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홍콩 수요저널 IT칼럼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농구 약속을 해서 주말에 동네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이쁜 대학생 누나가 타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고, 코끝으로 향수 냄새가 흩날리며 좁은 마을버스 의자에서 바로 옆에 앉은 누나의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고, 학교를 지나 그 누나가 내릴 때까지 얼굴도 못 돌린 채 그대로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그 누나가 내리고 난 뒤 다음 정거장에서 나도 내렸고, 그때서야 정신이 들며 '아 이런 언제 다시 학교로 가지..' 성적인 호기심이 무척 많을 때 겪었던 순수했던 내 어릴 적 에피소드 중에 하나다. 반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이 비었다고 해서 남자 친구들끼리 우르르 그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재밌는걸 하나 구했다면서 제목도 없는 비디오테이프를 틀었다. 그렇다 그건 포르노였다. 그리고 그 첫 경험이 너무 충격적이라 그 비디오에서 나온 장면들 중 몇몇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초등학교 3학년생과 유치원생 아이 둘을 데리고 살게 됐다. 너무 어린애들이라 앞선 내 어릴 적과 비교하면 성적으로 눈을 뜨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패드에 사파리 브라우저의 히스토리 기능을 활용해서 어떤 것들을 보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충격적인 기록들을 몇 개 보게 되었다. 19금 페이지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물론 의도적으로 들어가진 않고 배너나 이상한 광고를 통해서 들어갔겠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앞서 나는 고등학교 때 보았던 기억들이 충격적으로 남아 25년이 지난 지금도 파편들이 남아있는데, 이 어리고 어린아이가 이런 것들을 보고 그 파편들과 잔상들을 계속 안고 살아갈 텐데,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다. IT에 종사한다는 아빠가 간단하게 아이패드 설정에 들어가서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방치한 것에 대해서도 자책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내 이웃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 보호 설정을 하지 않아, 공유하는 차원에서 이번 칼럼에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 보호 설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구글에만 찾아봐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는 기본적인 3가지 권장사항만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1) 성인 콘텐츠 차단 - 우선 위 그림에 간단하게 아이폰(아이패드)에서 성인콘텐츠 제한을 설정하는 방법을 만들었다. 설정으로 들어가신 뒤 Screen Time으로 들어가서 위 프로세스를 따라가면 Web Content 에서 "Limit Adult Websites"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성인 콘텐츠를 차단해준다.
2) 앱 다운로드 - 같은 Content Restrictions 페이지 Apps를 클릭하면 4세, 9세, 12세, 17세 심의로 규정되어 있는 앱만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나이에 맞게 해주면 되지만 조금 과도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도 있기 때문에 12세까지는 나름 허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유튜브 - 일반 유튜브 대신 키즈 유튜브로 대체시켜주시면 수많은 성인 유튜브 콘텐츠 접속 자체를 제한시킬 수 있다. 사파리 브라우저를 통해 유튜브를 들어가려 해도 앞서 설명한 1번 Web Content란에서 유튜브 주소를 제한사이트로 등록하면 차단이 된다.
사실 이런 얘기들은 구글에서 조금만 검색하시면 위 내용보다 더 쉽게 설명해놓은 블로그나 유튜브들이 많다. 이번 칼럼은 디지털의 명과 암중에 암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다뤄보려고 했다. 얼마 전 아내가 내게 준 기사 제목이 초등학생 1/3 이상이 성인 콘텐츠를 본다는 기사였다. 앞서 성인콘텐츠를 제한하는 설정을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무조건 성인콘텐츠를 막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초고도화된 정보화 시대에 초등학생들은 본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경로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식으로 성교육을 해야 하고, 그 나이에 좋고 나쁜 것들을 어떻게 분별할지에 대해서는 당장의 해답을 드릴 순 없지만 지금 이 시기에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하다 불현듯 생각난 10년 전에 읽은 프랑스에서 가장 똑똑한 경제학자라는 자크 아탈리의 "미래의 물결" 이란 책이 생각이 났다.
이 책 독후감을 써둔 게 있었는데 여기서 나는 가장 감명 깊게 본 것이 바로 거점과 감시라는 키워드다. 그중에서도 이 칼럼과 관련이 깊은 '감시'. 저자는 10년 전 글에서 정보가 늘어나면서 우리들의 사생활 노출과 무분별한 정보의 노출을 동시에 감당해내야 하는 'Risk"가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보았다. 내용은 길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원격감시"란 단어는 많이들 들어봤으리라 생각이 든다. CCTV 등으로 위험을 감시하는 것들을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앞으로의 미래는 원격감시 보다 '자가 감시'가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되리라 보았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cctv앱처럼 자가감시 앱이 등장해 "현재 시간, 장소에서 사용자님의 위험 노출은 85%로 아주 높습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해 위험 노출을 낮추세요." 또는 "금주 고객님의 아이가 노출된 사이트에는 성적인 리스크 75%, 폭력 노출 56%로 평균보다 2배 높습니다. 아이의 앱 중에 A앱 , B앱 삭제를 권고드립니다." 등의 인공지능 자가 감시 앱이 등장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조금은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이 든다.
디지털의 명과 암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우리를 덮치고 있다. 우리들은 이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버스에서 대학생 누나에게 설레어 정거장을 무한정 지나쳤던 성적인 호기심과 설렘의 기억과 어두컴컴한 친구의 방에서 나쁜 방식으로 만든 불법 비디오를 보는 기억들이 우리네 시절에는 반반이었다면,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 다음 세대들은 집에 부모가 있어도, 제목 없는 비디오테이프가 없어도 후자의 기억들을 훨씬 많이 접할 수 있는 세대로 자랄 수 있다.
절제된 디지털의 노출과 적절한 성교육으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른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 위 칼럼은 홍콩 수요저널에 함께 게제됐습니다. http://www.wednesdayjournal.net/news/view.html?section=94&category=97&no=32061&fbclid=IwAR0Q_dnF-f85OFS8ipa92Z3yTgBeUbX_qMyrNKMoSTyfPkXBKf87SmDVDDs#gsc.ta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