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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빈 Feb 06. 2016

HONG KONG - 4

내가 이 곳에 있었다는 것, "홍콩 그 마지막 요새"

오늘은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지난 4일간 매번 센트럴 선착장에서 내렸다면, 이번엔 완차이 선착장에서 하차했다. 이렇게 소박한 변화가 도시의 다른 면을 보여주니 놀랍다. 매번 왼쪽으로 보이던 오페라하우스-미니어처-스러운 건물을 이번엔 오른쪽에서 보았다. 며칠간 놀고먹으며 방황하고 다니니 홍콩에 대해 꽤 아는듯한 자부심이 들었다. 이건 분명 '아무것도 모른 채 와서 이 정도나 알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홍콩의  일부밖에 알지 못함으로, 이 것은 틀린 게 더 많은 자부심이다. 


대기하는 택시들

그 나라에 가서 '내가 정말 이 나라에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느 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바다를 보고, 어떤 사람은 건물을 보고 느낄 텐데, 나는 택시를 보고 느꼈다. 예전부터 회색과  빨간색을 좋아해서 운동화도 똑같은 운동화를 산 나는, 홍콩의 택시를 보고 정겨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영화 <무간도>에서 보던 택시 스타일과 내가 좋아하는 색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완차이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택시를 보았을 때 '내가 홍콩에 있긴 있구나' 싶었다.


완차이는 경제구역이다. 높은 건물들이 솟아 있고 세계 각종 금융 기업들이 터전을 삼은 곳이다. 이 곳에 와서야 비로소 홍콩이 세계 3대 무역/금융 국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에 없는 기업 본사들이 많이 있다는 힌트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여행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또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이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훨씬 수월한 대화가 된다. 나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 왜 완차이에는 야자수가 있는지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센트럴 어딘가의 시장

친구와 땡땡을 타고 다시 센트럴 미드타운/소호 지역으로 나가보았다. 비록 내가 보고 싶은 어떤 특정한 것도 없었고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그저 내가 이곳에 있었기에, 떠나기 전에 다시 이곳에 있어 보고 싶었다. 


이것은 아마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듯,  그곳에 아직 있음에도 임박해오는 작별이 벌써 그리움을 짜내는 듯한 그런 기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더 이상은 그곳이 금방 꺼질 것 같은 향초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한정된 시간'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지금을 놓치고 산다. 그래서 심지어 "현재/선물 (PRESENT)"라는 책까지 있을 정도이다. 예전엔 친구들과 "내일 죽으면 오늘 뭐할래?"라고 할 정도로 '지금'을 즐기기엔 내일이 너무 두려웠다. 물론 여행이라고 평생 갈 수 없다. 매일 어디서든 여행하듯 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정해진 시간 속에서 그 나라, 그 도시, 그 동네만의 별난 향을 맡으려면 지금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이곳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은 어쩌면 현재에 충실했던 나의 모습이라고 나는 변명하고 싶다.


공사장 인부

오늘은 마치 지난 며칠을 뒤돌아보는 것 같았다. 행선지 없이 떠도는 소박한 일정 아닌 일정 동안 느낀 나의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되새겨보는 것 같았다. 의도치 않았기에, 정해지지 않았기에, 나는 이것이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되새기고 싶기에,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다시 보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을 다시 강조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렇기에 나의 첫 홍콩 여행 마지막 날은, 의미보다는 의도로 가득했다. 센트럴을 방황하다 골목 뒤에 작은 공사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젊은 인부를 보았다. 하지만 그가 홍콩 사람인지, 동남아 사람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마치 아시아인중에서도 다른 아시아인 같았다. 지리교육이  덜된 나의 막연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보며 나는 홍콩에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해냈다. 


"Hong Kong The Last Fort"

벽화를 사진으로 담는 것은, 그린 사람이 아니면 딱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벽화를 찍는 것 말이다. 하지만 골목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잠시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계속 봐도 알 수 없는 그림 꼴라쥬는 아마 내가 이 곳에서 마음에 세기고 가야 할 문구를 제시했다.


Hong Kong, The Last Fort

'홍콩, 그 마지막 요새'는 어쩌면 내가 홍콩에게 갖어야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와서,  두 손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 여정은 결코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홍콩이라는 도시가 - 나라가, 나에겐 그렇게 요새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그저 들어와서, 헝클어진 마음을 풀어헤치고,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풀어가는 곳이 아닌가. 


센트럴 어느 뒷골목

한동안 벽화의 의미를 풀어보려 했지만 나는 알란 튜링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이밀며 사진을 찍어대도 결코 예술가로서의 의미를 해독하기란 나의 분야가 아니다. 나는 아직 내가 담은 의미도 풀어내기 어려워하기에, 나는 그저 작은 정성과 의미로 알 수 없는 사진과 그림들을 그저 오래 쳐다본다. 나만의 오랜 시간은 남에게는 짧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그림도 오래 보면 무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짧은 희망이다. 


그렇게 문구를 마음에 얕게 세기고 뒷골목으로 흘러 들어갔을 때, 높이 솟은 건물들 속에서의 답답함이 몰려들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통화하던 여자는 내가 와서 간 건지 모르겠으나 발걸음을 재촉해 해방구를 찾아 떠났고 나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 같은  뒷골목에서 홀로 서있었다. 특히 창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 보이는 창문을 갖은, 얇아도 너무 얇은 건물은 마치 사람에게 꼭 필요한 어떠한 쥐구멍을 만들어둔 것 같았다.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뒷골목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발을 떼지 못한 채 서성거렸다. 특히 눈에 띌 것 없는 건물들도 한번 우러러보고, 아래에는 뭐가 있나 쳐다보고, 그렇게 시간을 채우고 나는  그곳에서 떠났다.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이 모인 거리, 그리고 어느 가구점의 상인

다시 발걸음을 옮겨 골동품을 모아 파는 골목으로 갔다. 옛날  돈부터 무딘 칼까지, 안 파는 게 없었고 풍경만 조금 바뀌면 이 곳은 금방 고전시대 장터의 향이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특히 주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판매 중인 의자에 앉아 신문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펼쳐놓고  턱을 괴고 있는 주인은 마치 가구를 파는 사람 보다는, 삶의 일부를 보여주는 사람 같았다. 그저 자신이 판매하는 가구보다는, 팔아도 좋고 안 팔아도 좋은, 삶의 일부인 것 같았다. 그게 좋았다. 나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잘 사지 않을 이런 오래된 가구를, 팔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생활 속에서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아름다웠다.


길 건너려 준비하는 어른과 아이.

홍콩의 골목은 비좁고, 차들이 다닐 땐 더욱 좁아진다. 일방통행은 아니지만 서로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 같고,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올 것 같아 보이는 길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길에서 잘 살았다. 비켜야 하면 비키고, 갈 수 있으면 가는 그런 길 위에서, 사람들은 지나가는 차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또 차는 사람을 위협하지 않았다. 


좁은 골목은 그래서 위험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좁다고 와 닿지도 않았다. 양쪽에 차들이 이기적으로 주차를 하지도 않았고 다들 위치가 있는 것처럼 순리적으로 움직였다. 물론 내가 본 것은 한정적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그런 모습을 봐서 다행이고, 일부일지라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 도시가 좋았다.


길을 가다 굳이 모자를 안 써도 될 것 같은 날씨에 모자를 쓴 소녀를 보았다. 엄마인지, 보모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건 꽉 잡은 손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소녀는 평화로운 골목에 익숙한  듯했다.  젓은 땅보다 더 먹먹한 옷을 입고 있던 소녀는 카메라를 지긋히 쳐다보았다.


소녀 뒤로 서있는 높은 빌딩들이 마치 상상의 도시 속 같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Hello를 반복했던  '쿨'한 종업원 아저씨

홍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저씨는 시큰둥하면서 말  중간중간에 '안녕하세요' '헬로'를 외쳐대던 이 아저씨다. 점심으로 달콤한 닭고기와 밥을 해결하면서 아저씨의 시큰둥함을 곁들여 먹었다. 홍콩에 와서 사람들을 많이 많나고 싶었다. 기회가 되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좋았다. 어느 정도 홍콩에 대해 알게 되었고, 분명 다음에는 편한 마음과 이야기거리를 가득 담아 오겠다고 다짐했다.


주방 한켠에서 밀크티를 식히고 있었다.

처음 홍콩에 와서 맥도널드 밀크티를  사 먹었는데, 이곳에서 밀크티를 먹고 후회했다. 밀크티를 많이 마시는 홍콩에서 맥도널드 밀크티를 마셨다는 게 참회스러웠다. 식당 입구 옆에서 밀크티와 기타 다른 차들을 내리고 있었는데, 밀크티를 식히는 과정이 신기했다. 주전자에서 주전자로 계속 부어대는 손길은 섬세하면서도 시원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건 괴상한 현상이다. 물이 더러운 나라들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지만, 물이 깨끗한 한국은 원래 차를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게에서 담아주는 밀크티는, 맥도널드 기계에서 뽑아서 컵에 꾸겨넣는 음료가 아니기에, 오히려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드럽게 감미 할 수 있다. 


옛날 경찰 막사를 개조해 현지 예술가들의 상점으로 변한 PMQ

밥을 먹고 한 번 더 센트럴 인근을 산책했다. PMQ는 원래 홍콩 경찰 숙소였다. 영국에서 해방이 되고 도시의 질서가 어그러지자 경찰 인력을 급하게 키웠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게 PMQ라고 한다. 지금은 현지 예술가들이 만든 패션용품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들의 벌집으로 변형되어있다. 이 곳에서 작은 선물용 카드들을 몇 장 샀다. 여행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으면 딱히  사 오고 싶은 게 없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굳이 줄 사람도 없는데 선물을 사는 이유는 그저 하나라도 더 담아가고 싶어서인 것 같다.


센트럴에서 산책을 하고 마지막 구경을 한 뒤 완차이로 넘어왔다. 처음 페리를 타고 내렸던 동네가 이제 인공 불빛으로 가득해져 갈 무렵이었다. 야자수는 아직도 신기했고 왼쪽으로 가는 차들도 또 한번 신기했다. 가로등과 건물 빛에 저물어가는 태양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저 이 곳에서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느긋하되 빨랐던 밀고 당김에 감사했다.


공항행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던 곳.

버스를 타기 전 출출해서 식당에 들어왔다. 홍콩에 도착해서 첫끼를 스타벅스 샌드위치를 시작한 게 창피했다. 뒷 이야기인데, 용기 내어 '니하오'를 외치고 동네 식당에 들어갔다가 도망치듯 나왔다. 영어 메뉴를 기대했지만 없었고, 영어는 하나도 못하는 할아버지 종업원의 다그침이 식욕 억제 기능을 충분히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그냥 그들의 말투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맛집'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유명하지 않은 곳만 가보았다. 그저 관광객은 없는 나만의 요새를 늘려가고 싶었다. 

 

좁고, 사람은 많고, 불편하고, 맛있다.

마지막 식사까지 정확하게 나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홍코이든, 맛있는 곳은 그저 허름하고 좁은 곳이 많은 것 같다. 분위기를 생각하면 올 수 없는 곳이고 맛과 향을 생각하면 무조건 와야 하는 그런 곳이다. 특히 이런저런 식당들에 들어갈  때마다 식당 가게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서의 시간에 집중하고, 그들이 준비하는 음식에 집중하려 했다. 내가 홍콩에 와서 좋아하게 된 음식은 '차시유판'인데, '차시유'는 돼지고기이고, 판은 밥이다. 가난을 겪은 후로 밥과 야채 종류 반찬 하나로 식사를 하는 홍콩 사람들 식단은, 고기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차시유판'을 시키면 그저 고기와 밥이 나왔고, 야채 반찬을 원하면 추가로 돈을 내야 했다. 반찬이 많은 식탁도 좋지만, 매번 먹지 않는 반찬까지 올리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밥과 고기가 나오는 '차시유판'이 좋았다. 특히 '차시유판'의 돼지고기는 겉은 삼겹살처럼 탱탱했고 속은 수육처럼 부드러웠다. 고기 자체가 달콤한 바비큐 소스에 숙성되어 나왔기 때문에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한 그릇 더 시킬까 고민하다, 날아갈 것 같은 쌀에 적응하지 못한 나를 자제했다. 


고기를 토막내는 모습.

한국에 와서도  적응되지 않았던 부분은 고기나 생선 등을 거리에서 혹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벌려놓고 판매하거나 음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지금이야 웃으며 지나가지만 예전에는 고기 한토막 한토막이 걱정의 근원이 되었다. 홍콩에서도 마찬가지 었다. 고기를 바구니에서 꺼내 물을 질질 흘리며 도마 위에 놓는 것이나, 손으로 만져가며 고기를 자르는 것이나, 나는 이제 그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도마를 내려 찧는 건지 고기를 자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칼 질을 리듬 삼아 밥을 먹고 나는 편안한 속으로 다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끝. 다음 음식 번외편 계속)




1편 "그렇게 빠르고, 그렇게 느리게" - https://brunch.co.kr/@binsplace/3

2편 "여행은 어쩌면 눈물을 흘려보내는 행위가 아닐까" - https://brunch.co.kr/@binsplace/4

3편 "관람차 같은 홍콩" - https://brunch.co.kr/@binsplace/5






2015년 2월 13일 새벽 1시 25분 비행기 홍콩>>인천

2015년 2월 7일 저녁 9시 35분 비행기 인천>>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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