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정 Mar 21. 2024

16분의 1로 쪼개진 사람들

MBTI가 뭐예요?

출처: Freepik


여기 한국인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4개의 알파벳이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INFJ니 ENTP니 하는 외계어 같은 네 글자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만드는 성격 유형 검사 M.B.T.I.가 바로 그들이다. 넘치도록 인기를 누리는 이 알파벳 사총사는 검사 방법을 개발한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와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의 이름에서 각각 M과 B를 딴 다음 유형을 뜻하는 영어 단어 type의 T와 지표를 뜻하는 단어 indicator의 I를 조합해서 탄생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남성 근로자가 징집돼 노동력 공백이 발생했을 무렵, 두 사람이 심리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성격 유형 검사 MBTI는 그전까지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성격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 수십 년 전에 개발된 MBTI 검사의 인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누구든 쉽게 접근하고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와 학계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서 MBTI는 성격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로 활용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우리의 대화를 점령하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사람들의 연애사까지 뒤흔들기에 이르렀다.      


온갖 군상이 뒤죽박죽 뒤섞여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단 네 부류로 나누어 정의하던 혈액형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가 싶었더니 그보다 4배 많은 16부류로 인간을 나누는 MBTI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항원의 조합에 따른 분류 방식에 불과한 혈액형을 인간의 성격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야 MBTI가 나을 것 같기도 하다. 0형은 성격이 원만하고 A형은 까칠하다고 단정짓는 작위적이고 비과학적인 4분법보다야 당사자가 직접 내놓은 답을 근거로 성격 유형을 나누는 MBTI가 훨씬 낫지 않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성이 최 씨인 사람들은 죄다 고집쟁이인데 거기에다 곱슬머리이기까지 한 사람의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식의 근본도 없고 근거도 없는 막무가내식 분류법보다야 MBTI가 몇 곱절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사실, MBTI가 꼭 한국에서만 ‘추앙’받는 건 아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200만 명이 정식 MBTI 검사를 치르며 MBTI 검사를 제공하는 마이어스-브릭스는 MBTI 검사를 앞세워 연간 약 2천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인다. 게다가, 마이어스-브릭스의 설명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포춘 선정 500대 기업 88%가 인사 관리를 위해 MBTI 테스트를 활용해 왔다. 또한, MBTI는 역사도, 근본도 없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잠깐 세상을 휩쓸고 사라지고 말 그런 검사도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성격 검사란 결국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한 뜨거운 노력이다. 그러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툭하면 MBTI를 들먹이고 친구를 사귀고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MBTI를 먼저 묻고 그 결과에 따라 선을 그을지 좀 더 다가갈지 결정하는 요즘 트렌드는 어쩌면 바람직한 건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결국 성격이 팔자라 인간은 성격대로 살게 된다고. 살면 살수록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힘든 상황에 부닥쳐도 금세 받아들이고 곧장 해결책 찾기에 돌입하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자신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대하드라마 한 편을 써 내려간 다음에야 마지못해 상황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성격이 팔자라는 말은 그저 옳을 따름이고 인간의 성격 유형을 알려주는 MBTI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총 16개의 성격 유형은 누군가의 성격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기보다 알파벳 사총사 MBTI에서 파생돼 나온 또 다른 4개의 알파벳 속에 그를 가두는 낙인이 된다. “너는 INFJ라 역시 다정해 ”, “ESTJ는 사업가가 딱이라는데 너는 왜 그렇게 진취성이 없냐?” 같이 상대의 직업과 성격을 특징짓는 말들이 난무하고 INFP와 INTP는 뽑지 않는다고 명시된 채용 공고도 등장했다.      


심리학계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뢰성에 의문을 품는 MBTI를 인간을 재단하고 분류하는 새로운 척도로 냉큼 받아들여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 마이어스-브릭스의 공식 입장은 MBTI 검사는 사람들의 자기 이해를 돕는 것일 뿐 미래를 예언하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미로 한 MBTI가 알려주는 4개의 알파벳에 열광하며 자신도 모르는 새 MBTI가 정해주는 삶의 틀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사주팔자와 철학이 몰상식과 구시대의 산물로 폄훼되는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16분의 1임을 인정할 것을 강요하는 MBTI가 이토록 사랑받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픈 흑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