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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OM May 02. 2016

새로운 시작

[나의 이야기2]

어떻게든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다.

하루하루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시작을 못했으니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 글은,

나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이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는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참 오랫동안.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썼었다.

그 이야기를 쓰느라 정작 나에 대한 기록,

그리고 내 아이의 대한 일상의 기록은

많이 남기지 못했다.


신문사를 떠나며

이제는 한번쯤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글을 시작한다.


김기자, 상담소로 들어가 버리다


가끔은 아직도 나를

"김기자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상담소를 취재온 기자들도

감사하게도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러준다.


그 이름에서 나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래, 나 기자였었구나.


기자 생활을 접고 선택한 새로운 일터는 상담소다.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쉽게 말하면 말 그대로 상담하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상담소를 알리고, 상담소의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심리학과 상담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상담소도 오래전 내 취재처 중 한 곳이었는데,

난 홍보 담당자를 아주 못살게 구는 까탈스러운 기자였다.


상담소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쉬웠고

그래서 기사를 쓴다며 귀찮은 정보를 많이도 요구했었다.


그러면서 가끔은

"아, 내가 가서 정말 일해주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동부로 이사를 갔었고,

다시 LA로 돌아와서는 그 말이 진짜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이제 아예 상담소 안으로 들어와 버린

전에 기자였던 사람이 되었다.


편견과 선입견과 싸우다

며칠 전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내가 3층을 누르는 것을 보시더니

"3층엔 뭐가 있어요?" 물었다.


"상담소가 있어요"

내 대답에 목소리를 낮추더니

"아, 문제 있는 사람들 가는 곳?" 이러셨다.


한번은 아는 분을 만났는데

함께 일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우리 상담소에서 미팅을 한번 하자고 했다.

"안돼요. 사람들이 보면 저 가정폭력 했는줄 알아요"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최근에 상담소가 리모델링을 하면서 카페트를 다시 깔았다.

그 카펫 회사 사장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하러 토요일에 나왔거든요. 6층에 학원이 있잖아요.

우리 교회 집사님이랑 엘레베이터를 같이 탄거지.

3층에서 내리는데 나를 좀 이상하게 보는 것 같더라고.

그렇다고 내가 붙잡고 저 여기 상담소 공사 맡았어요 할 순 없는거잖아요"

그래서 뭔가 좀 시원하지 않은 감정이 있었는데 다음날 교회 갔더니

한 집사님이 슬며시 오시더니 묻더란다.

"박 집사님 요즘 뭐 힘든 일 있어요? 집에 문제 있어? 어제 OO집사가 박집사 봤다던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깨가 무겁다.

이러한 편견과 선입견과 맞서 싸워야(?)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신문을 찍던 날을 생각하다

조금씩 이런 선입견과 편견과 싸우면서

상담소의 문턱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전 '힐링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했는데

대상이 엄마들이었고, 기대보다 행사가 잘 끝났다.  


행사 참석자들에게 줄 기념품을 만들면서

1회 무료 상담권을 디자인했다.


구석에 조그맣게

"마음에 바르는 빨간약"이라고 적어 넣었다.


언제인가 마음이 정말정말 아팠던 날,

마음에도 바르는 만병통치약 빨간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심리학을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이 알게되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을쓰게 된다면

꼭 제목은 "마음에 바르는 빨간약"이라고 해야지, 생각했었다.


행사 준비로 늦게까지 남았던 날,

복사되어 나오는 1회 무료 상담권을 보면서

정말이지 가슴이 뛰었다.


1999년 겨울의 어느날,

생각지도 않게 LA에서 신문창간팀에 합류하게 됐고

창간호를 찍을 때 국장님은 나를 인쇄소까지 데리고 가 주셨다.


착착착 기계에서 신문이 찍혀 나오는 모습을 지켜볼때

정말이지 가슴이 뛰었다.


복사기 인쇄물을 보면서

그 새벽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슴이 뛰었다.


누군가 '가슴이 뛰는 일을 해야 한다' 말할 때마다 난 마음이 무거웠다.


내 한계를 내가 알기에,

기자를 계속 할 순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난 무얼한담.

난 이제 어떻게 한담...


다시 가슴 뛰는 일을 찾았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중에 오늘을 꼭 기억하라


시간의 힘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또 다시 내 가슴이 더 이상 뛰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매일매일 출근하고,

집에도 안가고 회사에만 있고 싶었던,

그렇게 일하던 기자시절도 시간이 지나니 일상이 된 것처럼

지금의 일도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기자시절,

그 긴박한 하루하루도 무료해 질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윤전기에서 초판이 찍혀 나오던 그날 새벽.

그 순간의 벅찬 심장소리를 기억해 내곤 했다.

꽤 쓸만 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을 생각한다.

그날엔 오늘을 생각하길 바란다.


그날에서 바라보는 오늘이,

꽤 쓸만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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