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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Dec 21. 2019

밀레니얼의 18.25%

매년 3.65%씩 바뀌는 나를 기록하는 자아성찰 프로젝트


"사람 쉽게  변한다."


의심 없이 종종 내뱉었던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마주치는 과거의 나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쉽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아주 예전에 찍어 놓은 영상을 봤습니다. 5년 전, 바닷가 앞에서 잔뜩 신이 나서 떠드는 스물다섯의 나였습니다. 눈, 코, 입은 그대로인데, 영상 속 쟤는 더 어려 보이고 생기 넘쳐 보였습니다. 목소리도 앳되고, 눈에도 총기가 있어 보입니다. 퇴근을 끝마치고 너덜너덜해진 거울 속 내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변화는 어렵다고 말했는데, 노화가 쉬워 보이는 건 일단 확실해 보입니다.


생각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영상 속 쟨 뭐가 저렇게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는 걸까요. 또 뭐가 그렇게 웃길까요. 즐겁고 밝다 못해 순수하고 해맑아 보입니다. 동시에 좀 짠하기도 했습니다. 쟤는 곧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5년 후에도 여전히 밝겠지만, 웃음 끝에는 삶의 무게가 지워질 겁니다. 무작정 앞으로 전진하던 선택과 패기 대신, 아주 약간의 신중함을 얻고 주저하는 일들이 많아질 겁니다. 매일 조금씩 깎여 나가 날카로움은 잃겠지만, 그만큼 둥글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게 됩니다. 매일매일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모인 5년 후의 나는 꽤나 많이 바뀌게 된 것이죠.


변화는 매일 깨달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 생각엔 변화란 상태가 아니라, 익숙한 것에서부터 낯섦을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일종의 감정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을 때, 몇 개월 사이에 부쩍 커버린 조카를 만났을 때, 어쩌다 본 엄마의 뒷모습이 작아 보일 때처럼 말이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대상이 다르게 보일 때, 사람은 무언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관리를 해야겠다,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 효도를 해야겠다. 이처럼, '변했네'라는 생각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하죠, 변화를 마주한 순간에 새로운 변화를 다짐하게 된다니.


"기록을 해야겠다."


2019년의 한 복판에서 변화를 마주한 제가 결심한 다짐은 '기록'이었습니다.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처음 든 감정은 아쉬움과 조급함이었습니다. 저 시절을 다 기록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의 나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닐 텐데. 지금 이 순간의 나는, 5년 후의 내가 바라볼 모습일 텐데. 누군가 이 모습을 기록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조차 가끔은 잊는 좋은 시절의 내 모습을, 때로는 헤매고 방황하는 모습을 남겨준다면 미래의 나에게 좋은 지침이 되지 않을까.


내 모습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처음 했던 고민은 '빈도'였습니다. 사람은 단순해서, 눈에 띄게 바뀌어야만 변화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선 매일 기록하는 건 포기했습니다. 매달 기록하는 건 어떨까요. 직장 생활과 고된 일상으로 지친 내가, 5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매달 말일에 내 모습을 기록할 수 있을까. 조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럼 매년은 어떨까. 이제야 조금 만만해 보입니다. 1년에 한 번 내 모습을 기록하는 정도의 도전은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년이면 나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요? 1년을 하루로 쪼개, 하루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0.01%씩 바뀐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하루에 0.01% 씩 1년이 지나면 3.65%가 바뀌게 될 겁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작아도 그만큼은 바뀌겠죠. 그렇게 5년이 지나면 18.25%가 바뀝니다. 낯설었던 5년 전의 내 모습과 오늘의 내가 18.25%만큼의 차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납득이 갑니다. '그래, 사람이 무려 18.25%나 바뀌었으면 낯설 만도 하겠지.' 숫자에 약한 문과생 주제에, 뭔가 계량화된 수치를 보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습니다.


<밀레니얼의 18.25%>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여기에서 따왔습니다. 매일, 매월도 필요 없다. 1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카메라 앞에 앉아 매년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나의 모습이면 충분하겠다 싶었습니다. 나 혼자 하려니 5년을 완주할 자신은 또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같이 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글이 당신에게 읽히고 있는 이유입니다.


밀레니얼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우리는 이미 삼십대거나, 삼십 대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는 단어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속한 세대를 밀레니얼이라고 부릅니다. 나 스스로를 밀레니얼이라고 부르는 건, 3인칭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이나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같은 시간관념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를 바라보는 다른 세대가 우리를 구분 짓기 위해선 이만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잘나빠진 밀레니얼의 서툰 삼십 대, 그 영글지 못한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우리의 18.25%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18.25%를 보낸 뒤에, 이 모든 영상들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는 상상을 해봅니다. 나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변화를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목격하는 현장을 상상해 봅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부끄러울까요. 그 낯부끄러운 순간들조차 함께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낸 2019년의 3.65%를 기록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 모두가 5년 동안 매 해의 3.65%를 쌓아 나갈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저와 함께 기록될, 제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당신과의 인연이 매년 기록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가슴 한편으로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릴 당신을 상상하며.


고재형 드림.


일시 : 2019년 12월 28일 (토), 그리고 앞으로 매년 마지막 12월의 어느 날.
장소 : 올해는, 서울 당산 아지트 MURI
인원 : 10명 내외
소요 시간 : 1인당 약 20분 내외
문의 : 인스타그램 @moonsengwon_ DM

* 지인들로 자리를 채우고, 단 한 자리가 남았습니다. (2019년 12월 21일 기준)

* 참여 확답을 주시면, 참가자들의 일정을 조율하여 당일에 카메라 앞에 설 시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질문지는 전날 밤에 전달해드립니다. 답변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할수록 가식적이니까요.


- 감히 이런 그림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YltHGKX80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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