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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rgeous Oct 26. 2022

넓고 길게 인생을 바라보자

골져스의 글: 문경새재를 조깅하며

이박 삼일 출장길 속 첫날은 온전히 쉴 수 있었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문경새재 길을 따라 달리기를 시도했다.

요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여행지에서 조깅하기이다.

일부러 운동화가 어울리는 정장 착장을 준비하고 스포츠브라도 챙겨가는 나를 보면, 달리기를 진심으로 애정하는 내가 보인다. 으, 너무 좋은 일이다.


달리는 중에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더란다.

바로 지방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문경새재는 한양과 동래를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중추로로 고개가 험하긴 하지만 한양과 가까운 직선거리인지라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가장 애용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열나흘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아니.. 요즘 우리는 시험이 있으면 꼬박 밤을 새서 막판 스퍼트를 낸다거나 벼락치기라도 해서 점수를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었는데, 옛날 과거 응시생들은 이런 게 아예 불가한 거 아닌가.

게다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꽤나 긴 시간 동안 고갯길을 넘어오면서 되려 배운 걸 까먹을 수도 있고.

이러면 접근성 좋은 한양 애들만 과거 시험에 너무 유리한 건 아냐!?

여러 생각들이 가지가지 이어지면서 지방 친구들의 억울한 심정에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이런 걸 이용해서 조선판 스카이캐슬 드라마를 만들면 어떨까도 싶었고. (ㅋㅋ)

너무나도 엠베티아이 NF스러운 생각인 걸까.

아무튼 부푼 꿈과 목표, 야망을 품고 이 길을 걸어왔을 과거의 과거 응시생들의 마음과 겹쳐지면서 나역시 길을 뛰는 내내 마음이 함께 콩닥콩닥해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조깅 이야기.

널찍하고 평평하게 잘 닦인 문경새재 길을 걸으며 여기 조깅하기 너무 짱인데? 싶었다.

하지만 1관문을 지나 2관문으로 향하는데 지나치게 힘이 드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여기 길 엄청 매끈한데? 그사이 내 체력이 또 나빠졌나? 하... 왜 그러지?

속도는 너무 안 나고, 숨은 쉽게 차서... 오늘 있을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다 소진시킬 수 없었기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냅다 걸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틀어 호텔로 돌아가는데.... 그제야 알았다.

나는 오르막길을 뛰었던 것이었다.


여기는 문경새재.

새재의 뜻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뜻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어찌됐건 고갯길이다.

아무리 길이 널찍~하고 평평~해 보였어도 완만하게나마 쭉 이어진 고갯길이었다.

그리하여 옆으로는 계곡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었던 것.


이를 깨닫고 나니 머리를 한대 쾅!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멀리 보지 못하고, 단거리 경주에만 치중한 내 인생의 어리석음을 엿본 느낌이랄까.

당연히 힘든 길이었는데, 누구한테나 벅찬 길이었는데 난 스스로의 부족함을 찾으려 애쓰며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힘들어했다.

너. 왜. 이런 걸로 힘들어하니? 왜이렇게 나약해? 하면서.

이게 뭔 바보같은 일이람.

깨달음을 얻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그리고 아주 느릿느릿한 속도로 내리막 길을 걸어 내려왔다.

내 우편으로는 깨끗한 물이 위에서 아래로 콸콸 힘차게 흘러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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