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귀여워하고 싶어서
어제는 풀무질과 동물해방물결에서 함께 하는 동물권 읽기 모임에 ZOOM으로 참여했다.
함께 읽은 책은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
한 분이 발제를 해주셨는데 그중 '귀엽다'는 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에게 '귀엽다'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동물의 외모에 따라 서열을 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고방식이 투여된 결과일 수 있다는 논지였다. 책에서 수어 등의 특별한 능력, 무엇보다 비인간 동물보다 인간동물을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의 근거가 되는 이성과 언어 능력이 있는 동물들에 대해 사람들이 더 동정심을 느끼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모순을 지적한 바 있는데, 아무래도 '외모' 역시 비슷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나는 온종일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귀여워' 혹은 '귀여워 죽겠네'다. 쳐다보는 것도 귀엽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도 귀엽고, 그냥 다 귀엽다. 그래서 입을 틀어막아도 '귀여워' 하는 말은 스스로 소리를 만들고 발화되어 나온다. 귀엽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귀엽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조금은 슬플 것 같다.
여기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몇 년 전 라오스 여행 중에 두 명의 네덜란드 친구들을 만나 열흘 정도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둘 중 한 명은 채식주의자였고, 당시의 나는 미래의 내가 채식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육식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셋은 공통점이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고, 코끼리 등에 올라타는 투어상품 같은 것을 잔인하다고 느끼며 그런 것에 참여하거나 구경하러 가는 건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셋이서 오토바이를 빌려 2박 3일 일정으로 볼라벤 고원을 여행할 때였다. 첫째 날, 능숙하지 않은 오토바이를 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 속에 숙소에 도착한 후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두 발로 동네를 산책했다.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말, 소 등을 잔뜩 만났고, 우리는 역시나 너무 귀엽다며 좋아했다. 그러다 길에서 돼지 한 마리를 만났다. 나는 당시만 해도 돼지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새끼 돼지가 아닌 돼지를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두 친구는 돼지를 보고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났을 때처럼 쪼그려 앉아 돼지를 쓰다듬으며 너무 귀여워했다. 솔직히 내 눈엔 귀엽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돼지를 귀엽다고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부분의 동물을 보면 귀엽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정말로 누가 봐도 예쁘게 생긴 동물들, 새끼들만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귀엽다'라고 느끼는 동물들의 범주가 훨씬 더 넓어졌다. 외모에 상관없이, 아니 외모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르게 귀엽고, 사진이나 영상으로나마 예전보다 더 자주 볼 수 있게 돼서 이제는 친숙해졌기 때문에 그들 각자의 개성 또한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귀여워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졌고, 그것은 단순히 외모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더 많은 생명들을 귀여워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보고 귀엽다고 느낄 때 조금씩 더 행복해지니까.
어제 모임이 마무리될 무렵, 장애해방 운동을 오래 해오고 이 책의 추천사 겸 서문을 쓰신 홍은전 활동가 님에게 질문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 잘못 생각해왔던 것을 이제 머리로 아는 단계지만 아직 체화되진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장애를 가진 동물이나 사람을 만나면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차이를 인식하고 거기에 내 기준에서의 감정을 투사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정말 언젠가는 그런 차이를 직관적으로도 인식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너무 궁금했다. 내가 머리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내 것이 될 수 있을지.
홍은전 활동가 님의 답은 "한 사람을 깊이 만나거나, 여러 사람을 자주 만나거나" 하면 그것은 저절로 그리 된다고 답해주셨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을 더 자주 이 사회로 끌어내야 한다고." (내가 이해한 언어로 쓰면 표현 등에서 잘못이 있을까 봐 걱정되지만, 내가 이해한/기억하는 방식으로 일단 기록해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지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든 가치는 사회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인 것들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장애, 그 장애를 가진 인간동물과 비인간 동물, 그리고 그들의 삶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그런 공동체가 되면 되는 일인 거였다. 책 읽고 짧게 고민한 내게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듣고 보았던 분이 주신 답이 너무 큰 힘이 됐다. '오긴 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는 어느 정도 회의와 체념이 있었는데, 답해주시는 걸 들으면서는 '방법이 있구나, 가능하겠구나' 하는 낙관과 희망을 생각하게 됐으니까.
물론, 이것이 실제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가치관이나 시선으로 자리잡기까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과 행동이 이어져야겠지만 끝이 보이는 길과 끝이 가려진 길은 걷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거니까, 일단은 희망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해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