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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피아노 Aug 13. 2023

유튜브, 왜 하는 거야?

피아니스트이자 유튜버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예체능 전공으로 번듯한 직장을 갖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매일 상당한 시간을 연습하는데 쓰다 보니 졸업 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은 바쁨을 핑계 삼아 애써 외면했었다. 


어느덧 그 시기는 잔인하게 찾아왔고, 하필 그때는 2020년 5월, 코로나로 전 세계가 정지된 시기였다. 모두가 예민한 시기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진 못했지만, 코로나 시기라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남몰래했다. 모두가 이해할만한 변명거리가 생겼다는 이상한 안도감이랄까. 하지만, 뉴스에서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소름 끼쳤다. 


5살 때부터 거의 매일 해오던 피아노 연습에는 항상 목적이 있었다. 내일 있을 레슨, 다음 주에 있을 연주, 콩쿠르, 입시와 같은 목적이 갑자기 사라지자 혼란스러웠다. 습관적으로 피아노에 앉긴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모르니 집중할 수 없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연습할 목적이 필요해서였다. 연주가 있어야 연습할 것 같았고, 연주를 하려면 사람들이 필요했고, 당시 생각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유튜브였다. 


지금은 비공개로 돼있지만 초반에는 다양한 곡 연주를 올렸다. 클래식곡은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웠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곡, 영화 주제곡 등을 올렸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었고, 금방 흥미를 잃었다. 사실 레슨, 연주, 콩쿠르, 입시 모두 형태만 달랐지, 듣는 사람 마음에 닿고 싶어 연습했던 것인데, 듣는 사람이 없으니 연습할 목적이 또다시 사라졌다. 

초반 영상 (얼굴 나오는 게 부끄러워 목까지만 나온다)


학부, 석사, 박사까지 했으니 음대만 9년 가까이 다닌 샘인데 모든 음대생들은 1년에 한두 번은 독주회를 해야 한다.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분량의 곡을 연주하는데 이를 위해서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곡을 고르고, 외우고, 여러 번 모의 연주를 해보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연습실에서 수많은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무 잘 알기에 약간의 친분만 있어도 친구, 선, 후배의 연주를 되도록 다 가고는 했다. 그런데, 간혹 내가 연주에 갈 거라고 얘기하면 안 와도 된다, 심지어는 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유는 괜히 바쁜데 부담스러울까 봐도 있겠지만, 준비가 잘 안 돼서, 들려주기 부끄러워서가 이유인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오겠다는 사람에게 오지 말라는 건 너무 웃기지 않은가. 졸업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연주라도 엄연한 연주인데... 하지만, 나도 이 모순적인 생각을 모든 연주 전에 하곤 했다. 오지 말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홍보도 안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연주를 포함한 졸업 연주를 가면 씁쓸한 마음으로 연주장을 나왔다. '그들만의 조촐한 잔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잔치를 위해 들어간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면 참 허무했다. 학교 연주뿐 아니라 누군가의 귀국 독주회, 교수님 독주회, 그러니까 슈퍼스타가 아닌 이들의 연주의 객석에는 늘 보던 얼굴, 아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내 연주인데 내가 표를 여러 장 구입해 주변 사람들에게 돌려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들만의 잔치'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에 닿고 싶은 갈망이 들었던 건 이 씁쓸함 때문이었을까. 연습의 목적을 찾고 싶었다는 건 어쩌면 표면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씁쓸함으로 표출됐던 건지도 모른다.   


유튜브에 대해 공부를 해보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올려야 한다고 하나같이 말했다. 나는 어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나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기본자세, 연습방법, 테크닉, 그러니까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면 궁금해할 만한 내용으로 영상을 올리다 보니 점차 사람들이 모였고, 나름 보람도 느꼈다. 내 연주를 들려주기 부끄러운 마음을 완벽히 떨치긴 어려웠지만, 용기 내어 연주 영상도 올리니 이미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연주를 들어줬다. 처음에 가졌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네가 박사학위까지 땄는데, 네가 이런 콩쿠르에서 상도 받았는데.. 왜 그런 기초 내용을 올려?' 

주변에서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또 누군가는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 아무 대가 없이 지식을 나누고 있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유튜브를 하는 목적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오랫동안 내가 속한 세상이 답답했지만 그곳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었고, 외부적인 이유로 시간이 많이 생긴 어느 한 시점에 슬쩍 한 발짝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나와 보니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직 확신은 안서지만 매일 한 걸음씩 우리 밖을 빙글빙글 돌며 조심스래 내 세상을 넓히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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