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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rgeous Oct 26. 2022

흩어져있던 수많은 점은 이윽고 하나의 선이 되어

골져스의 글: 달리기가 곁들어진 우연들

달리기.

이게 뭐라고 이 단어를 주제로 끝없이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걸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그토록 갈망했지만, 워낙 신변잡기적 인간인 나로서는 한우물만 파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랬던 내가 1년간 꾸준히 하는 운동이 바로 이 달리기다.

우연찮게 시작한 이 운동이 사실 알고보면 여기까지 이어지도록 무수히 많은 징검다리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글은 그 감흥을 밑천 삼아 써내려가는 글이다.


달리기를 나의 본격 취미 생활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바로 친구 망고이다.

이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나보다 먼저 달리기에 빠져있던 망고가 자신의 집에서 술먹은 다음날 함께 조깅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때 나는 '그러지 뭐'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에 응했다.

안양천이었나, 광명시를 흐르는 하천을 뛰면서 나는 처음으로 달리기가 재밌다고 느꼈고, 그때부터 달리기를 조금씩 마음에 두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만 해도 내게 달리기란 드라마 주인공들이 고뇌에 빠진 복잡한 마음을 보여줄 때 자주 쓰는 클리셰 같은 이미지였다.

아님 자기계발에 투철한 센트럴 파크 근처에 사는 뉴요커들이나 즐길법한 것이라고 치부했다.

그랬던 내가, 클리셰라면 끔찍하게도 피하고 싶을만큼 실험적이고 마니악한 걸 좋아하는 내가, 바로 그 클리셰를 수행하게 되었다니! 놀랄 노자다.


하지만 비단 이거 하나만으로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까?

더 깊게 들어가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친구의 '술 먹고 그 다음날 달리자'는 말에 내가 그닥부담없이 '그래!'를 외칠 수 있었던 건 왜일까.

사실 달리기는 내가 학창시절부터 자신있는 운동 중 하나였다.

키는 매우 작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꽤나 좋아하고 잘했던터라 달리기 경주에서는 항상 1등을 했다.

도장 1등을 손등에 콱! 받을 때의 희열감이란.

90년대 초반생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땐 운동회 때마다 달리기 경주가 꼭 있었고, 1등을 하게 되면 보라색 인감의 도장을 손등에 콱 박아줬고, 그에 따라 공책을 부상으로 나눠줬다.

공책이나 연필 등과 같은 필기구를 몹시 좋아하는 나로서는 공책 여러권을 받는 게 어찌나 기쁘던지.

자랑이긴 하지만 1학년에서부터 6학년 때까지 단한번도 달리기 1등을 놓쳤던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달리기를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벌어진 일련의 긍정적인 이벤트들이 누적되어 나에게 알게 모르게 자신감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달리기가 비단 자신감으로만 연결된 건 아니다.

바로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으니 그건 처음 수능을 실패하고 그 바로 다음 날.

모의고사 때보다 훨씬 못 나온 성적을 비관하다보니 그 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꼬박샜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 때문에, 터질 것만 같은 실패감에, 나의 무력한 존재감에 미칠 것 같아 꼭두새벽에, 그 겨울날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서, 호흡이 머리 끝까지 차 올라서, 그냥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뛰었다.

이 때는 무슨 속도를 조절할 그런 여유로운 생각 따윈 없었다.

악!! 씨발!!! 악다구니를 쓰면서, 이를 악물면서 뛰었다고나 할까.

속으로는 그냥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를 반복하면서.

이 마음을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주체가 안 되어서 뛸 수밖에 없었다.

울면서 뛰었던 것 같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눈물 길이 양갈래로 흩어지면서 콧물도 줄줄 나오는 그 못생긴 얼굴로 나는 하악하악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탄현 집에서 대화역 넘어서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집으로 돌아가니 오전 시간이 되었다.

어디갔다 왔냐는 부모님의 인사도 없었다. 내가 얼마나 괴로워할지 알고 있는 두 분이었기에 그냥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밥을 차려줬고, 나는 그 모습에 또 울컥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그 때, 나에게 놀랐다.

빠른 시간에 대화역까지 뛰었구나, 내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구나, 그리고 내가 죽고 싶진 않구나. 하면서.

삶이 실패해도, 주어진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나는 살고 싶다는 걸, 죽을 것처럼 달렸던 순간에 깨달았다.


그러고나서 성인이 되어 살도 찌고, 달리기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살게된 어느 날의 한순간이 떠오른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탄현역을 향해 막 뛰고 있었다.

급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나, 아니면 그냥 빨리 가려고 그랬던 건지는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어떤 아저씨가 멀리서부터 날 보더니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달리기 폼이 좋네. 달리기 했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잠깐 당황해서 어버버거렸지만 이거야 뭐 칭찬 아닌가.

나는 상기된 얼굴로 '아뇨! 제가 잘 뛰나요?'라고 되물었더니 아저씨는 재차 '폼이 너무 좋다'면서 엄지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면서 '달리기를 해봐라'라고 제안을 하면서 사라지셨다.

언제인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시점이지만 망고의 달리기 제안과는 가장 가까운 시점에서 일어난 이야기이기는 하다.

이때 심겨진 모르는 아저씨의 칭찬이 날 달리기로 이끌어준 것일까.


삶을 살다가 보면 우연찮게 마주치는 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중 내가 계획했던 게 하나라도 있었나.

학창시절의 달리기 경주, 수능 실패, 어떤 아저씨의 칭찬, 그리고 친구의 유쾌한 제안.

이 모든 건 달리기와 연관이 있지만, 내가 단 한번도 달리기를 염두한 채 이것들을 받아들였거나 혹 수행한 적은 없었다.

의도치 않은 순간들이 한올한올 엮여 지금의 순간들을 만들어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좋을 일이 있다면 그건 우연이란 이름의 신세계이다.

나는 이 모든 우연들을 통해 지금의 달리기를 얻을 수 있었다.

예상 밖의 일들은 두렵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기쁨을 안겨주곤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실패가 두렵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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