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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May 24. 2024

240524-16번째 진료

확실히 정신병원에 가는 일에 게을러지고, 재미없어하는 것 같다. 

오늘도 늦잠을 자는 바람에 병원에 못 갈 뻔했다.

그래도 약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허둥지둥 택시 타고 갔다.

다행히 짧은 시간이지만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아무래도 변비와 손바닥의 땀이 정신과약의 부작용 같다고 말을 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의심 가는 약의 용량을 줄여주었다.


너무 늦게 가서, 제대로 된 상담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말을 하기 싫어서 일부러 병원 가는 것을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불과 그저께 드라이기를 던지면서 남편에게 화를 냈으니까 



***


다른 날처럼, 새벽에 자고 늦게 일어난 우리는 출근준비로 정신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유난히 그날따라. 나를 한심하게 보면서, 옷을 좀 사라고, 좀 꾸미라고 했다.

나는 그 말 하나에 급발진했다.


정말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결혼 전에는 우리 동네 전지현이었고, 송혜교였고, 고현정이었다. 아이폰 닮은 꼴 어플에서도 고현정 80% 가 나왔었더랬다. 패션지 기자로 잠시 활동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센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외모꾸밈노동을 그때부터도 싫어했기에, 미용실은 자주 갔지만, 쇼핑은 거의 안 했었다. 엄마랑 언니가 입히는 맛이 난다며 사다 주는 옷을 잘 코디해서 입는 정도였다. 

나는 그때도 지적허영심에 대한 욕구가 외모욕구보다 컸으니까.


문제는 결혼 이후, 일단 돈이 너무너무 없었다. 애들 빤스도 얻어다 입히면서, 어디 감히 내가 양말 한 짝을 살 수 있었느냔 말이다. 그다음은 시간이 없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옷을 사러 갈 수도 없었고 맡길 데도 없었고, 일다니다보니 주말에 시간이 나면 애들이랑 쇼핑몰이 아니라, 공원을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더더욱 쇼핑몰은 가지 못했다. 지금도 바쁜 것이 가장 크다. ( 게다가 나는 운전도 못 한다 )


안다. 사실 쇼핑을 싫어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을

애들이랑 자전거 타고 한강 갈래, 쇼핑몰갈래 라고 하면, 한강공원을 택하는 사람이다 보니

쇼핑에 할애할 시간은 자꾸 뒤로 뒤로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쇼핑은 정말 싫다. 허름한 나를 위아래로 보면서 뚱뚱한 나를 보면서 난감해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마음에 드는 것은 꼭 내 생각보다 0이 하나 더 붙어서 사지 못하는 현실을 느낄 때마다 

쇼핑은 시간낭비 같다는 생각이다. 


나도 내가 지금 허름하게 하고 다니고,

미적으로는 도무지 봐줄 수가 없는 상황인 것도 잘 안다. 


그런데! 그래도! 남편이 감히 나한테 꾸미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남편은 나에게 시간도 돈도 자신감도 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의 외모를 지적하는 남편에게 화를 내며 드라이기를 던져 고장 내뜨리고

"나한테 네가 감히 그런 말을 하냐! 돈을 주던지! 시간을 주던지! 네가 내키는 시간에 갑자기 쇼핑가 자고 하는 것도 하나도 안 반가워. 미리미리 이때 가자고 해야지 항상 갑자기 갑자기 그런 것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 지르고, 드라이기 던진 것에 미안해하지도 않느냐는 말에 "절대로 하나도 안 미안해, 너한테는 안 미안해!"라고 고래고래 지하주차장에서까지 소리를 질렀다. 


목이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약을 2일 정도 안 먹은 것이 생각났다. 

약 때문일까? 아님 정말 외모지적에 화가 나서 일까?


남편은 원래 사과를 먼저 안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동안의 교육의 결과 1시간 뒤쯤 전화로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자기가 그러면 안 되는데 미안하다고... 나는 받아주었다. 남편이 이렇게 바뀌어서 다행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혼하네 마네 또 이혼 변호사 무료 상담을 찾고 있었을 거니까. 돈 벌어야 할 시간에 그러고 앉아있으면 좋을 게 없다. 가뜩이나 요즘 장사도 안되는데......


***


그날 이후 다시 약을 열심히 먹고

지난주 내내 마셨던 소주를 버리고, 맥주도 다 마셔버리고, 집에 술을 당분간 안 들이기로 했다. 

약을 먹고, 술을 당분간 끊고

건실하게 다시 시작해야지 처음 진료받았던 것처럼 다시 마음가짐을 세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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