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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09. 2021

문과생으로 살아남기_Part 2-2

- 전환배치, TF팀에서의 생존 전략

계획대로 내 인생이 풀렸다면, 이 지경까진 아니었겠지

다들 그렇겠지만, 우리 인생의 궤도는 생각보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많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등학교때까지는 내가 목표한대로 인생이 꽤나 풀렸었고, 잠시 세상을 쉽게 본적도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그런 자만심 때문인지 모르지만, 큰 코다치는 날이 언제나 오기 마련이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내가 예상한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이 없듯, 회사생활도 내가 생각한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특히, 이공계열과 달리 직무상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직무를 갖고 있는 일부 문과계열의 특성상 전환배치라는 일 또는 TF팀에 몸을 담게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건 입사 1~3년차, 주니어에 해당하는 신입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입사 10개월만에 배치된 팀에서 10개월만에 TF팀으로 배치 받게 되는 일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것은 내게 현실이 됐고, 그건 내가 헤쳐나가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됐다.


그럼 전환 배치를 받게 됐던 그 날, 그 시간으로 한 번 돌아가볼까 한다.


하루 아침에 팀에서 내 자리가 사라졌다.

그 날, 그 점심 시간 즈음에 공기가 나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여느날과 다를바 없이 사수,팀원분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처리할 업무를 머리속에 대충 그리며 엘리베이터를 오르고 있었다.


자리로 걸어오던 중, 타부서 팀장님과 본부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당시에는 내가 아닌 내 뒷편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겠거니 가벼운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직감은 뭔가 안좋은 촉을 느끼고 있었다.


오후 업무는 1시즈음 시작됐다. 그렇게 업체 담당자에게 필요한 내용을 메신저를 통해 전달하고, 가벼운 업무상 메일을 작성하고 있던 찰나, 팀 내 메신저 채팅방에 전체 팀원을 회의실 소집 명령이 팀장님을 통해 떨어졌다.


뭔가 잘못돼고 있구나.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팀원들이 모두 모인 회의실 자리에서 팀장님은 어렵게 한마디를 뗐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 정말 유감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 사업부의 매출 실적이 점차 악화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TF팀을 조직한다.


해당 TF팀의 팀장을 기존 타 부서 팀장이 맡게 됐고, 각 팀 별 인원을 1명씩 요청한 상태이다. TF팀장의 사업 아이템을 바탕으로 각 부서별 적합한 신입/대리급 중 인원을 선발했고, 그 선발 인원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였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게 되면, 아무런 생각과 표정이 없어지고 멍해지는 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뭔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정보가 없었고, 아무 낌새가 없이 진행된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내가 뭔가 반응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선택권은 없었고,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는 걸 최소한의 눈치로 알 수 있었다. 팀장님께서는 내게 발언 기회를 줬고, 우선 결정된 일인만큼 별말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당시에 표현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지나고 나서 팀원들에게 들은 말이지만, 신입치고는 내가 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어른스러움을 많이들 느꼈다고 한다.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멘탈이 산산조각이나서 아무말도 못하고,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정을 붙여가던 팀에서 새로운 TF팀으로의 배치를 받아들여야했고, 그런 나에게는 2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전환 배치 수용의 5단계


엘리자베르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읽었거나, 주요 교양 서적을 읽어본 사람들은 얼추 아는 "죽음의 수용 단계"를 인용해볼까 한다.


내가 TF팀에 배치되고, 이를 수용하게 된 과정도 거의 동일했던 것 같다.



1단계~2단계 : 부정 > 분노 단계

- 첫 일주일은 그럴리가 없다고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수/파트장/팀장님께 싫은소리 듣지 않으면서, 제 역할 잘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만큼 적응력이 좋았던 팀원이었는데, 이런 나를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이 버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팀장님과의 면담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팀장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회사에서는 결국 주어지는 일이 천직이라는 것이었다.


조직의 상황상 누군가는 가야하는 자리이고, 새로운 팀장이 나를 팀원으로 Pick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은 떠나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본부장님 결재까지 끝난 상황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커리어는? 이 상태로라면 내가 기존에 계획하고 생각한 커리어는 완전 틀어져버릴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수단으로 이런 내용을 텍스트로 정리해 인사팀에 메일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지만, 결국 메일을 발송하지는 못했다. (당시엔 인사팀이랑 면담하게되면 회사에 찍혀서 블랙리스트 같은 명단에 올라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그렇게 소심한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약 열 흘 동안 지속해갔던 것 같다. 주변 지인들/선배들에게 사정을 털어놓으며, 현실을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이 돼어 전환배치를 인정해야하는 순간이 됐음을 느끼게됐다.



3~4단계 : 타협 > 절망 단계

- 그렇게 열흘 정도를 기존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 외에 부정과 분노의 단계로 살아가다보니, 어쨌든 나도 이 팀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분노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게 있겠는가 인정하는 한편, 그럼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렇게 커리어가 무너져서 어디 이직도 못하는 빈 깡통 신세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들기 시작했다.


TF팀이라는 말이 밖에서 봤을 때 번지르르 해보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까고 보면 별거 아니거나 던져봤다가 별거 아니면 버리는 카드가 될 가능성인 경우가 대다수인게 사실이다. (분명 각 팀의 에이스만모여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당시 우리 회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절대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회사에서 이런 케이스가 많다는 걸 주위에서 보고 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내용이니 참고바란다.)


당시에는 이 팀이 와해되고 나면 나의 소속이 어떻게될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 결국 나의 회사생활은 10개월만에 거의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럼, 내 커리어는 진짜 여기서 무너졌을까?


절망적인 이야기를 이어가다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로 일단 2번째 파트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당시의 억울하고, 치욕스러웠던 다양한 감정들이 올라와 다소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 갈음해보고자 한다.


결론은, 그 이후 나름의 치열한 기획과 전략으로 성과물을 만들어냈고, TF팀에서의 경험이 새로운 커리어를 만드는데 많은 경험과 도움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절대 TF팀에서의 과정이 순탄하거나, 성공적이었다고만 말할수는 없다.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긴 했지만, 팀은 해체됐고, 이후 우리 서비스를 지속해서 운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또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게됐고, 해당 부서에서 또 나름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를 통해 짧은 경력동안, 다른 동기들은 쌓을 수 없었던 하이브리드 형태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유일한 MD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 긴 글을 통해 문과생 주니어급 회사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길게보면 주니어때 겪게되는 모든 경험은 장기적으로 득이라고.


내가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거나, 회사에서의 법에 위반되는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는 이상 직무적으로 겪게되는 모든 상황과 경험은 사실 돈으로 주고도 살 수 없는 의미 있는 경험이다. 


물론 그런 경험을 나의 의지대로만 할 수 있다면야 더욱 좋겠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나의 의지대로 직무/부서를 선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않다.


결국 회사가 나를 선택하고, 상급자인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야 다음 스텝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주니어 레벨에서의 의사결정이다.


최소한 시니어급이 됐을 때는 그런 선택권이 나에게 있을 수 있게 나의 역량과 전문성을 주니어 시절의 경험을 통해 갈고 닦는 것이 성숙한 우리 문과 직장인의 자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경험을 통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문과 생존자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글은 이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다음 글을 통해서는 TF팀에서의 치열했던 생존과정과 TF팀 해체 이후, 우리는 어디로 흩어지게 되는가,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 전해보고자 한다.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보낸 문과생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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