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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Oct 26. 2022

"처음인데 왜 쭈뼛거려?"

 최고의 나를 발휘했다면 부끄러울 이유가 없지.

첫째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다닌다며 "나도 가볼까?"라는 이야기는 몇 달 전부터 했지만, 평소에 어린이집 하원하자마자 쓰러지듯 잠들기 일쑤라 태권도 까지는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구경이나 한번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갔던 날, 같은 반 친구들의 열렬한 환영과 사범님의 폭풍 칭찬을 받고 한껏 기분이 들떠서 바로 등록을 하고야 말았다.

이제 한 다섯 번쯤 다녀온 것 같은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거의 다섯 달은 다닌 것 같다.

어느 날은 발차기를 배웠는지 집에서도 다리를 힘껏 들어 올리며 쉴 새 없이 발차기를 보여줬다.

손바닥이 뜨끈해질 정도로 열심히 물개 박수를 치다가 아이를 따라 해 보는데 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차는 게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발차기인지 공차기인지 모를 몸짓을 하는 나를 보더니 아이가 말했다.


"처음에 가면 이렇게 잘 안 될 수도 있어."(일부러 낮은 발차기를 보여주며)

"아, 그럼 송이도 처음에는 잘 안됐어? 엄마처럼 이렇게 막 쭈뼛거릴 수도 있겠네?"

"아니, 그렇게 하는 친구 없는데? 처음인데 왜 쭈뼛거려?"

"엥? 잘 못해서 쑥스러워하거나 쭈뼛거리는 친구는 한 명도 없어...?"

"한 명도 없지!"


아이의 대답을 듣고는 살짝 충격받았다.

처음 가는 태권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뭔가 쑥스러운데…

근데 또 생각해보면 못하는 것도 당연하고, 실력이 천차만별인 것도 당연한데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쭈뼛거리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그 수업에 참여 중인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의 최대치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아이들은 애초부터 최고의 자신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부끄러움은 자라면서 학습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올해 2년 만에 복직하면서 여러 가지 걱정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참 일을 쉬다 왔는데 기존에 다니던 사람들 만큼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휴직하다 온 티가 나는 건 아닐까, 조직에 구멍이 되는 건 아닐까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는데 10개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러 가지 일이 정신없이 밀려드느라 그런 걱정을 할 새도 없이 그저 따라가기에 바빴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나를 ‘복직자’로 바라보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 말처럼 쭈뼛거릴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제 막 돌아왔는데 남들보다 좀 못하면 어떻고, 좀 느리면 어떤가?

더 잘 해낸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 아닌가...? (와우!!)

지금의 상황에서 최고의 나를 발휘하고 있다면 쭈뼛거릴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본래의 나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겠지.


지난주에는 태권도 수업이 끝나고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마중 나갔다.

차에서 내린 아이가 뒤돌아 사범님에게 인사를 하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웃던 와중에 사범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열정만큼은 최고입니다."라고 하셨다.

'열정 만. 큼. 은'이라는 말에 잠시 빵 터졌다가 '어쨌든 열정이 최고라는 거잖아!'라며 아이에게 진심으로 폭풍 칭찬을 쏟아부었다. (약간의 존경심마저 느꼈다.)

못할 수 있다는 거 머리로는 알아도 나는 안 쑥스러워할 자신은 없는데, 정말 멋지다!


존경한다 너의 열정! 그리고 열정왕이라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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