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져스의 글: 런데이 3주 차를 마치며
망고가 물었다. 너에게 30초는 어떤 의미이니. 이번 3주 차 달리기의 글쓰기 주제를 던져준 것 같아 고마웠다. (달리기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나서부터는 달리기를 할 때마다 약간의 창조적 압박감이 생긴 게 사실이다) 괜찮은 질문을 던져줬으니 재치 있고 통찰력 있는 답변으로 글을 쓰리라. 이런 사명감을 갖고 금주 내내 달리기를 하면서 이 30초에 대해 생각해봤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생각할수록... 답을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정말 모르겠다. 바라건대 이 글을 마무리 질 때 즈음은 괜찮은 답을 내릴 수 있길 바라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달린 달리기가 2분에서 2분 30초로 증가됐는지 조차도 인지 못한 채 뛰기에만 바빴다.
이번 주 상태가 별로였다. 딱히 별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업무 압박감이 있기도 했고,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나 열심히 땅을 파도 제자리걸음인 듯한 나의 재능에 대한 한탄 등등이 불쾌하게 얽히고 섞여 마치 벗으면 안 되는 속옷처럼 내 존재를 감싸고 있었다. 그 불쾌함과 허전함을 단 걸로, 간식으로 채웠다. 그랬더니 역시나 몸으로 반응이 왔다.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만성 소화장애. 그 탓에 몸이 잔뜩 무거워지면서 체중이 증가했고 그로 인해 짜증까지 치솟았다. 그런 내가 싫어 헬스장에 가서 무리하게 근력운동을 시도했다. 1시간가량 이를 악문 채 근력운동만 했다.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다음 날 바로 납작해지지 않는 배가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그리고 찾아온 양 허벅지를 관통하는 극심한 근육통...
몸이 아프니까 정신도 같이 힘들었다. 누군가 나를 좀만 기분 나쁘게 건들면 이때다, 하고 잔뜩 화를 내고 싶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런데이를 멈출 수 없었다. 이 루틴을 깨지 않으려면, 내가 한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면, 글을 쓰려면... 등등 여러 의무 사항들이 떠올랐고, 이것조차 못해내면 한심한 인간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힘겹게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내 모습을 본 엄마가 ‘그냥 쉬어’라고 말렸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오늘까지 무조건 3주 차를 마치고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으니까. 그러나 내 발이 내 발 같지 않았다. 뚝딱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상태면 뛰는 게 가능하려나, 싶던 찰나 저 멀리 점멸해가는 녹색 신호등이 보였다. 그 신호를 향해 시험 삼아 뛰어봤다. 처음 몸을 가동할 때 유독 중심이 흔들리는 단계를 넘기고 나니 뛰는 게 되려 걷는 것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그래서 또 이를 악물고 뛰었던 것이다.
오늘 달리기에서 내 남자는 ‘러닝 하이’에 대해 말했다. ‘러닝 하이’란 달리기를 할 때 어느 순간 마약을 한 듯 감정이 고양돼 박진감을 느끼며 자신의 몸이 날아갈 것 같은 상태를 일컫는다고 한다. 적어도 30분 이상 달리기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 상태에 중독이 되다 보면 러닝 하이에 도달하지 못할 때 짜증이 나고, 더 나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달리기를 하게 되면서 오히려 몸이 손상된다고 한다. 하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달리기 프로그램은 ‘러닝 하이에 도달하지 않아도 달리기는 충분히 재밌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최대 시간을 30분으로 잡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섬광처럼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훅 스쳤다. 그래. 내 삶이 러닝 하이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거잖아.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지지부진한데. 그게 삶의 진면목 아닌가.
인생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어쩌면 우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의도치 않은 순간을 마주할 때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이번 주에 들었던 ai 트레이너의 말이 그랬다. 약간 지치던 찰나에 그가 던진 말은 내 가슴을 작게나마 쿵하고 울렸다. “힘드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이 달리기가 끝나면 시원한 샤워, 맛있는 식사, 포근한 이불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다 싶었는지 때마침 크게 울리던 노래의 한 구절. “행복이란 말이 뭐 별거겠어요.” 이번 주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던 한동근의 ‘그대라는 사치’라는 노래였다. 달리기를 통해 우연히 내게 전해져 온 말들이 어떤 일맥을 공통적으로 상통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가. 처음 내가 달리기를 하고 싶었던 건 그저 즐겁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운동을 하다가 멈쳐서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수도 있고, 너무 힘들면 걸을 수도 혹은 왔던 길을 도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건데 나는 뭐에 사로잡혀서 그랬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 내가 허벅지를 부여잡으면서도 달리기를 하고 왔다니까 걱정이 됐나 보다. 엄마는 항상 내게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시크하게 내가 ‘그래도 이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약한 것보단 독한 게 낫지’라고 말하니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깐의 침묵 후 내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내가 열심히 사는 게 싫어?” 그제야 엄마가 말했다. “그냥 편하게 살아도 돼. 뭘 그렇게까지 무리해.” 열심히 하는 것밖에 모르는 나는, 그 외의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열심히 사는 것과 열심히 살지 않는 것. 그 두 가지로만 삶이 나뉜다. 조금 슬퍼진다. ‘러닝 하이’에 도달하지 않아도 내 달리기는 충분히 건강하고 즐거운 것처럼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31살의 나는 아직도 갈피 없이 방황 중이다. 그래서 달리나. 그래서 달리기에 빠졌나.
to. 망고
망고야, 너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오늘 내 달리기가 2분에서 2분 30초로 증가한 날인지조차 몰랐을 거야. 사실 근육통 때문에, 그리고 빨리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서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어. 다시 말해 내게 30초는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었어. 행복을 지나가는 순간. 다음엔 좀 멈쳐볼게. 순간순간 다가오는 행복을 쥐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