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형 Feb 19. 2022

두려움과 고통은 다르다

마주할 미래가 너무 두려운 사람들을 위한 작은 정신 승리법

얼마 전, 태어나 처음으로 PT를 시작했습니다. 네, 돈 주고 자신의 생명권을 타인에게 넘긴 채 혹사 당하기로 결심하는 바로 그 PT 말입니다.


실은 그동안 운동을 하겠다 여러 번 다짐을 했지만, 운동 습관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내 방 문을 열고 나가는 일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일 보다 힘든 사람이었거든요.


강제로 누군가와 약속을 잡아야만 문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운동 습관이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게 아니라 일단 밖으로 기꺼이 나가는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운동보다 힘든 집 밖으로 나가기


PT 첫 날이 화근이었습니다. '가벼운 오리엔테이션만 할거예용~' 이라는 말만 듣고 간 헬스장에서 저는 지옥을 보았습니다. 


열 번만 하자면서 두 개 더 하자는 선생님, 막상 두 개를 더 하면 하나 더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나의 한계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그에게 친절하게 50분간 조져진 그 날, 태어나 처음 겪는 근육통을 얻었습니다.


대비 없이 갔던 마음이 문제였을까요. 2회 차를 가는 일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선생님을 향한 원망도 올라왔습니다. 사람이 정도라는게 있지 첫 날부터 그러는게 어딨어.


두려움은 점점 제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운동을 가기 전부터 온갖 걱정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온 몸이 이렇게 아픈데 운동을 더 한다고? 갔다가 괜히 병이 나면 어떡하지? 이직해서 컨디션 관리 중요한데, 괜히 피곤해보이면 어떡하지? 오히려 운동 속도 조절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야속하게 PT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도착합니다. 


"회원님, 근육통 심하시죠? 그렇다고 오늘 안 오시면 고통만 남고 끝인거예요. 고통을 건강으로 바꾸려면 한 번 더 하셔야 하니까 오늘 꼭 오세요. 대신 오늘은 살살 할게요."

문자를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살살하겠다'는 말엔 속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건드는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안하면 고통만 남고 끝이다'는 말이었습니다.


얼마 전,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의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두려움과 고통은 다르다는 점이다. 달리기 직전까지가 힘들까 봐 두려운 거지,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두려움 같은건 사라진다. 더 힘들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사실 더 힘들어지면 또 사라진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두려움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참아낼 수 있는 고통을 이겨내고 두려움을 이겨내보기로요.


물론~ 그날도 조져지는 건 두려움이 아닌 나였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두려움과 고통을 구분해가며 헬스장을 다녀온 뒤로는 '두려움과 고통은 다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주 어렴풋하게는 알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은 해야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지만, 고통을 참아내는 일은 못할 것 같았던 일을 하게 만듭니다. 

올림픽을 보는 요즘, 부쩍 많이 생각나는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입 밖으로 '일단 해보자'는 말이 꽤나 쉽게 붙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고통을 참아내고 내게 무엇을 주는지를 판단하는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고통을 참아내었는데 얻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다음에 하지 않을 일. 고통을 참아내었는데 생긴 게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두려움 없이 다시 할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을 마주하는 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두려움의 실체가 막상 눈 앞에 다가오면 어떻게든 해낼 내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때 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즘도 제게는 많은 두려움들이 찾아옵니다. 해보지 않은 일, 하기 싫었던 일, 해야했지만 미뤄왔던 일. 그 모든 것들이 제게는 새로운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헬스장에 기꺼이 가게 된 '갓생맨'인 저는 이제 두려움을 거두기로 했습니다. 이제 이 작은 서재에는 그 고통을 다시 겪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만 빠르게 판단하는 조금은 커진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하체 말고 다른 곳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할 때 뭔가를 사야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