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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Jun 08. 2024

이런 말 하면 꼰대겠지?

이대리, 데이트하느라 돈 쓰느니, 얼른 결혼을 해.

젊어서는 좀 힘들어도 낡은 단칸방에서 살아도 되잖아.

결혼해서 애 없을 때가 제일 돈 잘 모을 때야. 벌써 연애만 몇 년째라면서, 준비가 더 되면 결혼한다지만, 그놈의 준비는 하려고 하면 끝이 없고, 어차피 집에서 못 도와주면 준비 못하는 거야.

둘 다 고생할 각오 있고, 애 늦게 낳는 거 합의되고, 둘 다 돈 안 쓰고, 알콩달콩 신혼생활 즐길 마음만 있으면, 빨리 결혼하는 게 남는 거야.

연애는 돈을 버리는 거지 모으지를 못해.

결혼하면 내가 건조기는 사줄게.



이대리, 돈이 중요해, 돈을 아껴야 해, 이번에 달에 10만 원 정도 월급이 오를 건데, 그 돈 올랐다고 쓰면 안 된다. 단돈 10만 원이라도 1년 모으면 이자까지 123만 원은 된다고.

오른 만큼은 저금하고, 첫 월급만큼만 쓰는 생활을 10년은 해야 해. 그래야 종잣돈을 모으고, 월세에서 전세로 가지, 전세만 가면, 그때부터는 돈 모으는 게 더 재미있고 빨리 모을 거야. 돈도 더 많이 벌 거고, 대표님하고 이야기 다 됐어. 자기가 성실하게 지금처럼 꾸준하게 일하면 섭섭지 않게 잘 챙겨줄 거야.


이대리, 성실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은 워라밸을 포기하는 거야. 워라밸 지키는 건 워가 없어 그냥 라밸이야. 

그렇게 남을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쉬면, 돈을 벌겠어? 아무것도 안돼. 그냥 정말 먹고는 사는 것뿐이야. 

열심히 한다는 것은 하나를 포기하는 거야. 일해서 돈 모아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평범하게 살려면, 평범하게 일해서는 안돼. 지금 나름의 성실함이 아니라, 그 누가 봐도 성실하고 열심히 한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해야, 진짜 열심히가 되는 거야. 

여기 근무하면서 항상 칼퇴근을 하게 했지만. 칼퇴근을 네가 버릴 정도로 일을 더 많이 달라고 해야지, 그 정도로 일을 많이 하고, 잘해야. 내년 기본급 인상이 아니라, 보너스를 받을 것 아니야. 

일을 좀 많이 주면, 퇴근을 좀 늦게 하더라도 시킨 일 다 하고 가야 미안함과 고마움이 생기지, 

일을 좀 많이 준다고, 열심히 일하다가 시간 되면 벌떡 일어나서 그냥 가면, 그건 그냥 성실한 거지, 열심히가 아니지.

그리고 그렇게 일하면... 나도 급여를 더 못주는 거야. 

나는 네가 진짜 우리 회사 원년 멤버로 잘 크면 좋겠어. 지금 규모는 작아도 탄탄한 회사잖아. 비록 사장 두 명이 부부 사이고, 유일한 직원이 이대리이긴 해도. 나는 이미 다음 사업 생각 중이고, 이대리가 관리직이 되어서 돈도 많이 벌고, 아래 부하직원들도 부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 그런데 지금처럼 정도로는 나는 맡기질 못해... 점점 일이 많아질 건데. 칼퇴근은 불가능하지, 물론 그만큼 자기 학벌 생각 안 하고, 능력만 보고, 급여는 줄 거야. 그런데 그런 기회를 지금 상황에서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을 먼저 주고 이야기하라고는 하지 마. 급여는 후불이니까. 


******


지금 직원이 일한 지 벌써 8개월이 되었다. 물론 1년씩 근무한 사람들이 2명이나 지나갔기 때문에, 최장수 근로자는 아니지만, 집도 회사와 가깝고, 나랑도 잘 맞고, 여러 면에서 합이 잘 맞는 직원이다. 

나이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이지만,

우리 회사 가 거의 첫 회사이지만

요즘 MZ 세대답지 않게, 나름 성실하게 중년의 사장들에게 잘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도 그에 맞게 항상 대리님이라고 불러주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존댓말 해주고, 사생활을 캐지 않으며, 칭찬도 해주고, 과하게 일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칼퇴근을 정말 잘 지켜주고 있다.


이런저런 일을 시킬 때마다. 생각한 정도는 해내는 그에게 기대가 크다. 

그리고 일을 떠나서 나 어릴 때 생각나서 막 조언을 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나는 아무도 이런 말을 안 해줘서 20대를 노는 것으로 날렸는데

30대에 결혼해서 애 낳고, 그때서야 현실을 알고 진짜 열심히 살면서, 열심히 사는 게 뭔지 몸으로 배워나갔는데.

이 직원은 그런 게 없으니 "나름" 열심히만 하고, "나름" 미래의 고민을 쪼끔 하는 듯하다.


하루 앉혀놓고, 너의 '나름"은 객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기에, 

일단 돈을 벌어야 뭣이라도 하니까.

돈을 제대로 벌고, 모을 생각을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다. 


그런데..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것 안다.

꼰대도 이런 말을 자식에게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시대니까.

그래서 여기에 쓴다.


짜식아! 내가 이만큼 너를 생각한단다! 그 마음을 아느뇨?


진짜 진짜 약속한다

이런 말을 입밖으로는 내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정말 압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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