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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이라는 ‘바레’를 시작했다.

애프터는 없었던 바레와의 소개팅

by 재쇤

갑자기 바레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한 동료가 '바레'라는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며,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바레는 그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데, 발레와 필라테스 그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결합한 운동이다. 최근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SNS 속 영상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던 기억이 났다.


그 동료는 주변 사람에게 바레를 적극 권했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마주쳤을 때 바레 자세를 직접 시연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평소에는 무던하고 시크한 태도를 보이는 동료였기에 한껏 상기된 모습이 신기했다. 대체 바레라는 운동에 어떤 마법 같은 매력이 있는 걸지 궁금해졌다.


또한 '발레'라는 키워드에 솔깃했다. 어렸을 때 2년 정도 발레를 배웠던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가면서 발레에 대한 관심이 시들시들해져 그만두었지만 발레에 대한 일종의 향수 또는 동경이 마음속 어딘가에는 계속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한 건, 새로 이사 온 우리 아파트 바로 앞 상가에 바레 스튜디오가 있었다. 도어투도어(Door to door) 딱 10분 정도의 거리. 이건 마치 '바레'라는 운동을 시작해 보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 같았다.




체험 수업을 등록하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에 시기적절하게도 나는 한창 헬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5년 넘게 꾸준히 헬스를 해오고 있지만, PT 없이 혼자서만 운동을 하다 보니 맨날 같은 루틴에 저중량에 머물게 되어 재미가 없었고,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평소처럼 출근 전 오전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을 때다. 레그 익스텐션 머신에 앉아서 쉬는데 문득 운동에 집중한 시간보다 유튜브를 시청한 시간이 더 길다는 걸 깨달았다. 현타가 제대로 오면서, 이대로 지속되면 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뭔가에 꽂히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화끈한 실행력 덕에 앉은자리에서 바로 바레 체험 수업을 신청했다.



바레의 첫인상


평소 헬스장 가는 복장과 동일하게 레깅스에 엉덩이를 살짝 덮는 헐렁한 상의를 입고 갔다. 다들 나와 비슷하게 입었더라. 바레라고 해서 특별하게 여리여리한 발레 옷을 입는 것 같지는 않았다.


원래는 6명 정원인 그룹 레슨인데, 이 날은 나 포함 3명으로 소수 정예였다. 발레 바를 잡고 신나는 음악의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회원님, 지금 자세에서 원팟, 투팟이 잘 느껴져야 해요."

"플리에로 내려갔다가 파세로 올라올 거예요."


원팟(1st Position) - 두 발 뒤꿈치를 붙이고, 발끝은 바깥쪽으로 벌려 V자로 만든 자세.
투팟(2nd Position) - 원팟에서 발 간격만 넓혀 발끝은 바깥쪽을 향하고 다리는 어깨보다 넓게.
플리에 (Plié) - 허리는 곧게 세운 채로 다리를 구부렸다가 펴는 발레의 기본 움직임.
파세(passé) -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무릎에 발을 갖다 대는 자세.


낯선 용어에 정신이 없었지만 런지, 스쿼트 등 익숙한 웨이트 동작도 섞여 있어서 비교적 잘 따라갔다.

처음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지만 50분의 시간이 금방 지나고 수업이 끝났다.



왜 재미가 없지?


한껏 기대를 많이 한 탓일까? 당연히 재밌어할 줄 알았는데, 재미가 없었다.


50분의 수업은 크게 보면 초반부(누워서 하는 복근 운동) - 중반부(발레바를 잡고 발레와 웨이트를 결합한 동작) - 후반부(스트레칭)로 구성되었다.


바레는 3개의 운동을 섞다 보니 완전 발레는 아니고, 그렇다고 필라테스도 아니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아닌 느낌이었다. '근본이 없는 운동'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유행했지만, 5년 뒤에는 우리 주변에서 '바레'를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지 않았다. 운동은 숨이 차거나 엄청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어야 운동한 보람이 나는데 말이다. 2번 자세(턴아웃 상태의 발을 골반보다 넓게 벌린 상태)에서 스쿼트 하듯 내려간 상태에서 위아래 반동을 반복하는 '펄스' 동작을 할 때는 엉덩이가 터질 것처럼 자극이 심하게 왔지만, 그 외의 동작들은 할 만했다. 집으로 돌아가니 남편이 "운동하고 왔는데 왜 땀도 하나도 안 나고 뽀송하냐"라고 묻더라.


바레는 헬스와 다르게 저중량 고반복 스타일의 운동이다. 그러나 헬스를 5년 넘게 하다 보니 고중량 운동에 익숙해진 걸까? 1kg 아령을 들고 쉼 없이 팔을 움직여도 운동하는 맛이 안 들었다. 그리고 루틴이 코어와 엉덩이 둔근을 발달시키는데 좋은 운동 중심으로 짜여서, 전신 운동 효과를 원했던 내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바레의 끝인상


위에 바레에 실망한 점만 가득 썼지만, 사실 바레 운동은 장점도 많다. 평소에 많이 뭉쳐있는 고관절을 풀어주고, 몸을 위로 뽑아내면서 쭉쭉 늘리는 스트레칭을 하니 개운함을 느꼈다. 체형 교정과 유연성을 기르고, 잔근육 키우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리하자면, 운동을 처음 시작하거나 잔근육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한다. 하지만 내 취향의 운동은 아닌 것으로. 아무래도 나에게는 풋살처럼 동적이면서, 경쟁 요소가 있는 팀 스포츠 기반의 운동이 잘 맞는 것 같다. 바레를 맛보자마자 '손절 운동 리스트'에 추가하니 뭔가 씁쓸하다.


바레, 너는 좋은 운동이지만 우리는 다신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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