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희 Aug 08. 2016

전복을 씻다가,문득

안도현 시인을 오마주하며


전복은 어제부터 먼 길을 왔습니다.

바다 이끼 내음 짙푸른 고향을 떠

아찔히 먼 거리를 밤 새워 달려 온

전복 여섯 마리는.



난생 처음인 게 너무 많습니다.

서울 가는 트럭의 드륵대는 모터 소리

커다란 네 바퀴 슥슥 굴러가는 소리에

어린 날의 어느 밤, 태풍이 몰아치던 밤

후려치는 파도에 여린 등껍데기 얼얼했을 때보다도

심히 전신이 어지럽습니다.



어지럼증 겨우 가실 즈음

별안간 웅크린 몸이 뒤집

화들짝 놀란 속살 세차게 두드리는 수돗물 세례.

알 수 없는 몽롱한 냄새와 함께

배 위로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평생을 나고 자란 물이건만

너무나도 낯선 느낌인 것을!



사정없이 쏟아지는 미지의 차가움에 맞서

움직여봅니다.

꿀럭꿀럭.

저 무지막지한 물줄기에 대고 시위해 봅니다.

그래 보아야 겨우 눈에 띄일 법할 뿐이지만.



미안 미안.

횡으로 잘린 채 접시에 가지런히 놓이기 위하여 너희들은 마지막 목욕을 하고 있단다.

구석구석 깨끗이 빗질을 하고 는 나는

네가 살아 온 비린내 나는 역사를 지우고,

몸에 밴 삶의 찌꺼기를 모조리 없애기 위해

낡은 칫솔로 집요히도 네 살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러다

문득 시인 안도현의 간장게장이 떠올랐다.


불쌍한 꽃게는 아등바등거릴,

허공에 대고 휘휘 내저을

그렇게 자기의 분노와 공포를 표현할

긴 팔과 다리라도 가졌지만

 

등딱지에 몸이 반이나 묶 처지

여섯 마리의 전복은

더 이상 어떻게 분노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저 꿈틀대거나. 한껏 숨죽일 뿐.

죽은 척은 본능, 허나 비정하고 노련한 상대는

조금의 의심도 동요도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 목재계의 의식을 치르는 내

전복이 묻 듯하다. 

이제 마지막이냐고. 곧 죽게 되느냐고.


응. 나는

산 채로 너희를 팔팔 끓는 물에 집어넣을

무시무시한 학살자란다.



좁디 좁은 이 행성의 수 많은 생명체 중

오직 인간에게만

내 의사와 감정을 조목조목 표현 능력음은

어찌나 큰 행운인지.

잡식하는 이 포식자,

잡혀 죽는 동물들의 언어가 통역돼 들리지 않음은

얼마나 또 다행인지.


답답함도 억울함도 딱히 호소 못하고

그의 짧은 생애를

한 인간 가족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마감한 전복

글쓴이인 나는 애도해야 마땅하나,

어쩌나.

쫄깃쫄깃 이것 참, 이렇게나 맛있는 것을.

참기름이 도우니 우려했던 바닷내는 커녕

솔솔  끝 향기로움마저 감도는 것을.



일요일 저녁, 노량진에서 온 전복

'깨끗이 손질하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식탁에 놓은 어느 주부의 소회.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제목이 간장게장인 게 아니었군요!)

출처 http://m.blog.naver.com/malfoy_/220133421773
매거진의 이전글 웃기는 펫들의 이유 있는 일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