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시경의 '처음'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처음 나의 손끝이 당신을 느꼈을 때
나는 당신의 향기에 취하여
오고 가는 세상 속의 모든 일들 사랑 하나로 멈추었고"
이런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로 유명한 뮤지션 강승원이 30여 년 전에 써두었던 곡을, 가수 성시경이 발굴하듯 녹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시간의 모래에 파묻히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처음'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얼마나 낭만적인지.
2.
"생애 첫 기억이 뭐예요?"
좋아하는 인스타툰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내가 받은 질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재미난 화두를 발견하면 나도 어떻게든 답을 해내고 싶어진다. 골똘한 몇 분. 깊은 생각의 바닥을 벅벅 긁어내니 마른 밥풀처럼 몇 가지 단상들이 솟아오른다.
아빠 가게, (유리 아래 초록색 부직포가 깔린) 손님용 테이블에 엎드린 채 전단지 뒷면에 그림을 그리던 나.
두꺼운 흰색 컴퓨터 앞에 나를 앉히고 너구리 게임을 시켜주던 대학생 삼촌.
나를 품안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달리던 아빠(어디로 가야하죠 아버지, 우는 손님이 따님인가요).
하늘을 나는 꿈을 꾼 후 꿈과 현실을 혼동, 나에게는 비행능력이 있다며 유치원 테이블에서 뛰어내리던 나.
'하루가 참 길다' 생각하며 옆으로 누워 EBS를 시청하던 일요일(그때부터 와식인간이었다), 집안에 가득했던 오후의 노란 볕.
이들 중 무엇이 가장 오래된 풍경일까. 순서도 나이도 뒤죽박죽, 잘 모르겠다. 성인 이후에 남는 기억은 보통 일곱 살부터라는데 대충 그즈음이라는 것만 추측할 뿐. 생애 첫 기억이 무엇인지 확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아쉽게 느껴진다. 이럴 바엔 인간의 기억 용량이 7년만 더 컸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갓 세상에 나온 나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엄마아빠의 표정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사는 내내 힘이 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여섯 살, 비오는 날 집 마당에서
3.
살면서 처음 내 손으로 산 책을 기억하시는지?
나의 경우엔 요한나 슈피리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였다. 어린 소녀의 무의식에 전원생활과 다락방에 대한 로망을, 언젠가 스위스와 프랑크푸르트에 가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심어준 책. 언젠가 별이 올려다보이는 지붕 아래 작은 방을 가질 수 있을까.
4.
남편과 함께한 '처음'들을 기념하길 좋아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12월 3일 어느 중국집에서 처음 만났으므로, 매년 12월 3일이 되면 반드시 고추잡채에 소맥을 말아먹는다. 그건 살면서 처음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던 순간에 대한 자축이자,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과거의 우리에게 보내는 음흉한 미소 같은 거다("너 나중에 그 사람이랑 결혼한다, 꽃빵 그만 먹고 자세히 보렴"). 해마다 4월 2일에는 피자를 먹고 꽃놀이를 가는 입춘 의식을 치른다. 연애 후 처음으로 함께 벚꽃을 보고 시카고피자를 먹었던 날이 4월 2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첫 여행을 떠난 날은 석가탄신일 이브였는데, 올해는 '여수밤바다'를 틀어놓고 장범준의 성대떨림을 따라 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피곤하지 않냐고? 아니, 되게 좋다(나만 좋나). 서로의 존재가 공기처럼 당연해진 3년차 부부 겸 5년차 커플에게, 설레고 떨리고 덜 친하던 첫 순간들을 힘껏 떠올리는 것은, 봄밤에 창문을 열듯 달콤하고 신선한 감각이다. 다만 즐거이 회상하되 현재를 아쉬워하진 않는다. 처음의 날들에 도사리던 떨림을, 지금의 여유로움이 성공적으로 대체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나는 매년 열심히 고추잡채에 소맥을 마시고, 시카고피자를 먹고, 여수밤바다를 부를 예정이다. 지금의 단단한 우리도 좋고, 그때의 귀여운 우리도 좋아서 그렇다.
올해 42데이는 집앞에서 소박하게
5.
살면서 처음 가진 장래희망을 기억하시는지?
나의 경우엔 인어공주였는데, 어린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다속에서 숨쉴 수 있는 재주가 없어 포기했던 것 것 같다(참고로 두번째 장래희망은 세일러 머큐리).
6.
서른이 넘도록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이 사실을 알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왜 못 타?" 하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어릴 때 타던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는 과정을 수료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아빠는 딸내미 두발자전거 가르쳐줄 생각은 왜 안 하셨을까, 오토바이는 태워줘 놓고.
이제서야 자전거를 배워볼 마음이 생긴 건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함께 타보지 않겠냐며 꼬드겼던 남편의 영향이 컸다. 요즘 시국에 탁 트인 야외에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갑갑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COVID-19는 와식인간도 운동하게 한다). 어느 볕 좋은 오후, 즉흥적으로 공원 앞 자전거샵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남편은 "난 군대에서 10분 만에 배웠으니 여보도 금방 배울 거야" 라며, 페달만 열심히 밟으면 앞으로 나갈 거라고 했다. 첫 시도부터 제법 각이 나온다며 금방 타겠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이후의 세 시간 동안 나는 정확히 세 번 바닥에 처박혔고, 그 날 자전거 타기에 실패했다. 아스팔트로 고꾸라질 때 나와 눈이 마주친 핑크색 헬멧 차림 꼬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놀래켜서 미안. 몸을 쓰는 일에 익숙지 않은 나에게 그 거대한 철물은 너무나 낯설고 다루기 힘든 것이었다. 남편은 안타까움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다가,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냐며 울부짖던 김첨지처럼 "페달이 있는데 왜 밟지를 못하니!" 했다. 애초에 '신체능력이 극에 달한 20대 초 성인 남성이 군대 선임에게 혼나가며 배우는 자전거'와 '움직임을 극도로 싫어하는 30대 여성이 일주일 내내 걸음 수 100 단위를 기록하다가 처음 타는 자전거'의 진도가 같으면 이상할 일이겠지만, 이렇게까지 못 탈 줄은 몰랐지.
자전거에 내가 끌려가는 형국 그 결과
자전거 타기에 실패하고 돌아온 저녁, 남편은 멍자국이 가득한 내 다리를 보며 울먹거렸고 나는 안티푸라민 냄새만큼이나 독한 오기를 느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오토바이 라이더용 다리보호대를 장만하고, '마틴의 자전거교실' 유튜브 영상을 반복 재생한 후(좋은 랜선 스승이시다), 두 번째 시도에서야 나는 제대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아슬아슬 휘청이던 자전거가 비로소 똑바로 앞으로 나아갈 때, 주변의 풍경이 일정한 속도로 기분 좋게 옆을 스쳐갈 때 "감사합니다!" 혼잣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애를 먹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절로 움직이는 페달의 느낌이 신통했다. 살면서 거의 느껴보지 못했던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기분이 경쾌했다. 여어 바깥양반- 나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네! 물을 사러 잠시 다녀온 남편의 눈이 왕방울해졌다. 히히, 남편에게 꼭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첫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의 기분이 이렇게 뿌듯하고 신기하고 즐거울까.
인간의 기억력이 7년 모자란 통에, 내 첫 걸음마의 순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첫 자전거의 기쁨을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7.
살면서 스쳐온 수많은 '처음'의 순간들을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후엔 숨쉬듯 자연스러워졌으나 그 시작만큼은 특별하고 새삼스러웠던 것들에 대하여. 첫 수업, 첫 출근, 첫 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던 순간, 첫 스마트폰, 처음 혼자 본 영화, 퇴근길에 처음 혼자 먹은 생맥주, 첫 발레, 첫 악기, 연애 1일차, 결혼 1일차- 건빵 속 별사탕처럼 삶 곳곳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 '처음'들을, 그것들이 준 기쁨을, 그리고 그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아이처럼 호들갑 떨며 좋아하던 나를 생각한다.
그러니, 아직도 내 삶에 무수한 '처음'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여전히 어린애로 돌아갈 핑계 혹은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처음이 있어 삶은 흥미롭다.
지금까지 쬐끔 살아본 바로는 그렇다.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첫 무엇'을 찾아다니는 것이 좋겠다.
-2020. 4. 30. 3:00AM
+) 혹시라도 이 글 속에서 당신에게도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다면 대답을 들려주셔도 기쁠 것이에요. 내가 어떤 사람이다 서로 말하는 거 재밌잖아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