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키드 Sep 07. 2021

자가격리 시작 D-2, 어린이집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아직은 밀접접촉자로 추정.

일요일 밤, 오래간만에 두 아이가 모두 9시쯤 잠이 들었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 소중한 순간이 너무 기뻤다.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꿔두고(잘 때 전자파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놔두고는 거실로 나왔다.

몸이 찌뿌둥한 것 같아서 태블릿을 켜고 유튜브에서 요가 소년의 수리야 나마스카라 A 루틴을 따라 하고 마무리 스트레칭까지 클리어하고 기분 좋게 식탁에 앉았는데...

태블릿에 설치된 카카오톡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와있었다.

카톡을 보낸 사람이 둘째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라 너무 놀라서 얼른 확인해봤다.


"어머니, 전화기가 꺼져 있으시네요.

어린이집 친구 중 한 명이 주말에 열이 나서 진단키트로 집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양성이 나왔다네요.

내일 오전에 정확하게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일단 내일은 가정 보육하셔야 할거 같아 연락드립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선제 검사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음...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자가 진단키트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선제 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에 원장 선생님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둘째와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친구였다.

심지어 이제 막 17개월이 된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도 제대로 끼지 않고 생활하는 중인데...?


선생님과 이야기가 마무리되자마자 남편에게 바로 상황을 얘기했다.

아무래도 날이 밝자마자 온 가족이 다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겁에 질려 울게 불 보듯 뻔한 두 아이의 모습에 남편도 나도 한숨이 나왔다.

아직 어린 둘째도 난감하지만 겁 많은 첫째는 또 어떻게 잘 설명해줘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게다가 둘째는 그 친구와 같은 공간에서 밥 먹고 자고 놀고 했을 텐데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남편과 이야기를 마치고 곧바로 인터넷에 이것저것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 자가 진단 키트가 양성이어도 보건소에서 하는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올 수도 있는지,

- 어린이집 확진자 발생으로 격리된 사례들이 있는지,

- 아이들 데리고 코로나 검사는 어떻게 했는지,

- 자가 격리 중에 음성에서 양성으로 확진되는 경우가 많은지,

- 아이가 확진되면 그 이후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 건지

등등...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내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일단 자가 진단 키트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실제로 코로나에 걸렸는데 키트에서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연락받은 사례처럼 집에서 양성이 나왔으면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해도 대부분 똑같이 양성이 나온다고 했다.

일단 그것부터 확인하고 나니까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이 순차적으로 걱정되어서 하나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아보는 행위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경험 수집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한 와중에 시간 흘려보내기에 가장 좋고,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미리 저장해둠으로써 오히려 차분해진다고 해야 할까.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면서 일단 정신 차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1) 달라지게 될 일상과 지킬 수 있는 일상을 생각해봤다.

일단, 당연히 첫째와 둘째 두 아이 모두 등원이 불가하다.

그러므로 낮 시간에 내가 하던 활동들은 거의 스톱이다.

그래도 평소에 운동 수업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온라인으로 가졌기 때문에 짬을 내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짬짬이 조금이라도 읽으면 될 것 같고, 신청해둔 클래스들은 나중에 천천히 듣는 걸로 미뤄도 된다.

아이들 하원 시간 이후의 삶은 평상시와 동일하다.

이건 달라지는 부분이 아니니까 진정하자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다.


2) 앞으로 최대 3주 안에 잡혀있는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구글 캘린더에 잡혀있는 일정을 점검해 보았다.

 - 정수기 코디님 방문, 당근 마켓 거래 약속(이건 비대면이었지만 문고리 거래라 취소), 미용실, 친구 결혼식

지금 시점으로부터 3주 안에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일정은 딱 세 개뿐이었다.

씁쓸하지만 모두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3) 당장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 첫째 어린이집에 당분간 등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야 하고,

 - 검사받으러 가야 하는 상황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하고,

 - 자가 격리에 대비해서 필요한 물품을 구비해둬야 한다!




최근 며칠간 기분이 몹시 좋았다.

엄청 기쁜 일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좋았다.

어느 날 밤에 푸른 오로라와 비처럼 쏟아지는 별똥별을 보는 꿈을 꾸고 나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주말 드라이브 때 햇무리를 보고는 신기해서 행운이라 생각했고, 우리 집 베란다에 찾아온 커다란 긴꼬리제비나비를 보고는 "어머 진짜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라며 기뻐했다.

(이 말을 했을 때 남편은 '왜 다 행운의 징조로 여기냐...'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돕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허허허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무렇지 않아 질 일이라고 차분해지다가, 아이들 걱정에 불안하다가 다시 또 스스로를 달래는 감정의 시소 타기를 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렇게 쓰기라도 해야 멘탈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에 너무 몰입하고 걱정하면 불안감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다.

불안해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생길 일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늘 이렇게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나를 집어삼키기가 너무 쉽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덕분에 또 정신 바짝 차리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누군가 또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열심히 검색하며 불안함을 달랠까 싶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기록해둬야겠다.

(제가 먼저 겪어보고 말씀드릴게요 호호…)


이 와중에 참 다행인 건 첫째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고 좋아하고, 둘째는 너무나 잘 먹고 잘 논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걱정되다가도 아이들 노는 거 보고 있으면 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휴, 아무 일 없이 부디 무탈히 지나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얘 머리에서 떡국 냄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