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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철 Dec 27. 2019

배달의민족이 게르만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스타트업으로서의 배민의 속사정

국내 1위 배달 브랜드 배달의민족을 이끄는 회사 '우아한형제들'이 독일의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 Delivery Hero)에 인수된다. 딜리버리히어로가 평가한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는 4.7조 원이 넘는다. 이는 2019년 국내 M&A 중 가장 큰 규모이며, KOSPI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으로 봤을 때 GS, 현대건설과 비슷한 수준이고 삼성카드, 삼성중공업보다도 큰 규모다.


그런데 이번 인수합병은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4.7조 원의 가치로 평가받으며 일어난 대박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이 아닌 독일 기업에 매각됐다는 이유 하나로 배달의민족이 아니라 게르만족이었다며 일종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배달의민족은 게르만족이 될 수밖에 없는 '어쩌면 슬픈' 운명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력적인 회사로 성장한 스타트업, 배달의민족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배달의민족은 창업 초기부터 사업 확장을 위해 여러 벤처캐피탈(VC, Venture Capital)로부터 꾸준한 투자를 받아 왔다. M&A 전까지 누적투자금은 총 5,063억 원이었는데, 이 투자금의 대부분은 미국의 세콰이어캐피탈, 중국의 힐하우스캐피탈, 싱가포르의 싱가포르투자청(GIC)처럼 국외의 대형 VC로부터 받은 해외 자본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VC들은 투자 시점으로부터 보통 3년 이내에 회사를 성장시키고, 엑싯(Exit)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자 한다. 우아한형제들은 18년도 당기 매출 3,192억 원에 영업이익 585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 규모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영업이익률도 18%가 넘는 등 굉장히 안정적인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배민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엑싯에 대한 니즈도 충분히 커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엑싯은 김봉진 대표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이 아니라 배민에 투자한 VC들의 주도 하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김봉진 대표의 우아한형제들 지분율은 13%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VC의 지분율이 컸다는 의미이고, VC들이 합심하여 엑싯을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지 출처 : 한국경제 - [마켓인사이트] '배달의민족' 매각으로 벤처캐피털도 '잭팟'



IPO와 M&A, 선택의 기로에 선 배달의민족

스타트업이 엑싯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M&A(인수합병)와 IPO(기업공개)가 있다. 그렇다면 우아한형제들은 왜 IPO가 아닌 M&A를 통한 엑싯을 선택했을까.


우선 IPO는 크게 신주를 추가로 발행하여 투자자를 모집하는 '신주발행' 방식과 기존 주주의 보유지분을 판매하는 '구주매출' 방식이 있다. 신주발행 방식으로 IPO를 하게 되면 회사에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므로 창업자의 지분율은 낮아지게 된다. 김봉진 대표의 지분율이 13%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주발행을 통한 IPO는 자본 조달에는 효과적이나 경영자의 지분율이 더 낮아지므로 경영상의 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구주매출 방식 IPO는 기존의 지분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업자의 지분율을 낮추지는 않지만, 우아한형제들 입장에서 새로운 자본을 조달하는 효과가 없어서 이 또한 경영상 매력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물론 구주매출 방식의 IPO는 투자자에게 막대한 투자 수익을 안겨 주는데, 자신들이 투자했던 우아한형제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VC들이라면 이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고자 했을 것이다.



더 넓은 기회의 땅으로 간 배달의민족

이러한 현실적이고 심정적인 이유로 IPO를 통한 엑싯은 우아한형제들 경영진이나 투자자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그렇기에 IPO보다는 우아한형제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기업에게 M&A를 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안정적이면서도 큰 투자 수익을 얻는 길이었을 것이다.


M&A를 하려면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국내 또는 국외 기업을 찾아야 한다. 딜리버리히어로가 평가한 4.7조 원 수준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어떤 기업이든 배민을 활용하여 내수나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의 요기요, 배달통뿐 아니라 홍콩, 필리핀, 대만, 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배달 서비스를 더 크게 확장하기 위한 경영 노하우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우아한형제들은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 노하우를 갖고 글로벌 배달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었다. 서로의 요구가 잘 맞았고, 딜리버리히어로는 더 큰 미래를 보고 우아한형제들을 4.7조 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평가했다.

이미지 출처 : 한국경제 - 배달의민족 '4.8兆 잭팟'..獨 DH에 매각

가장 최근에 투자한 VC들은 우아한형제들의 밸류에이션을 3조 원으로 평가했다. 4.7조 원으로 평가한 딜리버리히어로와의 M&A는 우아한형제들 경영진과 모든 투자사 입장에서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지언정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삼성을 포함한 국내의 유수 기업들의 지분도 절반 이상이 외국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한국인 사업가의 역량이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우리나라에서도 더 큰 기업과 경영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국인들이 비즈니스로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지는 것이다. 배달의민족을 게르만족이라고 재미 삼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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