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소한 사랑의 기술에 대하여
"당신은 언제 결혼을 결심하셨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비)유부남들에겐 미리 써져 있는 하나의 대본처럼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통 이 질문은 묻는 사람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유는 묻는 이에 따라 그 의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개 이 질문은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받게 됩니다. 하나는 결혼을 동경하는 젊은이들, 다른 하나는 본인의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결심을 재차 확인하고 싶은 이들, 그리고 마지막은 아내입니다.
아, 물론 이 질문은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내 삶이 너무 외로울 것 같다고 언제 생각하셨나요?' 와 같은 다소 생존주의적인 물음과는 결이 다른 낭만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즉, 상대방과 만나는 순간 중 어느 순간에 '이 사람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는지에 대한 다소 로맨틱한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혼자들은 이 질문을 묻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결혼을 결심한 순간이란 것은 명료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기혼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계적으로 대답해 온 지난 기간들과는 별개로, 서로를 다소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 같은건 묻지 않는게 일종의 예의처럼 자리 잡은 것이죠. 나마스떼.
때문에, '결혼 결심의 순간'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때 까지의 시간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고르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게도 답변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첫 질문은 후배였습니다. 본인 생각에 제 결혼이 다소 이르다 생각했는지(지금 생각하니 열받네 왜지), 다소 충격이 묻은 채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함께 하면 편하고 좋다'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아, 그런데 이걸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었달까요.
저는 그때 종종 여자친구(현 아내)의 집에서 머물렀고, 후배와의 약속을 마치고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답변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도대체 언제일까, 나는 언제 결혼을 결심한 것일까. 정말 그런 순간은 없는 것 아닐까. 왜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물어보는 걸까. 법적으로 그런 질문은 금지를 해야하는게 아닐까.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쩌다 섞인 제 양말도 있었고, 제 빨래를 개고 있는 모습이 뭔가 미안해 부리나케 들어가 함께 빨래를 개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지만, 빨래를 같이 갠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익숙한 방식으로 양말을 개었고, 남아있는 그녀의 양말도 정리하기 위해 손을 뻗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양말을 갠 모습은 저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돌돌 말아 대충 꾸겨 넣은 나의 정리법과 달리, 그녀의 것은 다소 가지런했습니다. 누가 봐도 발목이 덜 늘어날 것처럼 섬세하고도 깔끔하게 개여있는 양말은, 순간적으로 나의 정리방식이 더 하등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본능적으로 '혼남'을 직감한 그때, 그녀가 웃으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ㅋㅋ 너는 양말을 그렇게 개는구나. 양말이 좀 늘어나겠지만 부피가 작아서 정리하기엔 그게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이제 우리 같이 살면 누구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해야하니, 어떤게 더 좋은지 한 번 보자."
가만히 있어도 혼나지 않는 삶. 내 서툰 행동에도 존중이 있는 삶.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지 않고 기다려 주는 삶. 아마도 그 삶은 제가 꿈꿔왔던 삶이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날, 이미 결심했던 결혼을 다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같은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양말'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양말을 개는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너희는 그렇게 다정하고 가지런한 양말 정리를 본 적 없을것이다. 나는 혼나지 않았다!
그럼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언젠가 아내에게도 말했는데 약간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제게는 양말이 진심의 순간이었는걸요.
로맨틱한 답변을 준비하라고 말씀드렸죠. 그게 생각보다 이렇게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