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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pr 16. 2022

키친테이블, 라이팅

식탁 위에는 책들이 쌓인 채로 놓여 있다. 


거의 항상. 책을 열심히 읽을 때나 읽지 않을 때나. 책은 마음의 양식,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사놓고 읽지도 않고 정리도 하지 않은 책들이 늘 일정한 양으로 있는 편일 뿐이다. 습관, 관습, 그냥 그런 거. 또 태블릿PC, 요즘은 매일 일기를 써 보자고 마음먹은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노트북, 매번 놨다 치웠다 하기 귀찮아서 애초에 예쁜 걸로 사서 식탁 위에 놔둔 테이블매트, 컵받침, 몽골에서 사 온 냄비받침, 고양이장난감 등등.


테이블 위에 커다란 거짓말이 놓여 있다.


이 문장은, 7년 전 라오스 여행에서 내가 쓴 문장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했다가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구글번역이 작문한 것이다. 원래는 "내가 마신 커피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과 함께 내가 앉았던 테이블이 보이는 카페의 외부 창문에서 내가 마신 빈 커피잔이 놓인 모습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함께 여행했던 친구 중 하나가 좋아요, 를 눌렀고 그 친구가 이 문장을 이해했을지 궁금해서 다시 네덜란드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해본 거였다. 


"테이블 위에 커다란 거짓말이 놓여 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그때부터 생각하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 이 문장을 곱씹을 뿐 아직 쓰지 못한 채다.


어젯밤에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다 읽었고, 오늘 저녁엔 미용실에서 오한기의『산책하기 좋은 날』을 다 읽었다. 두 책에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실명으로 나온다. 정지돈 책은 에세이고, 오한기의 책은 소설이지만 모두 오한기, 정지돈으로 등장한다. 두 책 다 산책을 모티브로 한 것이고.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지만 에세이는 돈 때문에 쓴다고 했던. 어쨌거나 서로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오고 함께 나눈 시시껄렁한 대화들을 읽고 나니 이제는 마치 나도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라는 친구가 있는 것만 같고.


오포로 이사온 후로, 그리고 최근까지 겨울이었기 때문에, 2년 넘게 재택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산책을 많이 못했고, 못한 채로 지냈다. 이동할 땐 주로 차를 몬다. 산책은 나도 좋아하고 두 책 모두 좋았지만 너무 산책만 쳐주는 거 같아서 (물론 정지돈은 드라이브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짚어준다) 드라이브를 주제로 책을 써볼까, 생각했지만 못하겠지. 아무튼, 시리즈들이 줄줄이 출판되는 걸 보면서 『아무튼, 스쿼시』라는 책을 써야겠다 마음 먹은 지 2년이 지나도록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처럼.


지금은 김승섭의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는다. 천안함 생존병사들의 트라우마(PTSD)와 이들을 대하는 사회와 군 당국의 태도를 중심으로 세월호 이야기도 나온다. 오늘은 4월 16일이다. 8주기. 세월호 참사 8주기.


사고 소식이 전해지던 그날 내가 어디에서 무얼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먹었는지, 얼마나 많이 웃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닌데, 아닌가, 그렇게 여전히 가능성 속에서 침몰하던 그 순간 살아있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한 오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순간 외에는 대체로 잊고 살아가고 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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