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어느 지상파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연기자들의 10년 후를 추적하는 내용이었지요. 그 내용이 흥미롭기도, 아련하기도,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자료화면 속 그들의 오디션 현장, 앳되고 달뜬- 조금은 촌스러운 얼굴들이 "지켜봐 주세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기세 좋게 외칩니다. 수건을각 맞춰 접으며, 나도 모르게 풋 웃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저들과 같은 모습일 때가 있지 않았나요.청춘의 한가운데, 꿈 혹은 목표의 문턱에서 패기 넘치게 출사표를 던지던 순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열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던 시절(누구나 가슴속에 "저는 도자기 같은 사람입니다, 1300˚C의 고열에서도 인내하며 ..." 같은 자기소개 한 줄쯤 품고 있잖아요?).
30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는 여전히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연극무대에 오르며, 혈혈단신 외국에서 데뷔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직장인으로, 동기들 중 미모로 손꼽혔다는 누군가는 아기가 남긴 밥을 먹어 없애는 중에도여전히 아름다운 주부로. 저마다 여러 갈래의 길을 걷고 있더군요. 출발점은 모두 같았을 텐데.
그들 중 한 인터뷰이가 기쁜듯, 슬픈듯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어릴 때는 꿈이 직업이었잖아요? 근데 지금 제 꿈은 동사예요. '행복하게 살고싶다.'배우를 해야만 행복한 삶에 좀 더 가까워질 것 같아서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카페 알바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아, 그 말이 빨래를 다 접은 지금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SBS 스페셜 - 297대 1의 꿈, 그 후 10년
오늘은, 내가 퇴사한 지 딱 5개월이 된 날입니다. 누군가는 "벌써 그렇게 됐어?" 놀라고 누군가는 "아직 그거밖에 안 됐어?" 하는 정도의 기간. 평일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던 퇴사 직후의 기쁨은 조금씩 무뎌지고, 내가 지금 부리는 게 여유인지 나태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시간들. 긴 늦잠에 하루를 금방 흘려보내고 밤에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 스트레스라곤 주문해둔 인터넷 마트 배송이 늦어질 때 정도밖에 없는 평온한 삶을 살면서,일상의 대부분을 온통 돈 안되는 것들(낮잠이라던지 발레라던지 유튜브 같은)로만 채우는 와중에, 문득문득 불안감을 감지하는 순간들. 그것은 마치 산들바람이나 어디선가 풍겨오는 탄 냄새와 같이,하루 중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를 스치고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지만 아주 옅게 존재감을 남기는 감각들이지요.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나 자신에게 자주 혀를 차곤 합니다. "돈은 어느 정돈벌었으면 하고 일은 재미있으며 내 권한을 보장했으면 해, 물론 지역은 되도록 가깝게" 라고 새침하게 말하는 내 안의 구직자에게 딱밤을 먹이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다시 회사에 들어가거나 프리랜서의 삶에 도전하거나 지금처럼 돈 안되는 일만 하고 살거나, 그 어느 쪽도 완벽한 선택지가 아닌 것 같군요. 흐르는 시간 속에, 내 안의 '철없는 나'와 '현실적인 나' 사이의 협상은 좀처럼 타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2019 9. Alberta, Canada
하나의 직장을 다니는 것이 하나의 길을 걷는 것이라면, 나의 전 직장은 번듯하되 위험한, 우박과 햇살이 번갈아 떨어지는길이었습니다. 그 위에서 만난 누군가는 내게 우정을, 누군가는 상처를, 누군가는 환멸을 안겨주었고, 나는 때때로 기뻐하고 종종 절망하며 어떻게든그 위를 걸었죠. 어느 심각한 폭풍우를 만나더이상 헤쳐나갈 수 없겠다고 판단했을 때 그곳을 빠져나왔고, 이후미련 때문에 그 길을 되돌아본 적은(전혀) 없습니다. 세상에 그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 길을 빠져나온 지금은 더욱 잘 보이니까요.
아니, 나를 막막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길들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길고, 나는 계속 걸어가야-살아가야- 하며, 나는 의지에 따라 어떤 길도 선택할 수 있으나, 그 선택에는 저마다의 대가가 따를 테니까요. 그 어떤 선택도 내가 원하는 바를 다 주지는 못하겠지요.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덜 후회하고 더 만족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10년 후의 나는, 마치 '인터스텔라'의 주인공마냥,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외치고 싶을까.
아니, 어쩌면 이러한 고민 자체가 배부른 사치는 아닐까요.하루의 대부분은 평화롭고, 돈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니고, 학생과 직장인 시절을 통틀어 이렇게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사는 삶은 또 없었는데요. 스케줄러 귀퉁이에 쓰인 명언처럼 얘기하면, 내가 오늘 게으르게 보낸 오늘은 '노동하는 모든 이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하루'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인간이란 그냥 영원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ㅎㅎ).
퇴사 동기들과 목놓아 불러보는 god-길
다시 그 다큐의 인터뷰로 돌아가 볼까요. 그녀는 본인의 꿈이 '행복해지는 것', 그것에 가까워지는 방법으로 '배우 일을 지속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꿈이 그와 같을 겁니다. 그것을 '직업'이나 '직장'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
나도, 나도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말하자면'행복'을 꿈으로 삼는 순간, 그 꿈은 더이상 결승선을 통과하듯이 정복하는 성질의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러니까 행복이란 애초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닿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얻었다 싶었을 때 방심할 게 아니라 성실히 유지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닐까. 길 너머의 무지개처럼손에 잡히지 않지만 나를 다시 걷게 하는 것.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왜 '행복권'이 아니라 '행복추구권'이었는지, 문득 생각합니다.
그렇다면나의 행복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사랑하는 남편과 보내는 시간, 애정하는 이들과의 교류, 나의 아이디어를 영상이나 글 혹은 다른 콘텐츠의 형태로 작업하는 과정, 그 작업을 통해 누군가에게 재미나 공감을 얻고 창작자로서의 크레딧을 인정받는 것, 길거나 짧은 여행, 충분히 자는 것, 타인의 생각을 영화나 음악 혹은 책의 형태로 향유하는 것, 일주일에 두어 번은 정갈한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에 술 한잔을 곁들일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들을 가능케 하며 먹고사는 방법이, 그러한 길이, 아마 어딘가에 있겠지요. 내가 아직발견하거나 개척하지 못했을 뿐.
잠시 멈춘 발걸음을 다시 천천히 떼는 날에는 그 답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까요. 10년 후쯤에는 고민 없이 "이대로 살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까요. 아마 그때도비슷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행복을 추구하면서, 이 방향이 맞나 계속 의심하면서, 계속 걸을지 다른 길로 빠질지 고민하면서, 우박과 햇살을 동시에 맞으면서, 그렇게 또다른 길 위에 올라 있지 않을까요.
- 2019. 10. 17. 4:20PM
+빨래를 개면서 행복추구권에까지 생각이 나아가다니. 백수의 뇌란 용량이 넉넉해서(=잘 안써서) 팽팽 돌아가는 컴퓨터와 같군.
+결국 이 글은 베스트셀러 제목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일은 하고 싶지만 백수로 살고 싶어'를 길게길게 늘여 쓴 글인가. 코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