓여 단단한 자존감을 기르고, 나만의 엣지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사진: Unsplash의Aaron Bu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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