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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24. 2018

함께 떠난 각자의 여행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산이 좋고, 당신은 바다가 좋은데

우린 어디로가야해?





내가 프로포즈 한 남자는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귀기 전에도 우린 다른 성향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사귀어 보니 상상 이상으로 다른 서로를 마주하고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전 가장 큰 고민거리는 우리의 다름이었을 정도. 가고 싶은 여행지부터 데이트 취향, 즐겨 듣는 음악, 예뻐하는 스타일, 선호하는 TV프로그램, 음식 종류, 라이프 밸런스까지 전부 다 달랐으니까.

우린 나중에 갖게 될지(안될지)도 모르는 집에 놓아둘 조명의 색깔마저도 원하는 게 달랐다. 나는 은은한 전구색 오빠는 쨍한 백색.



디자인 강국 북유럽에 전구색 조명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나서야 밝기만 충분하면 전구색도 괜찮다는 타협을 얻어냄




과거 나의 가장 아팠던 연애 중 좋았던 기억 하나가 있다면 비 오는 날 조수석에 탈 때 흘러나오던 재즈다. 비와 재즈를 좋아하던 나를 위한 그의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생각해보면 그는 내 취향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재즈풍 음악을 좋아해 왔고, 내가 그렇듯 차에 오르면 늘 음악을 트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스포츠와 레저활동을 즐겼으니 많은 데이트는 노력해서 맞춰가지 않아도 되었다.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제법 많은 사람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좋아하는 것들이 겹치는 게 다행스러웠을 뿐, 아홉 개가 같아도 다른 것 하나를 맞춰가는 게 힘든 사람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면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걸 몰랐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는 비슷하지만 잘 안 맞는 사람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맞춰가면서 까지 만날 사람이 아닌, 원래 잘 맞아서 굳이 맞추지 않아도 그냥 편한 사람'을 찾고 있었고, 그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있긴 한 거냐?

 



슬프게도 꽤 오랫동안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좋아요가 가득한 SNS 사랑글귀에서만 보던 그런 관계, 안 맞춰도 잘 맞는 찰떡같은 운명의 상대. 그런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고 함께 아이슬란드로 떠나기 2주 전(프로포즈를 결심하기 전)까지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렇게나 다른 우리가 결혼은 둘째치고 계속 만나도 되긴 한 건지.





Landmannalaugar Iceland, 2017

 


란드만날라우가르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던 밤-프로포즈 하기 전 날 밤-, 아이슬란드에 와서 처음으로 싸움 비슷한걸 했다. 이렇게 추운 밤 산 아래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느냐, 카시트를 접고 차박을 하느냐로.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고, 꽤나 진지한 실랑이를 했다.


여기서 캠핑 한 번 해보겠다고 겨우겨우 왔는데 어떻게 차박을 할 수가 있느냐-
하지만 이렇게 추운데 동계용 침낭도 없이 어떻게 캠핑을 할 수가 있느냐-


'이 밤이 죽을 만큼 힘들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절대 텐트는 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날 밤은 내가 이겼다. 그가 져줬다.

우리는 텐트를 쳤고, 때마침 찾아와 준 오로라를 보면서 신라면을 먹었다.






이렇게 너무 다른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조건반대와 조건찬성의 연속이다. 원래 잘 맞기는커녕 1부터 10까지 다르니까 어쩔 수 없다.

레스토랑의 식사와 전자레인지용 마트 피자 중 한 끼를 고르는 것, 거대한 산과 더 거대한 바다 중 하나를 골라 다음날의 루트를 짜는 것, 지친 하루를 위한 휴식 또는 화려한 나이트 비어 한 잔을 결정하는 것 까지.

우리 여행의 매 순간은 타협인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는 지인들은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서 '둘이 잘 맞아서 좋겠다'고 마냥 부러워 한다. 근데 그게 전부 무수한 양보와 타협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걸 알려나.


우리의 여행과 연애는 사뭇 비슷하다. 내 것을 (많이) 주장하고, 네 것을 (조금) 들어본다.

그리고 그와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범위까지의 타협, 타협, 그리고 또 타협. 써놓고 보면 참 쉬운 말인데 이게 그렇게 힘든 사람이 있긴 하더라.



등 따시고 배불러 잠들기 전에 다음날 계획을 미리 짜 놔야 한다, 아니면 나 혼자 짜야하는 불상사가 생김




겉으로 드러나는 다름이 다가 아니다. 수많은 타협 이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또 다른 문제다. 

로가 느끼는 감수성의 깊이, 감성의 농도, 감동의 크기가 다른 건 당연했다. 조건찬성과 타협 후에 느끼는 각자의 만족도가 같을 수는 없었으니까.


바다 대신 산을 여행한 그는 그 산을 얼마나 느꼈을까. 차박을 포기하고 친 텐트 위에 뜬 오로라가 과연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그는 그날 밤 오로라보다 신라면을 더 또렷이 기억할게 분명하다. 우리가 타협한 선택을 마주하고 느끼는 것이 이토록 다르기에 우리는 같은 곳을 함께 여행하지만 결국 각자의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함께하는 각자의 여행이 늘어갈수록 빠른 포기와 다툼 없는 타협은 자연스러워졌다.

우기고 버티다가 10분 안에 웃어버리는 게 지는 사람, 혹은 져주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의 '포기'는 상해버린 자존심이 아닌 다음 협상에 써먹을 땡큐카드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번 오고가는 땡큐카드 사이엔 우리도 모르는 중간이 생겨났다.






좋은 중간을 발견하는 여행의 연속이 결혼이라면, 너무 다른 우리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Photography by Jisoo




그러니까 우린 계속해서 좋은 중간을 찾아가기로 한다.

사랑할 땐, 여행을-


최대한 많이 많이. 








http://instagram.com/so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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