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보이스 사전제작지원, 펭도
인터뷰어 : 유스보이스 사전제작지원, 펭도
인터뷰이 : 유스보이스 프로젝트 매니저, 윤성민
이해찬 1세대,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고 불린 세대였다. 수시 제도가 생기고, 야간자율학습이 폐지됐다. 변화되는 환경 속에서 드디어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이 생기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문제가 보였고, 문제를 해결할 시도를 했다. 처음 보인 문제는 두발제한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홈페이지를 만들고, 두발제한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고, 16만 명이 동의했다. 이어서 본 문제는 청소년 선거권이었다. 16만 명이 동의해야 목소리가 전달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만 18세에 부과되는 의무와는 다르게, 선거권만 없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며 선거권을 낮추는 '낮추자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 과정에서 유스보이스를 만나서 지원을 받고, 무사히 캠페인을 마쳤다. 두발제한부터 선거권까지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펭도에게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고, 현재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펭도의 이야기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펭도(조성도)입니다. 펭도는 청소년 때부터 쓴 닉네임이고, 펭귄과 성도를 합친 이름입니다. 유스보이스를 통해 낮추자 캠페인을 진행했고, 현재는 슬로워크의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10대 시절 펭도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가 83년 생인데, 교육 정책에 변화가 많았어요. 야간 자율학습이 폐지가 되고, 수시 제도가 생기고. 다양한 시도가 생기던 때였어요. 그 덕분에 '시간'이 많이 생겼는데,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된 것 같아요. 여유가 생기니까, '이건 문제가 아닌가?'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이 문제로 보였나요?
우선은 두발제한이었어요. 2000년에 두발제한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을 했어요. 한국에서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온라인 시민운동이었고, 16만 명이 서명에 동의한 게 쾌거였어요.
당시 이 문제를 가지고 백분토론에서 안건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당시 함께 활동하는 동료가 대표로 나가서, 손석희 아나운서와 토론을 하기도 했었어요. 웃겼던 게 당시 저희 사이트에 공지를 올리면, 조선일보 사설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다뤘어요. 웃기죠?
그렇게 16만 명 서명된 거를 교육부 장관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해서 답변을 받고, 실제 일부 학교에서는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졌어요. 교육부에서 “두발 자유화해라”는 아니었고, 학교마다 학생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어서 결정하라고 했어요.
일부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깊게 고민이 되더라고요. 다음엔 어떤 이슈에 집중해야 할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하고요.
고민의 결론은 무엇이었나요?
당시 16만 명이 서명을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면, 결국 선거권이 없어서 아닐까? 였어요.
‘청소년이 선거권이 있다면, 정치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청소년이 원하는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생각해보세요, 군 복무 기간을 줄이는 것도, 결국에는 20대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함이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청소년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다면, 청소년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이슈들이 정치인들에게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선거권을 당시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낮추자는 '낮추자' 캠페인을 벌였어요.
낮추자 캠페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의미로 캠페인 이름을 낮추자라고 지었고, 만 18세면 선거권은 없지만, 국민으로서 의무는 다 할 수 있어요. 결혼도 할 수 있고, 남성은 군 복무를 할 수도 있고, 돈을 벌면 세금도 내고. 선거권만 유일하게 없는 셈인 거예요.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한다면 당연히 선거권도 있어야 된다는 논리로 주장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해보면 실제 만 18세부터 투표권을 갖는 나라들이 많고, 어떤 나라는 만 15세부터 해요. 이미 사례가 있고, 시행되고 있다면 우리나라가 못할 것이 없고, 실제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저희가 중고등학생 두발 제한 반대 운동을 거의 온라인으로만 벌였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훨씬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낮추자'도 웹 기반으로 처음에 설계를 했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서명과 지지를 받고, 웹에서 모의 투표를 진행하면서, 대선 당일에 명동에서 선거 시간과 똑같이 모의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때가 아무래도 선거날이다 보니까, 누가 이거 선거법 위반 아니냐 신고를 한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그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었거든요, 법률 검토도 미리 받고. 그렇게 잘 해결되는 에피소드도 있었네요.
낮추자 캠페인을 통해서 유스보이스를 만나신 건데,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궁금해요.
낮추자 캠페인이 저희 청소년 동료들이 모여서 진행을 했는데, 홈페이지를 만들고, 도메인 등록과 서버 호스팅 작업을 하는데 돈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당시 추진하던 동료 친구들이랑 나눠서 돈을 모아보자고 했었어요. 유네스코, 하자센터, 유스보이스가 있었는데, 제 담당이 유스보이스였어요.
당시 유스보이스가 사전제작지원으로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그걸 지원했어요. 낮추자에 대한 필요성과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써서 신청을 하고 심사를 거쳐서 저희에게 지원 결정을 해주셨어요.
이건 다른 단체와는 다른 점이에요. 단순히 인맥을 통해서 지원을 받고, 사업을 집행하고 남은 예산 일부를 지원받는 것과 성격 자체가 달라요. 다른 단체는 ‘그래 열심히 해봐.’라는 느낌이라면, 유스보이스에서 지원해줬던 건 공식적인 심사를 거쳐서 선정된 것이기 때문에 저희의 주장이나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거죠. ‘유스보이스에서 우리를 지지해 주는 구나.’ 느낌이 들어서 되게 좋았어요.
선거권을 낮추자는 캠페인을 한대,라고 기사성으로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거예요. 그런 점에서 더 탄력을 받고,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주목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한 번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기자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두발 제한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없어지는 거고, 선거권도 몇 년 지나면 생기는건데 그걸 꼭 지금 목소리를 내야 되냐. 학생이니까 공부가 본분 아니냐.”라고.
물론 맞는 말이에요. 지나고 나면 해결되는 일이 사실 많잖아요? 하지만, 그 당시의 이야기는 그 당시에 해야 돼요. 청소년 때의 이야기가 있고, 어른이 돼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노인이 돼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때 마다 마주치는 문제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때는 내 문제가 아니니까 목소리를 낼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 당시에 문제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요. 또 그때마다 나중에 라고 미룰 수도 없고요. 그러면 어른이 되어서도 나중에 라면서 안 하게 될 거예요. 내가 당사자 일때, 내가 겪은 문제를 그때 내 목소리로 문제제기를 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야 사회가 변하고, 동력이 생기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청소년 때부터 내 이야기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선거권이 만 18세로 하향됐어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우선 오래 걸렸다는 생각을 해요. 찾아보니까 저희가 하기 이전에도 선거권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저희 이후에도 있었어요. 그런 목소리가 오래 쌓여서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정치권의 변화를 만드는 게 어렵고 오래 걸리는 구나를 느껴요.
지금 생각하면 애초에 만 15세로 하는 게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만 18세가 애매한 나이예요. 청소년의 끝자락에 있는 거고. 차라리 만 15세부터 했으면 조금 더 청소년의 목소리가 잘 담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청소년 시기에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왜 중요할까요?
당사자가 직접 의견을 내고, 바꾸는 경험이 평생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노인이 되고, 부모가 되면 또 문제가 있을 거예요. 노동자가 됐는데, 부당한 일을 겪을 수도 있고.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부당과 차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당과 차별이 있는 이유가 앞서 말씀드린 기자의 이야기처럼 ‘나중에’라고 했거나,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지 않을까 싶어요. 두발제한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없는 거고, 군대 부조리도 전역하면 없는 거고, 내 문제가 아닌 거잖아요. 살아가면서 계속 그런 일이 있을 텐데, 당사자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시기에 내 이야기를 하는 걸 하는 경험과 그런 작은 경험과 성취가 쌓이다 보면, 평생토록 이어지는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된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경험이 지금의 펭도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낮추자 캠페인은 디지털 기술로 사회변화를 이끌어 낸 거예요. 몇 달간 진행하면서, 주로 웹을 사용했어요. 웹이 메인이죠. 디지털 기술과 디자인이 사회 변화와 만나면, 더 큰 시너지를 낸다는 걸 경험했어요.
다만 낮추자가 지속하지 못했던 건, 비즈니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사회적인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엄청난 효과를 준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슬로워크에서도 그런 사회변화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모델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낮추자를 통해 느꼈던 당시의 경험이 지금의 슬로워크를 이끌어 가는데 주요 출발점이 된 거죠.
앞으로의 유스보이스는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까요?
사실 제가 두발제한과 선거권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전에는 없었어요. 운 좋게 사회적으로 교육에 변화를 주는 시도들이 있는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그런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고 ‘이건 문제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낮추자 캠페인을 하게 됐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 동료를 만나서 활동할 수 있었어요. 그런 가운데 유스보이스를 만났고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작은 성공을 이뤘고, 그것들이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런 다양한 시도를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를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은 잃을 게 없어요. 그래서 더 시도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실패해도 괜찮다 말해주고, 실패했다고 뭐라고 하지 않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원받을 당시 유스보이스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앞으로의 유스보이스는 청소년들에게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동료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청소년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