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틀라이즈> 2017 ⭐️⭐️⭐️⭐️
✔️나는 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대하는 이야기에 유독 눈물이 나는지 몰라
싱글맘 제인은 아들 지기와 함께 몬터레이로 이사를 온다. 등교 첫날, 지기는 같은 반 친구 아마벨라를 괴롭혔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 아마벨라의 엄마, 레나타는 제인과 지기를 따돌리려고 하는데, 매들린과 셀레스트는 제인의 편이 되어준다. 그렇게 엄마들의 싸움이 시작되고 학교 기금 모금 행사 파티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지난겨울, 귀가하는 길에 흔히 바바리맨이라고 불리는 성범죄자를 봤다. 집 앞 골목길에서였다.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배달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짐이 없었다. 배달 음식을 넣을만한 박스나 트렁크, 가방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과 손안에 들어 있는 검붉은 그것. 멈칫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 번호판은 가려진 채였다.
불쾌한(?) 기분은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친구들에게 제법 많이 말하고 다녔다. 별것 아닌 헤프닝처럼 남들에게 얘기하다 보면 나도 이 일을 그리 두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미묘하게 갈렸다. 여성인 친구들은 대개 ‘진짜 짜증 난다’ 혹은 ‘무서웠겠다’는 반응이었고, 남성인 친구들은 대게 ‘미친놈이네’ 혹은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있냐?’는 반응이었다. 여성인 친구들은 본인들이 겪었던 성범죄 경험을 떠올렸고, 남성인 친구들은 내가 겪은 일을 살면서 흔히 겪지 못하는 특별한 일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당연히,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다.)
이처럼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여성이기에 아는 것들이 있다. 성범죄의 경험이 그렇고, 월경의 통증이 그렇고, 취업 시장에서 혹은 직장에서 겪는 차별이 그렇고, 폭력적인 (전) 파트너의 위협에서 오는 두려움이, 임신에 대한 불안함이, 어두운 거리에서 느끼는 공포가 그렇다.
<빅 리틀 라이즈>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이기에 아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죽일 듯이 헐뜯고 다투다가도 한순간에 서로를 지키는 전우가 되는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사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그리 트랜디하지 않다. 드라마 초반에는 눈에 띄는 캐릭터도, 강렬한 사건도 없다. 그저 일상적이고 사소한 주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무언가 큰 사건이 발생할 것을 암시하는 인터뷰 컷이 중간중간 삽입되지만,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미스터리의 단서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여자들의 잡다한 일상의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성폭행에 대한 상처가 있고,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셀레스트와 이야기 한 번 하지 않았던 보니가 셀레스트를 위해 그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을 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너무나 닮아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너무 애잔해서, 그들의 마음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 모든 드라마가 그렇지만, <빅 리틀 라이즈>는 특히나 사람을 보게 하는 드라마라서 좋았다. 뭉근하게 캐릭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굉장했다. 왜 그렇게 많은 작품에 레퍼런스로 언급되는지 알 것 같다. (연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