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되기] 1.난임이 대체 뭔데
손만 잡고 자도 임신 되는 거 아니었어?
그냥 손만 잡고 자도 임신이 되는 줄 알았던 시기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임신 출산 이런 단어들이 경이롭거나 위대한 일이라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단어였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성교육이 잘못됐던 듯하다.
세월이 흘러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단어가 다시 공포가 되었다. 왜? 안 생기니까! 나는 결혼하면 바로바로 아기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피임을 하니까 안 생길 뿐, 바로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다 몸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2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안 돼서 결국 난임병원을 가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방문했던 건 21년 1월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집 근처에 있으면서 아는 언니가 이용했다는 병원에 갔다.
사람이 무지 많았다. 왜 이리 많아? 아침 일찍 갔는데도 좀 기다렸던 것 같다. 의사를 만나고 처음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남편과 나 모두 전체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혹시 생각지 못한 불임사유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사를 했고 그날 지출한 비용이 40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검사 중에 나팔관 조영술은 그 병원에서 못하기 때문에 평일 중에 날짜를 잡아서 다른 병원에 가서 하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집에 왔다.
오전 내내 병원에 있었더니 진이 빠졌다. 어차피 하기로 했으니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해야겠다 싶었다. 이번 한 번만 검사비용이 많이 들고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평일에 가야 한다는 그 검사가 약간 부담됐지만 그것도 예약해서 회사에 말하고 다녀왔다.
며칠 뒤 다시 난임병원에 갔다. 검사결과를 들은 의사가 아무 이상이 없으니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자고 했다. 클로미펜이라는 약을 줄 테니 5일간 먹고 정해 준 날짜에 숙제를 하라고 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니 주사를 맞고, 또 뭐가 부족하니 수액을 맞고 가라고 했다. 이번에도 한 7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결과는 실패.
성격이 매우 급한 나랑 남편은 인공수정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도 그러자고 했다. 인공수정은 한 달에 한 개만 자라는 난자를, 인위적 약물을 통해 여러 개가 자라도록 하고, 남성의 정자를 자궁 속에 인위적으로 주입시켜 임신확률을 높이는 시술이다. 여자가 할 일은 난소를 자극해서 난자를 여러 개 생성하는 것이고, 남자가 할 일은 시술일 당일에 정자를 뽑아내는 것이다.
클로미펜이라는 약을 다시 먹으면서 주에 3번 난소를 자극하는 호르몬제를 맞았다. 이게 티브이에서나 보던 배에 맞는 주사였다. 내가 직접 주사를 놓을 수 없어서 남편이 놓아줬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무서웠다. 한 번은 주사기를 잘못 찔렀는지 동그란 핏방울이 정말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튀었다. 또 한 번은 주삿바늘을 정리하다가 내 손을 잘못 찔러서 검지손가락이 찢기기도 했다. 그리고 난자가 잘 자랐는지를 확인해야 해서 병원에 자주 가야 했다. 기분이 오락가락했지만 참았다. 이번 한 번만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시술일이 되었다. 나는 회사 특별근무로 인해 밤을 새우고 가게 되었는데, 시술받고 출근 안 하고 잠을 많이 자면 되니까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 시술 당일 남편이랑 같이 갔고, 남편은 1시간 반 정도만 늦게 출근하기로 했다.
마취를 할 필요도 없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해서 긴장도 안 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의사가 들어왔고 시술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느낌이 없다가 시술 중에 의사가 자궁을 약간 잡아당겼다고? 했다. 사실 뭐라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아랫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결국 구토를 했다. 통증이 안 멈췄다. 분명히 시술받고 누워있으라고 했는데 누워있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짜증이 갑자기 폭발했다. 왜 이렇게 아파?
30분만 누워있다 가면 된다는 인공수정 시술을 나는 거의 2시간 넘게 누워있다가 나왔다. 이번에도 오전이 다 지나갔다. 계속 짜증이 났다.
10일 뒤에 결과를 위해 피검사를 하러 오라고 했다. 왠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지만, 10일 뒤에 갔고 역시나 실패.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시술이었다. 남편도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걸 알고 당분간 쉬자고 했다.
그 이후에 자연임신이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좋다는 한약을 지어먹었다. 영험하다는 절에 가서 기도도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해서 생강도 자주 먹고, 배를 따뜻하게 한다는 쑥팬티도 사 입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어서, 다시 병원에 갔다.
두 번째 인공수정 시술. 정말 끔찍했던 통증이 생각나서 너무 하기 싫었지만,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회사에서도 좀 편한 곳으로 부서를 옮기고 마음도 안정된 상태라서 잘 될 거 같았다. 그리고 그때의 통증도 싫어서 미리 진통제를 한 대 맞고 시작했다.
시술 방법은 똑같았다. 난소를 자극하는 약을 먹어 난자를 많이 키우고, 주사를 맞는 것. 중간중간 피검사를 통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에 맞는 약과 주사를 투입하는 것. 그리고 시술일이 되어 시술하는 것. 뭔가 모르게 답답한 느낌이 자꾸 들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라는 대로 했다.
기분이 널을 뛰었다. 이상한 미신에도 사로잡혀서, 저 길로 가면 안 될 거야, 이 길로 가면 안 좋을 거야 이런 이상한 생각들에 나를 가뒀다. 그냥 짜증이 계속 났다. 남이 그냥 하는 말에도 화가 났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번만 지나면 되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결과를 들으러 갔다. 결과는 실패.
이쯤 되니 난임인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도 인정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뭔가 내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 왜 남들처럼 못 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화가 났달까.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 없었지만, 난임이 대체 뭐길래 이리도 신경이 쓰이게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게 부모자식의 인연인데, 나는 너무 서두른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말이 너무 화가 났다. 어쩌면 그때, 난임병원에 다닐 기간이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을 본능적으로 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시술도 이제 겨우 2번 정도밖에 안 했잖아라고 스스로 위로해 봤지만 뭔가 억울했다. 대체 왜 이렇게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마음을 써야 하지. 나는 점점 내가 만든 굴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