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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May 18. 2024

240514 - 15번째 진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혼을 안 해요?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말에 신경안정제를 더 세게 처방해 주셨다. 

사실 아침약도 센 것 같긴 하다. 변비가 심해지고, 손바닥에 땀이 많이 난다. 

하지만 활력을 준다는 아침약을 줄이면 아침이 더 힘들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다. 

너무 바쁜 게 문제인데.. 그렇게 살아야 먹고살 수 있으니, 그나마 병원에 약 타러 올 시간이 있는 게 다행이다.

10분 정도의 진료시간은 언제나 기가 막히게 길지도 짧지도 않다. 이케아에 나오는 미트볼의 소스 같다. 기가 막히게 미트볼의 개수와 바닥이 보이게 똑 떨어지는 얄미운 비율의 그 소스 말이다. 그렇게 바닥을 싹싹 긁어먹어도 배가 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은 짠돌이 미트볼 말이다. 


****


지금 나는 거의 매일 12시 넘어서, 새벽 1-2시에 귀가하는 날이 많다.

이렇게 바쁜 이유는 사업제 1의 직원이 없어서 

내가 사업체 1과 사업체 2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고

남편 사장님은 두 개 사업장의 사장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어서이다.

정말 둘이 밥 한 끼 먹지도 못할 만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그렇다고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니다. 눈물의 4월과 5월을 보내고 있다. 크흡 ㅠㅠ )

장사란 자고로 문을 닫았을 때가 더 바쁘다.

장부정리, 재고정리, 각종 서류정리 등등 그 과정에서 회의도 하고 그러면 새벽 3시에나 잠이 들고 

아침에는 애들 가는 것도 못 보고, 10시 30분까지 잠이 들고 

다시 11시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애들한테 못할 짓이다. 

그나마 이제는 편하게 배달음식을 시킬 만큼, 매일매일 외식을 하고, 치킨도 자주 시켜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졌다는 것이 ( 내 기준 호사스러운 것이 ) 큰 위안이 되긴 한다. 

 

그래도

나를 부려먹는 남편, 결혼하고 정말 하루도 편하게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살림하고, 육아하고, 시집살이도 당했던 나날들 생각과

아직도! 투잡을 뛰게 만들면서, 애들 공부는커녕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해 먹이는 엄마로 만든 

남편과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울컥! 한다

이 울컥! 때문에, 열심히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이고, 

약의 효과로 속으로만 잠시 욱! 하고 말지, 예전처럼 쌍욕을 하거나, 애들을 때리거나 하지 않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친정에 갚을 돈이 있다

둘째, 남편이 조금씩 또 바뀌긴 한다

셋째, 말로만이 아니라, 생부라는 이유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

넷째, 성실하다. 남편은 정말 1분도 낭비 없이 일을 하며 산다. 존경스럽다.

다섯째, 남편과 함께 발전을 한 시간들이 있다. 


말 그대로, 첫 번째는 친정에 약 5천만 원 정도 빚이 있다. 친정에 매달 이자를 내고 있고, 친정에서 그 돈이 없다고 해서 힘든 상황은 아니다. 말 그대로 여윳돈을 빌려주신 것이다. 그래도 친정 빚을 이 남자가 갚아야. 편하게 이혼을 하지, 이혼하고 돈 계산하는 것은 더 상황이 복잡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남편을 도와야 친정 빚을 더 빨리 갚을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빚을 갚고, 나눌 게 있어야 이혼을 하지"가 더 정확하긴 하다. 처음 사기로 전 재산을 날렸을 때, 사기당한 것만 해결하고 돈 좀 모아서 나 혼자 살 오피스텔 하나라도 마련해서 이혼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빚만 가득하고, 나눌 재산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혼하면서 재산을 나눠가지지는 못할망정, 빚만 나눠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나처럼 경단녀는 노점상에서 호떡을 팔면 모를까 취업도 못하는 상황인데.... 이혼은 정말 돈 생각하면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사람이 바뀌기란 매우 어려운 법인데, 내 남편은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사람이 바뀌었다. 완전 가부장적인 남자가 딸들을 낳고, 내 악다구니를 진지하게 분석하며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진짜 본인을 바꾸더라. 

이제는 설거지도 하려고 하고, 내가 집안 청소하면 가만히 안 있고 뭐라도 하고, 시가에 관해서 내가 서운했던 점들도 이제는 이해를 하고, 시어머니 앞에서 무조건 내 말에 입 다물면서 복종하면서 "며느리 건드리면 아들이 힘드니 며느리 건들지 말라"라고 말도 했다.

무엇보다 이건 좀 미안한데. 예술가였던 사람이.. 비즈니스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맨날 "그 장인 정신으로 순댓국을 만들어 팔면, 정말 세계최고의 순댓국집을 하면서 서민갑부에도 나오고 재벌이 될 건데, 왜 하필 음악을 해서 이렇게 굶기냐"라고 말을 했는데.

미안하게도 물론 음악을 하지만, 장사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장사를 잘해서 매일 배달음식을 시켜도 될 정도로, 애들 친구들에게 매주 치킨을 시켜줘도 될 정도로 돈도 잘 번다. 

그렇게 사람이 바뀌려고 노력을 하고, 실제로 바뀌었다. 악다구니할 때마다 사람이 바뀌니 기회를 안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번씩 기회를 주다 보니 15년이 되었다. 


셋째는 진짜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정말 5분도 안 봐주고 기저귀하나도 안 갈아주었기에, 너는 아빠도 아니라고 악을 썼었다. 그런데 애들이 크고, 말을 하고, 생활이 안정되어 일주일에 3-4시간은 애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더더욱 부성애가 끓고 있다. 

자신의 음악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면서, 장사를 하면서까지 돈을 열심히 번다.  

돈을 버는 목적은 나도 남편도 같다. 딸들이 훗날 전업주부가 되어도, 본인 통장에 매달 50만 원이라도 꽂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미래의 사위에게 기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남편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똑같은 말을 했고, 그 말에 성공한 우리 친정 아빠"생각난다. 그래서 남편이 진짜 애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기에 이혼이 쉽지 않다.


넷째 정말 성실하다. 나도 결혼 후, 친구들 만난 게 5번도 안되지만,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랑 만나기는커녕 전화도 잘 안 하고 철저하게 일만 한다. 담배 피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1분도 쉬지 않고 일한다. 그래서 음악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그 덕에 장사도 그럭저럭 잘 되는 편으로 가는 중이다. 당구도 안치고, 만화도 안 보고, 술은 더더욱이나 안 마시고, 야구도 하이라이트로 겨우 볼까 말까 하면서, 새벽 3시까지, 척척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진짜 성실하다. 그러니 저 사람 옆에 있으면 나중에는 부자가 될 것 같아서 함부로 이혼을 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는 함께 성공한 이력이 있다.

우리는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린 적이 있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친정에서 친정언니한테 꾼 2천만 원을 대신 갚아주었고, 애들을 오후에 마음 편하게 돌봐주셔서, 우리 부부가 함께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나도 콜센터에 취직해서 인센 받으며 즐겁고 편하게 일하면서 빚을 갚았고, 남편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공부하며 또 들어오는 음악일을 하나도 재지 않고 다 받아서 일하며 더욱 달렸다. 그래서 2년 만에 사기로 인한 손실을 다 메꾸고, 그 후 3년 동안 돈을 모아서 (물론 대출을 어마무시하게 받아서) 서울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비즈니스의 파트너로 남편의 첫 번째 부하직원으로 함께 하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를 볼 수 있었고, 내가 결혼 전, 사회생활을 얼마나 염치없게 했는지도 깨달았으며,

사회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열심히 해야, 부스러기 돈이라도 나눠주는 야박한 것이구나"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열심히 성실히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보여준 선생님이자

사업의 파트너인 것이다. 

함께 돈을 벌고 모은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이런 인연인 것이 너무나 다행이어서 함부로 이 인연을 깨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이성적으로 이혼을 안 하는, 못하는 이유를 

바닥을 박박 긁으면서 찾고 앉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인 듯한다. 



남편은 이런 거 저런 거 다 필요 없고 "사랑하니까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다. 나는 널 사랑한다. 너도 날 사랑할 것이다."라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퉁 치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함께 돈을 벌지 않았다면, 친정에서 애들을 봐주면서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작에 이혼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도 내가 애들을 팽개치고 함께 돈을 벌지 않는다면 우린 이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생활비를 거의 안 줄 테니까. 남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 결혼 15년 동안 내가 돈을 안 번 적은 큰애 임신과 출산기간 2년뿐이었고, 그 뒤로는 하루도 쉰 적이 없기에 ( 출근길에 둘째 낳은 사람 여기 있음 ) 남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실제로 지금도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일을 두 탕을 뛰고 남자 못지않게 물건을 들고 나르고 포장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단 한 번도 "하루는 쉬어"라는 말을 안 한다. 


사실

나도 이렇게 이성적으로 이혼을 안 하는 이유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서 살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남편처럼 사랑해서 라는 말이 안 나오는 이유는 섹스리스에게 사랑이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 길게 적고 보니 결국은 섹스리스가 문제였나?


15년 동안 포기가 안 되는 것을 보면 

내가 짐승이 아닌가 싶다. 

내가 짐승인 것이 우리 결혼생활의 문제인가?

다음 정신과 진료 때에는 이 말을 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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