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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May 01. 2020

나는 왜 퇴근 후에 자꾸 무기력해지는가

게으른데 딴짓은 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신개념 사고전환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진짜 꼭 일찍 잔다." (뿌득)

 유독 기상이 힘들던 어떤 아침, 머리를 감으며 저는 이런 다짐을 수차례 했었습니다. 그런데 잘 지켜지지 않았죠. 막상 집에 들어오면 생각보다 별로 졸리지도 않고, 일찍 잠을 잔다는 것 자체에 묘한 패배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보상을 해줘야죠. 넷플릭스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어줘야 합니다. 잠을 자겠다는 계획과 다짐은 퇴근과 동시에 사라지고,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 소파와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집에 오면 진짜 잠부터 잘 것이다 절대로 잠부터 잘것이다 (분노)


 퇴근 후 딴짓과 사이드프로젝트를 이야기하는 이 건실한 시간에 왜 갑자기 '잠'을 꺼냈을까요. 생각해보면 잠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이자, 가장 실행하기 쉬운 행위입니다. 그냥 누우면 끝나잖아요. 잠은 어찌 보면 음식을 사거나 차려 먹여야 해결되는 식욕보다도 실행하기 쉬운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침의 게으른 다짐들은 잘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다른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우리가 계획을 세워서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잠' 조차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직장 생활은 사람에게 어떤 감정들, 쉽게 말하면 분노와 무기력을 동시에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다녀왔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그럼에도 그냥 자기엔 내가 너무 안쓰럽고 화가 나니 보상을 해줄 것이다'라는 감정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보상이 필요 없을 때에도 어제의 나를 굳이 끌고 와서 보상해준 적도 많습니다. 오늘은 고생 안했어도, 내일의 나는 또 출근할 테니까, 보상을 받으셔야 마땅하죠. 별것도 아닌 보상인데, 그 '널브러짐'을 하지 못하면 또 화가 납니다. 회사에서는 어제 쉬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이러다 보면 회사가 두 배로 힘들고 그러다 집에 들어가서 잠만 자겠다고 분노를 하고 다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자, 이제 쉽게 생각해봅시다. 퇴근하고 잠을 자겠다는 다짐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우리가 퇴근 후에 생산적인 짓을 해낼 리가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 단순한 논리에는 부정할 수 없는 커다란 존재론적 복선이 깔려 있습니다. 바로, 이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있는 당신과 내가 엄청나게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지금 부지런하게 이런 글까지 쓰잖아, 당신은 태생적으로 게으르지 않아! 다시는 게으름을 무시하지 마라!'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저는 게으릅니다. 정말로 저는 게으릅니다. 그게 인생의 큰 고민이었을만큼이요.


 게으를 지라도, 삶을 향한 마음은 간절할 수 있다 했던가요. '아 뭐라도 해야하는데~'를 입에 달고 살면서 퇴근 후에 널부러져 있던 저를 일으킨 것은 다소 단순한 생각의 전환과 현실 자각이었습니다. 바로, '뭐라도 해야 하는데'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로 바꾸는 단순한 전환이었죠. 그 짧은 문장을 바꿔 입력한 뒤로, 제게 사이드프로젝트는 여가가 아니라 퇴근 후에도 해야 하는 의무적인 노동이 되었습니다. 그럼, 저는 왜 그런 가혹한 전환을 하게된 것일까요. 거기에는 또 슬픈 진실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저는 최고의 엘리트도 아니고, 태생적으로 부지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삶은 불공평해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똑똑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보통 그런 불공평한 일들은 나한테만 일어나고, 뒤쳐지는 건 오롯이 나의 일입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사이에서 정반대인 나 자신을 자각하게 된 뒤로는 생존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아, 태생적으로 게으른 나는 이들 틈 사이에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겠구나,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니 잠이 절로 깨고 몸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아마 단언컨대 허경영의 기적도, 무안 단물의 기적도 이렇게 극적이진 않았을 겁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대단한 벽도 아닌 침대가 매우 씨게 박혀있습니다.   © moonsengwon


'아 뭐야 힐링 글인 줄 알았는데' 하며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에겐 죄송합니다만, 사이드프로젝트는 삶이 풍요로운 사람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노동입니다. 


 종종 취미와 부업, 그리고 사이드프로젝트를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나 취미는 그중에서도 분리가 되어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퇴근하고 취미활동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뱉는 분들은 셋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행위조차 성실하게 하는 착한 분들이거나, 정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부러운 분들(진짜 제일)이거나, 아니면 취미조차 셀프 브랜딩 용도로 쓰고 싶은 영리한 분들이거나요.

 그런 의미에서 '취미'는 제게 조금은 나이브한 단어였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생각을 전환한 뒤로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마치, 생존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 30대가 골프를 선택한 기분과 비슷했달 까요. '골프가 의외로 운동이 된다!'라고 주장하는 분들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그걸 외면하고 싶어서 예시를 든 게 아닐 거라는 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해냈던 그 수많은 딴짓들 중 취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맥주 마시기(라고하고 술 마시기)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맥주 마시기가 제게 대단한 부가가치를 창출해주지 못했던 것을 보면, 이건 살기 위해 한 딴짓이 아니라, '지나간 취미'가 맞는듯합니다. 여담이지만, 생존을 위해 독기로 시작한 취미는 보통 부업이나 사이드프로젝트로 반드시 이어집니다. 저의 캘리그라피가 그렇고, 제 후배의 요가 강의가 그런것처럼 말이죠.

 '죽지 않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사이드프로젝트와 부업, 그리고 자기 계발을 바라보게 되니 이제 퇴근 후의 시간이 기대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퇴근 후의 시간을 더 잘 맞이하기 위해서 하루를 잘 컨트롤해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게 생겼습니다.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고, 회사 밖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퇴근 후에도 멀쩡한 정신력과 체력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괴로웠죠. 왜 게으른 나는 굳이 이런 생각을 해서 삶을 스스로 괴롭히는가. 그러나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뭐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죽음을 전제로 한 괴로운 명제를 받아들임으로 인해, 원초적 욕구를 이겨내고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저도 매일 잘하진 못합니다. 생명을 낭비하며 보는 유튜브는 정말로 짜릿합니다. 태생적 게으름을 어떻게 단 번에 바꾸겠습니까. 하지만 이 전과는 달리 퇴근 후의 딴짓을 조금 더 생존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더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고민보다는,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고민이 더 뾰족하고 명료하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요. 적어도 이제 미루고 미루다 결국은 아무것도  하게 되는 사람이 아닌, 미루다 미루다 결국은 일어나서  일을 하게 되는 보통의 사람이  느낌입니다. 결국은 할 일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저는 이제 다른 게으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무기를 갖게 된 셈입니다.


게으른 나 자신과 불같은 현실을 자각하고 나면 의연해집니다.


 '아, 이제 진짜 뭐라도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뱉고 있다는 건 아직 삶에 여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실한 사람들은 그런 말을 내뱉기도 전에 이미 알찬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게으른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괴로운 대전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퇴근 후에도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정신을 무장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애초에 현재의 상태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삶이라면 그 자체로 다행이고 괜찮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때때로 우리는 불안함과 만족을 오가는 삶을 지내기 때문에 '지금' 괜찮다면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조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런데 내가 불행히도 게으르다면 우리를 움직이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 말입니다.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너무 부럽다)

 그럼 도대체 저는 뭐가 불안했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길래 게으른데도 죽도록 딴짓을 했을까요? 게으른 사람은 딴짓을 할 때 어떻게 해야 자기 관리를 잘하면서도 멘탈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이대로 죽어가고 있다고 불안해했지만,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아놓고 수명을 늘려가고 있는 저의 이야기를 조금씩 더 풀어보려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게으른 사람은 신기해할. 게으른 사람의 간절한 삶 이야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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