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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빈 Feb 10. 2016

TAIWAN

더 이상의 기대는 버리고, 온전히 그곳이 이곳이 되게 하자

한국은 반도이지만, 결국은 섬이다. 위로는 북한이 짱돌처럼 자리 잡고 있으니, 섬 같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어디 한번 가려면 비행기 외에는 영 방법이 없다. 한국의 가장 큰 특징은 그런 육체적 고립뿐만 아니라 세계 유일 분단국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대만이라는 나라가 있다. 진짜 '섬'에 아직까지 국가의 자주적 존재성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는 슬픈 나라다. 대만에서 온 몇몇 친구들은 언제나 대만이 자주국가라고 말했다. 뉴스는 언제나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러한 공방은 나를 머리 아프게 했고 얼마 없던 관심도 말끔히 지워버렸다. 


예전에 얼핏 듣기론 많은 미국인들이 여권이 없다고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계기로 여행을 다닐 수 있어서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학을 가고 세상에 나아가니 정말 여권 없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많았다. 그만큼 본토에서 색다른 여행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미국은 주(state)마다 법도 다르고 특징도 다르기 때문에, 굳이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 다른 주에 가서 충분히 이색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벌써 새로운 곳을 찾아 나가길 갈망하는 작은 나라에선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사실 그게 참 아쉽다. 국내 여행보다는 국외여행이 더 멋지게 보이는 듯한 신기루는, 언제나 소비와 불필요한 자랑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기(한국)에선 이런 나라들이 가깝잖아"라며  또 한 번 비행기를 탔다. 이번 여행은 또 한 번의 기대, 실망, 그리고 채움의 반복이었다.


대만의 지하철은 무인열차와 일반 열차가 섞여 있다.

내가 머무르던 숙소는 지하철 '동후'역에서 걸어서 2분도 체 걸리지 않았는데, 공항에서 내려 항상 가장 먼저 타 보려고 하는 것은 지하철이다. 이곳의 대중교통은 어떨까 - 각 나라마다, 도시마다, 지하철과 버스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또 하나의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인열차가 지나다니던 동후 역은 사실 촌놈인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공항 무인열차는 봤어도, 실질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도심 무인열차라니. 

버스터미널에서 바라본 풍경

버스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차이를 찾아봐도 몇 층이냐에서 멈춰버렸다. 특히 같은 아시아에 있는 나라에서 큰 차이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예가 아닐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몰라도 긴 시간 동안  얽히고설킨 나라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저 이 나라에 있고, 이 나라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기 때문에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 버스 뒤에 힘겹게 서있는, 낡디 낡아 보이는 건물은 다른 건물들보다 더 노후해 보였고 높은 건물들이 많아 실망했던(?) 대만 첫인상을 어느 정도 씻어주었다. 


대만 시내에 있는 어떤 골목 

조금 웃긴 이야기인데, 나는 명분상 '그 나라만의 모습'을 요구하며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듯한 '신비함'을 원한다. 그래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고 깨끗한 대만의 거리는 더욱 아리송하게 다가왔다. 그냥 실망을 했다는 뜻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 분명 아님을 알았음에도 - 시골스러움을 바란 것이다. 물론 나의 변명은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이겠고, 그러므로 나의 실망이 온전히 정당화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의 동정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저 나는, 지금의 익숙함을 깨뜨리려 아직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걸까. 과연 그렇다면 여행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골목에 있던 가게. 작은 가게들이 닭장처럼 붙어있었다.

알아볼 수 없는 간판과 알아볼 수 없는 메뉴판은 그저 과일 스무디나 주스를 파는 곳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만들어낸다. 사람과의 대화나, 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분명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나에게 무슨 스무디를 팔지 불확실하다면 결국 추측만 난발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소통의 부재를 느끼고 상대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행에서는 이런저런 오해의 소지들도 여행이라는 이유로 이해가 되곤 한다. 서로 어떠한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예를 들어, 레몬주스를 사고 오렌지 주스를 받는다면, 손짓 발짓 오랜지를 가리키며 바꿔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냥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레몬과 오렌지 중 하나는 결국 맛보게 되는 것이고  그것에 따라 굳이 무조건 기분 나빠하거나 오해를 키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그저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최대한 좋게 좋게 많은 것을 하려고 하는 이유도 적지 않을 것인데, 얼마나 균형을 맞춰 흘러가냐 또한 굉장히 중요한 여행의 스킬이 아닐까. 아니, 아마 모든 대인관계의 중요한 스킬이 아닐까.

101타워를 바라보며.

꼬르륵 소리 나는 배를 감싸 안아 달래며 골목 식당에 들어가 허기를 채우니,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다. 생각보다 건물이 많아 놀라고,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서 놀란 나는, 배부른 체 의자에 앉아 앞으로의 4일을 어떻게 보낼지 또 한 번 막막했다. 지난 홍콩 여행과는 달리 어느 정도 찾아보고 왔음에도, 비행기에서 내리면 머리가 하얗게 지워지는 것은 현지에서의 많은 것을 더 보고 느끼기 위한 축복인가 아니면 그저 그런 무식함인가. 여행의 의미를 생각하며 101 타워로 향했다.


대만에서 가장 높다고 들은 101 타워는 마치 복을 담아놓는 버켓 (바구니)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했다. 쉽게 볼만한 디자인이나 높이도 아닌 저 타워는, 당연히 대만 어디서나 눈길을 끌었다. 쇼핑을 많이 할 건 아니기에 온 김에 들어가서 잠깐 구경하고 꼭대기는 올라가지 않았다. 돌아와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어쩌면 올라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여행객으로 여행객이 아닌척하기란 쉽지 않다. 카메라에, 편한 복장에, 모자에 - 누가 봐도 여행객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지하철안에서.

대만에서는 지하철을 많이 탔다. 사실 버스건 지하철이건, 현지에 가장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꼭 교통수단만이 아니라 음식이 될 수도 있고 문화가 될 수 도 있다. 장소도 될 수 있지만, 이러한 요소는 짧은 일정에서 파악하기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친밀도가 생겨나야 가능하다. 또한 이나라 언어를 모르는 나에겐 그 모든 게 너무나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철이든, 버스든, 그곳에서 사용되는 교통수단은 그만큼 외부인을 현지화시켜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지하철만 탄다고, 혹은 노선도를 외우고 다닌다고 무조건적인 만족이나 적응을 바라긴 힘들다. 다만 그저 조금이나마 그곳의 모습을 체감할 수 있다. 어떨 때는 그저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예전에 홍콩에 갔을 때 동네가 참 깨끗하다 생각했는데 대만에 오니 홍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다는 게 건물이 신식이고 모든 게 질서 있게 있다는 게 아니라, 그저 길이 깨끗하다는 뜻이다. 본인이 거주하는 곳에 길이 아무리 더러워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부분 어느 정도의 깨끗함을 추구한다. 지하철에 탄 노숙자가 풍기는 찌린내에 사람들은 인상을 쓰고 나름 자신의 몸을 가꾸고 또 향수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익숙한 길의 깨끗함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만의 길을 걸으며, 길이 깨끗할 때의 느낌을 체감하니 상당히 좋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타이베이를 구경했다. 사실 딱히 할 건 없다. 어느 여행지에 가도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에 반할 수는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이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그저 그곳에 있음으로 충분히 다양한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기에,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만 하는 나의 모습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타이베이를 걷다 딘타이펑 본점이 있다는 곳 근처 공원에 앉았다. 7월 대만의 습기는 잔인했기에 무조건 걷는 건 어려웠다.


작은 공원은 유난히도 시원하지 않았다. 높게 자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이 곳은 그래도 몸의 열을 조금이나마 식히기엔 충분했다. 이곳에는 여행객보다는 그저 쉬려고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앞에 있던 작은 놀이터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주변 벤치에는 커플들과 노인들이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이럴 때가 가장 좋다. 아마 이건 나의 습성일 것이다. 여행은 떠돌아다님이고 나의 고향이 아닌 곳에서 그저 발을 잠시 붙여놓는 그런 행위이다. 그렇기에 잠시 앉아서 이곳의 흐름을 그저 그대로 느끼는 때가 가장 좋다. 가는 곳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타이베이에서 나는 이 공원에 앉아 조용히 사람 구경하며 그저 있는 것이 좋았다. 


사실 어쩌면 이것은 피곤함에서 나오는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그저 앉아서 잠시 쉬어가고 싶어 하는 모습은, 서울이나, 타이베이나 똑같다. 그렇기에 여행에서의 작은 모습들은 내가 익숙한 곳에서도 필요한 작은 행위 일 것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아니면 다르게 느끼고 싶은 건지 아직 알 수 없다.



딘타이펑 본점

딘타이펑. 공차. 모두 대만에서 시작된 업체들이다. 처음 딘타이펑을 먹어보고 딱히 입에 와 닿지 않았지만,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김포공항에 있는 딘타이펑을 먹고 '나쁘지 않다'로 나는 타협했다. 마침 이 곳에 본점이 있다는 말에 들려보았는데, 약 30분 정도 기다린 후에 드디어 앉을 수 있었다. 가장 신기한 건 어디를 가든 맛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이 곳이 본점이었음에도 말이다. 나중에 규모 있는 타이베이 딘타이펑에 갔을 때 한국인 종업원이 얼마나 어렵게 입사하고 고생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때 내가 입에 넣고 있는 만두에 대한 적지 않은 회의감이 들었다.


딘타이펑 맞은편에 있던 가족.

음식에 대해 생각하면 여행이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는 게 사실이다. 여기서도 가족이 있고, 가족은 외식을 하고, 함께 시간 보내려 함은 서울이나 타이베이나 같다. 그저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으로 새로운 문화가 생기는 것은 굉장히 유혹적이고 재밌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의 기초는 가족에서 시작됨이 분명하다. 

저녁을 먹고 관람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높은 건물이나 관람차는 나에게 고양이 같다. 고양이와 개 등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동물을 좋아하기에 마음먹고 손을 내밀어 그 네발로 걷는 것들의 고운 털을 만져야 하는 것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오금이 저려오고 공포감이 급습했지만 다행히 군대는 그러한 나의 요소를 어느 정도 덜어내 주었고 고양이 만지듯 마음을 다잡고 올라가면 충분히 즐길만했다. 타워 101에 다시 갈 일이 없었기에 관람차에 올랐지만 야경은 딱히 구경하고 싶을 만큼 대단하지 못했다. 관람차를 타고 내려와 야시장에 갔다. 타이베이에는 네 개 정도의 유명한 야시장이 있다고 했는데, 그저 가까운 곳으로 흘러갔다. 


베이컨이 덮힌 야채를 먹었다. 생각보다 딱딱해서 놀랐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즐기지 못한다. 금세 머리가 아파오고 쉽게 진이 빠진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을 유난히 피하는데 행여나 가게 된다면 그날 밤은 푹 자거나 쓰러지듯 잘 수 있음이 예고된다. 이 것은 잠을 쉽게 들지 못하는 나에게 좋은 처방전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 대신 그냥 잠을 조금 늦게 자고 싶다. 그런데 꼭 그러지 않은 경우가 가끔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건 없건 내가 원해서 가는 경우 나는 그런 아픔을 덜 겪곤 한다. 야시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인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시장'에 유명 브랜드들이 자리 잡고 있던 게 신기했다. 


지하철의 선풍기

숙소에 가려면 한국의 6호선 같은 짙은 갈색 노선에서 갈아타야 했는데, 역에 선풍기가 있어서 신기했다. 무인열차를 타고 숙소로 가지만 선풍기의 존재는 마치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는 옛 방식의 산증인 같아 보였다.




다음날은 기차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여정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이다. 기차 여행은 어떨까, 마치 러시아 횡단 열차같이 긴 기차에 몸을 올려 풍경을 볼 수 있는 걸까? 이런저런 기대를 하며 다시 무인열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나갔다. 역 안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본 아침 햇살은 정겨워 보였음에도 나에게는 아직 닿지 못한 빛이었다. 기차여행을 하며 빛이 나에게도 환하게 비추길 기대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 다시 기차를 타야 했는데 역무원에서 묻고 또 물어 왕복 기차표를 구했다. 궁극적인 행선지는 지우펀. 대만 일제강점기 시절 광산촌으로 만들어진 지우펀은 이제 관광지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지우펀은 루이펀(Ruifang)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됐기에 기차를 타고 일단 루이펀 (Ruifang), 싀펀/스펀 (Shifen), 핑시 (Pingxi)를 쭉 들리기로 했다. 


기차에서 만난 아이

아이들은 어느 나라나 참 예쁘다. 예전에 교회에서 누워있던 아이를 보고 '참 편하게 누워있다' 혼잣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아이라서 걱정이 없어서 그래'라고 했다. 그 말도 사실이지만 아이라고 고민이 없진 않을 것이다. 어른과 비교했을 때 그 고민의 무게의 차이는 심하겠지만, 결코 아이라고 걱정이 없진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의 시작은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사람은 기대하면 실망한다고 하는가 - 나의 기차여행에 대한 환상은 ITX-청춘 열차보다 조금 더 높은  지하철스러운 기차를 타면서 깨졌다.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대한 무지함이 만들어낸 실망감인가. 매번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좋지만은 않은 일인데, 매번 기대하며 새로운 것을 바라는 스스로가 아쉽고 또 아쉽다. 


루이펀(Ruifen)행 기차

기차에 대한 아쉬움도 잠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세월을 견디며 쓰러지지 않으려 버텼을 것 같은 건물들과, 언제 도심에 있었냐는 듯한 풍경은 대만에 왔다는 사실을 즐겁게 해주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특히 점점 내가 생각했던 그 '현지스러움'에 가까워진다는 또 한 번의 기대감이 나를 즐겁게 했다.


루이펀 (Ruifang)역에서 나와서. 

루이펀 (Ruifang)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여행에 온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어쩌면 나는 도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스스로 의아했지만, 어쨌건 대만에 오기 전에 내가 원했던 이미지를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루이펀은 기차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는, 하지만 기차 여행의 시작이 되는 곳이다. 타이베이에서 타고 온 지하철 같은 기차에서 내려 루이펀 역에서 다시 싀펀과 핑시로 가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그렇기에 이곳은 기차여행을 하는 마을이면서도 마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가끔 허무하기도 한데 여행을 하다 보면 '익숙함'이란 단어가 참 고민된다. 특히 나는 익숙함을 벗어나기에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그렇기에 새로움을 계속 찾으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원하지 않기에 어쩌면 스스로 끌려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이 느끼고 싶음인데, 굳이 돈과 시간을 써서 떠나는 여행의 본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딱히 해줄 대답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루이펀에서 내려 담배 피우던 공사장 아저씨가 서울 공사장에서 보는 담배 피우는 아저씨와 무엇이 다르냐 했을 때 - 너무나도 다르고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이 궁극적인 딜레마이다. 


루이펀 역에서 걸어나와 식당이 몰려 있는 듯한 건물로 들어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떨쳐버리며 허기를 달래려 식당이 몰려 있을 것 같은 곳으로 발을 재촉했다. 배가 고프면 사실 아무것도 눈에 안 보이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여름에는 카메라를 들고 브레쏭의 '결정적인 순간'을 따라 했겠지만, 추우면 그저 빨리 움직이며 사진 찍고 싶은 것처럼, 배가 고프면 딱히 많은 것을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식당에 와서 여러 반찬가게가 미로처럼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마치 어디가 맛있는지 안다는 듯 둘러보다 그냥 아무 데나 앉았다. 


밥을 먹고 디저트를 먹든 안 먹든 딱히 신경 쓰지 않지만, 이런 곳에서는 꼭 지나가는 음식도  한 번씩 먹어보고 싶은 게 내 얕은 마음이다. 빵을 하나  집어먹고 괜찮다 싶으니 또 옆에 아저씨가 까고 있던 알 수 없는 과일에 눈을 돌렸다. 


다시 루이펀 기차역으로 돌아갈 때. 

그렇게 설렁설렁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기차는 1시간 간격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확실하지 않다. "기억나지 않는 여행"이라는 이 테마가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변명이라면 변명이고 이유라면 이유인데,  그곳에서 그저 즐기다 보면 딱히 노트에 순간순간을 적고 싶거나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지는 경우가 있다 (주로 숙소에 돌아와서 일기 쓰듯 몰아서 쓰곤 한다). 사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다시 꺼내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조금 더 참을걸'하며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사진이 숙성되어야 제맛이라는 게 꼭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기차여행을 시켜줄 기차

처음 루이펀으로 오기 위해 탔던 신식 기차로부터 얻은 실망감이 커서 그런지, 루이펀에서 싀펀 (Shifen) 역으로 가는 기차는 정겨웠다. 이 또한 지하철처럼 보였고 실제로 내부도 그렇게 되어있었는데, '바나나는 길고 기차는 길다'라는 증명을 깨부수었다. 짧고 아담해 보이던 주홍색 기차는 생각보다 투박했다.


싀펀 역에서 내려 마을로 가는 길. 

싀펀 (Shifen) 역에 도착할 때쯤 내 카메라 속에서 즐거움의 환호가 들리는  듯했다. 역을 가득 매운 인파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결국 기찻길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반해버렸다. 어떤 꼬마 아이가 놓친 건지, 멀리서 하늘을 떠다니는 풍선도 인상적이었고 산속에 고요하게 자리 잡은 마을은 존재 차체로 아름다웠다. 


타고온 기차

올 때도 느꼈지만 이 곳 산이 그다지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감싸는 구름은 마치 하늘 위에 떠있는 마을에 온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결국 내가 생각했고 바랬던 대만의 느낌은 이런 곳이었고 나는 도심이 아닌 어느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자연 속에서 관광을 주요 수입으로 삶을 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다만 동화 같은 몽상만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저 빨리 보고 가려는 관광객들에게는 더할 것 없이 좋은 곳인 듯했다.


기차역은 낮은 돌 산과 구름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는 듯 했다.

사실 싀펀(Shifen)이나 핑시(Pingxi)나 이런 기차여행지는 모두 관광지역이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관광이 우선순위가 되고, 관광이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은 것이다. 맞나? 어쨌든. 그러나 싀펀 (Shifen)은 그다지 불쾌한 곳은 아니다. 그저 본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딱히 많이  구경할 것은 없지만 구경할 모든 것을 스스로 구경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찻길을 따라 잡초처럼 자라난 가게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특히 이런 가게들은 대부분 한 가지의 업종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내가 처음 풍선인 줄 알았던 천등 (天燈) 이 그 한 가지 요소였다 원하는 테마에 맞춰 한지 같이 얇은 종이 색을 고르고, 너무 많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다 갈라진 붓으로 원하는 내용을 쓴다. 한국말도 하고 중국말도 하고 베트남 말도 조금씩 하는 것 같은 청년들이 짧은 말로 "사진"하면 사진 포즈를 취하고 "놔"하면 놓으면 된다.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관광 지역을 이어주는 하늘다리.

이런 관광지가 불쾌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이 곳이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곳과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 화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아주 멋진 경치를 보여주며 흔들거렸던 하늘다리를 모든 관광객들이 한번 건너보는  듯했지만, 반대편까지 다 가기 전에 사람들은 금세 돌아왔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실망감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끝까지 갈 이유가 없기에 돌아오는 식이였다. 돌아오는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으며 흔들거리며 보는 경치가 그저 좋아 보였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그저 사람 사는 곳이었다. 조용한 골목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노인들과, 문을 열어놓고 낮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곳에 가면 사진 찍기가 싫어지곤 한다. 이들의 삶의 한자리에 무심코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그들의 모습을 그저 담아간다면 도둑 아니면 뭘까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튀어 나는 것 같다. 워낙 시끄럽고 사람 많은걸 싫어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 곳에서 만나는 고요함과 일상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다리 위에서 본 풍경

'하늘 다리'라는 말이 꼭 틀린 말은 분명 아니었다. 이 곳의 풍경은 관광지로는 너무 아까웠고 시끌벅적 장터 같은 관광지 한편을 조용히 사그라뜨려주었다. 강도 아니고 개천이라 하기엔 너무 작은 저 물결은 흐를 데로 흘렀고 구름이 낮아 정말 하늘 위에 있는 느낌을 잠시나마 주었다. 

 

기차역을 주변으로 자리잡은 가게들

다리 위에서 다시 몸을 틀어 기차역 쪽으로 갈 때 깔끔하고 심플한 한글 폰트를 봤다. 가용 엄마는 어쩌다가 대만 스펀 마을까지 가서 소원등 (천등) 가게를 차렸는지 알 수 없다. '한국인이 운영' '철길에서 전등 날리기' 그리고 '천등 미니어처 판매'까지, 다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똑같은걸 판매하고 제공하는 가용 엄마의 낡고 누린 간판은 어디서나 있는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보여줬다. 


이 차들은 아마 그저 주차장에 자리를 잡지 못한 택시와 관광객들의 렌터카가 아닐까.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골목에 숨어 있는 듯한 그들의 존재는 아름답고 동화 같은 싀펀 동네의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마치 사람 사는 곳과 관광객들이 훑어보고 가는 곳이 나뉜 것 같이 다가왔다.

 

다리에서 기차역 쪽으로 오는 길에 하늘에 천등이 떠다녔다. 아직도 멀리 선 풍선 같아 보이는 이 한지 조각들은 어디까지 날아가서 어디서 낙하할까? 번개탄 같은 불이 곧 끝나면 분명 어딘가로 추락할 것이다. 천등이 결국 어디로  항해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늘로 높게 떠올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분명 제각각 색을 갖추고 있는 천등처럼 다양할 것이다.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

아이들이 여기에서 자라난 것 같진 않다. 귀여운 가방을 메고 비행기  놀이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잠시나마 천등을 잊고 웃게 한다. 기찻길 양 옆으로 자리 잡은 가게들은 금방 끝이 난다. 걸을 때는 그저 끝없을 것 만 같았던 가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끝나고 조금 더 걸어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인파가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게들이 끝나는 부분에서 골목을 조금 더 올라가 보면 그저 평범한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온다. 이 곳은 한적하고 심지어 교회에서는 아이들이 음향 믹서 뒤에 앉아 찬양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에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의 관광객을 보고 자랄 텐데, 과연 사람을 어떻게 빨리 친해지고 빨리 잊을까 궁금해졌다. 예전부터 대인관계에서 정말 슬픈 일은 금방 사람을 맞이하고 또 금방 사람을 보내는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그리 크지 않는 마을이라면, 그런 모습에 어릴 적부터 적응하면서 자라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골목을 조금 더 비집고 다니다 더 이상 볼게 없어졌다. 사실 볼거리는 많았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나는 일반적인 거리를 반대했다. 그곳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더 골목을 서성이다 다시 기차를 타러 역으로 왔다.


핑시 역에 도착하자 수많은 대나무 패들이 걸려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핑시 (Pingxi)라는 마을이었다. 루이펀을 포함해서 세 개의 기차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이고 이 곳 또한 방문객이 구경하는 곳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다른 듯했다. 동네가 다른 곳 보다 커서 그런지 그 거리가 훨씬 긴  듯했고,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적힌 대나무 통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은 루이펀이나 스펀/싀펀 보다 더 동화스러움을 품고 있었다. 햇살이 가득한 핑시의 하루를 볼 순 없었지만, 비가 내리던 그날의 핑시는 분명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향수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비가 올 때의 그 상쾌한 향이 나무와 돌 그리고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골목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머리에 닿아도 불쾌하지만은 않은 빗방울들이 노래하듯 땅에 부딪혔다. 


핑시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

이곳에서 무언가를 더 바랄 것은 없었다. 관광객들은 골목으로 더욱 들어가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이곳에서는 주민들도 기차역 근처까지 다가와 생활하는  듯했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더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산책하는 듯한 이곳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기차 시간에 맞춰 골목골목을 돌아보았다. 30분이 조금 덜 차고 다시 기차역으로 발을 돌렸다. 푸른 산속에 꼭 안겨 있는 핑시를 뒤로 한채 루이펀 행 열차를 탔다. 


지우펀으로 올라와서 경치

루이펀에서 택시를 타면 지우펀까지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택시가 목적지까지 금액이 정해져 있어서 마음이 편했고 막상 지우펀이라는 산 꼭대기 마을에 올라와보니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산을 타고 꾸불꾸불 올라가는 길 양 옆에는 가게들과 건물들이 즐비했고 편의점에 들러 잠시 앉아 목을 축였다. 


바다를 보며 대만이 섬임을 다시 한번 깨닳았다

저기가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다를 보니 마음이 트였다. 저 바다를 타고 나아가 왼쪽으로 가면 중국 본토 일 것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일본의 작은 섬들이 있을 것이다. 기와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절 같이 생긴 건물에는 요란한 장식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붕 중앙에 있던 세 사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이 쌍용 사이에 서있는 형체가 마치 바다를 바라보는  듯했다.


대만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땅콩 아이스크림

지우펀이라는 곳은 철저한 관광 도시였다. 마치 기차여행을 했을 때는 마을 규모가 점점 커지고 그곳 사람들이 기차역 근처까지 얼마나 가깝게 올 수 있냐 처럼 느껴졌다면, 목적지였던 지우펀은 무조건적인 관광지였다. 특히 지우펀이라고 불리는 구역 - 그러니까 관광을 하는 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아 헤매었는데, 상당히 작고 요란했다. 사람들에 치여가며 작은 골목에 몸을 꾸깃꾸깃 넣어 걷다 보면 이렇게 희얀한 음식도 볼 수 있다. 아마 대만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 혹은 스낵인데, 이건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이지만 땅콩에 그 몸을 감싸 쉽게 아이스크림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지우펀의 골목은 요란했다. 왼쪽 오른쪽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게들은 눈길을 끌었고 지나다니는 관광객들 또한 끊임없어 보였다. 특히 지우펀은 모든 가게들이 일찍 닫고 마지막 버스도 없다고 하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간이 많게 느껴졌는데,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이 곳의 이른 아침을 맞이해보고 싶었다.


바다와 하늘이 비슷하다

잠시 구경을 멈추고 골목으로 들어오니 오히려 미로 같은 곳에서 하늘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곳이 나왔다. 조금 둘러보니 이 곳에는 호텔도 여러 곳 있는 것 같았다. 이런 하늘과 저런 바다를 보니 정말 이곳의 아침이 궁금했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분명 이 곳에서 하루 묶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거리 상인

이 곳 상인들 중 희한한 탈을 쓰거나, 손님들 앞에서 작은 쇼를 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렴 수많은 가게들과 경쟁하려면 사람이 먼저 눈에 띄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찍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왠지 예전부터 거리에서 관심을 구걸하는 예술가들이나 음악가들은 사진 찍지 않게 됐다. 정말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사람에게는 카메라 셔터 대신 줄 수 있는 만큼 후원하고 다시 갈 길을 갔다. 그래서 길을 걷다  이런저런 괴기한 모습으로 인파를 잠시나마 멈추려는 상인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오직 핸드폰 게임을 하며 손님이나 관광객을 신경 쓰지 않아 보이던 주인이 흥미로웠다.


지우펀에서 우연히 들린 식당

지우펀에는 어떤 음식이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애매한 시간에 점심도 저녁도 먹을 수 없었고 다만 출출함과 심심한 입을 달래려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에서 튀김과 알 수 없는 젤리 같은 빵을 사서 먹었는데, 튀김은 그저 그런 튀김이었고 물컹하고 빨간 물체가 들어 있는 빵은 손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지우펀 골목

그렇게 지우펀을 돌아다녔다. 여행에서 걸어 다님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동시에 여행이 얼마나 노동스러운지 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여기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여행의 의미를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엔 그저 여행하는 것이, 어디론가 훌렁 떠나버리는 것이, 비행기를 타는 것이, 그저 기대와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나, 머리가 자라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여행의 가치를 찾게 된다. '왜 여행을 가는가'부터 '꼭 여행이 즐거운 일인가'까지, 한 발 멀리서 생각하면 여행지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습고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시간임이 '여행'이라는 게 확실하다.


특히 이렇게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보며 글을 쓸 때, 혹은 다음 여행지를 꿈꾸며 노트에 끄적일 때, 여행의 의미에 대해 추상적인 생각을 종이에 적시곤 한다.


과연,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그곳에서의 시간을 가장 의미 있고 가장 즐겁게 남기는 것인가? 어쩌면 먼 훗날까지도 알지 못하지 않을까.




지우펀 골목

지우펀은 아쉽게도 버스가 일찍 끊김으로 하루 자고 갈게 아니라면 느긋한 여행은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사람이 워낙 많고 북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발도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금이나마 들어오던 햇빛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면 거리는 홍등으로 가득해진다. 이미 홍등이 즐비했지만 저녁이 돼서야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홍등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은 방에서 키고 끄는 전등과 다르다. 저 불그스름하고 주름진 종이 통 안에도 분명 똑같은 전등이 들어있겠지만 마치 필름 카메라로 찍는 풍경 같다. 그저 저 노란 불빛이 밝혀오는 조명만이 가질 수 있는 따스함 인 듯하다. 


포토존이라고 써있는 곳에서 바라본 경치

망고 조각을 들고 잠시 사람이 비교적 없는, 한적한 곳으로 나왔다. 포토존이라고 쓰여있고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몰려있던 곳에는 '셀카'가 난발하고 있었으며 조금이라도 더 이 풍경을 담아보려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풍경을 담아보며  다시 한번 이 곳에 꼭 오겠노라 다짐했다.


'포토존'은 작은 골목 위에 위치했는데 아마 이 골목을 따라가면 분명 사람들이 사는 곳이 나오리라 짐작했다.  그곳에 가서 조금이라도 더 현지인들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렌즈를 가득 채운 습기처럼 끈적했지만 결국 조금 걷다 발길을 돌렸다. 


왼쪽 오른쪽에는 홈스테이 숙박 업소들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분명 그저 사람 사는 곳이 분명했다. 이 골목 그 어딘가에도 '주민들의 거주 구역입니다. 배려해주세요'라는 문구는 없었다. 삼청동 한옥마을과는 달랐다. 이곳의 집 값은 알 수 없지만 분명 이들도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관광객들에게 내미는 경고장은 없었다.


오랜 여행은 아니지만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우펀에서 보내게 되어서 나쁘지 않았다. 좋은 경치가 있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관광객이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며 뒤돌아보니 분명 더 많은 곳을 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다. 특히 채워지지 않는 기대감을 꾸준히 갖고 매일매일을 둘러보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이곳이든 저곳이든, 어딘가에 간다면, 이들이 관광객을 관광객으로 두는 것처럼, 나도 그곳의 모습을 온전히 그들의 것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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