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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Aug 15. 2022

폴댄스와의 작별

결국 '잘 못해도 괜찮아'를 극복하지 못하고

드디어 인생 운동을 찾은 줄 알았건만 9개월 만에 폴댄스를 향한 내 사랑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또 금방 사그라드는 금사빠 병은 어김없이 운동에도 작용하는 것 같다.


3개월 차 찾아온 첫 번째 권태기는 어찌저찌 넘겼지만 6개월 차에 또다시 찾아온 권태기는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한창 폴댄스에 빠졌을 때는 수업 빠지기가 싫어서 길게 여행을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괜히 야근, 술 약속 등 수업을 빠질 핑곗거리만 찾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갑자기 식어버린 이유


어느 순간부터 폴댄스가 재미 없어졌다. 재미가 없어진 이유는 명확했다. 실력이 늘지 않아서였다. 권태기 시작의 징조는 4개월 차에 초급 수업에 진출한 뒤부터였던 것 같다(내가 다닌 학원은 왕초보 - 초급 - 초중급- 중급 - 고급 레벨에 따른 수업이 진행된다). 분명 왕초보와 초급 사이에 존재하는 레벨을 건너뛴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갑자기 난이도가 확 높아졌다.


왕초보 수업에서는 폴에 낮게 매달려서 몇 바퀴 회전하고 예쁘게 착지만 하면 되었는데, 초급 수업은 클라임(climb)을 해서 폴에 높이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클라임을 하기 위해서는 구스넥 그립 또는 하프 브라켓 그립으로 폴을 잡아야 하는데, 팔의 힘만으로 하체를 들어 올려야 하는 만큼 전완근의 힘이 장난 아니게 필요하다. 초급에서는 클라임이 기본인데, 클라임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니. 그리고 보통 두, 세 번 정도 연속 클라임을 해서 폴에 올라가는데 그 높이가 2-3미터 위라서 자칫 동작을 시도하다 떨어질까 봐 무섭기도 했다(그래서 초급 수업부터는 폴을 감싸는 안전 매트를 까는 것이 필수다).


욕심내서 초급 수업에 올라갔는데, 따라잡기가 힘들어 수업 때마다 멘털이 탈탈 털렸다. 자신감이 하락할 때면 왕초보 수업을 교차 수강하며 잠깐 힐링하고 구겨진 자신감을 회복했다. 하지만 후달리는 실력을 커버하는데 이러한 임시방편은 한계가 있었다. 왕초보 수업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머무는 것보다, 초급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빠르게 실력을 늘리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폴댄스 수업은 적게는 7명, 많으면 15명이 함께 수업을 듣는 그룹 레슨인데, 매번 마주치는 수강생들이 다르고 딱히 서로 말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숙련도를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선생님이 알려주는 진도를 척척 잘 따라 하는 옆 수강생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잘 따라 하지 못하는 나를 깎아내리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못한다고 누가 면박을 주는 것도 아니고, 점수 매겨서 평가받는 것도 아닌데 주눅이 들었다. 경쟁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탓일까, 취미 생활인 운동에서조차 '남들보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나는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연습 부족이었다. 폴댄스 학원에는 수업뿐만 아니라 개인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따로 예약(오픈폴)할 수도 있는데, 꽤 많은 수강생들이 오픈폴을 이용하면서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9개월 동안 오픈폴은 딱 한 번 이용해봤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운동만큼은 아무런 노력 없이 수업만 참석하면 저절로 실력이 느는 것이라 안일하게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지.


폴댄스와의 작별, 그 이후


폴댄스라는 운동을 사랑했던 만큼,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아무 미련이 없었다. 내가 입던 폴웨어 중 상태가 괜찮은 옷들은 당근마켓에 올려서 깔끔히 처분도 했다.


, 살면서 운동과의 관계를 이렇게 확실하게 맺고 적이 있던가! 폴댄스는 그만뒀지만, 이를 통해 길렀던 전완근과 , 코어의 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것이다. 그것이면 되었다.


안녕 폴댄스, 9개월 동안 즐거웠어!  

 

피겨 스케이트 스핀이랑 비슷해서 이름 붙은 피겨 헤드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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