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가 만들어졌다. 도구가 만들어지면서 손기술이 좋아져예술 작품이 생겨났다는 이론이 있다. 아니다. 손기술이 예술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손기술 때문에 예술이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도구가 만들어졌다. 도구로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했다. 일의 탄생이다. 도구를 사용해서 일을 하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분이 시작되었다. 현재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일을 해서 생산될 것 혹은 가져야만 하는 것의 구분이다. 본격적으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내일도 '일 해야하네...'라는 불안, 초조, 짜증이 생겼다.
노동이 생기면서 함께 발생한 것이 금기이다. 금기에 대한 인식은 아주 오래전 인류에게 있었다. 자신이 만든 도구는 계속 남지만 인간은 어느 순간 정지하고, 썩고, 사라진다. 죽음을 인식한 인간은 시체에 대한 금기를 가지기 시작한다. 죽음이 금기를 불러왔다는 예가 무덤이다. 시체에 대한 아무런 금기가 없었다면 귀찮게 시체를 매장하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금기가 꼭 필요하다. 가만히 있지 말기, 무언가에 참여하기.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이게 되기가 필요하다
인간에게 일과 금기가 주어졌다. 동물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던 인간에게 큰 굴레가 씌워졌다. 이 굴레를 계속 쓰고 있을 수가 없다. 무언가 회피가 필요하다. 금기와 일에서 도망치기 위해 놀이가 시작된다. 왜 일에 대한 반대가 놀이어야만 하는가? 일은 생존에 유용한 활동이다. 놀이 특히 예술은 유용성에 반대되는 활동이다. 조르주 바타유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은, 생존에 목적을 둔 세계에 대한 항의이다.'
인류 최초의 반항을 우리는 아직도 볼 수 있다. 회사 가기 싫어서 했던 딴짓은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라스코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우리 인류 선조는 엄청난 그림을 그리면서 일에 반항을 했다. 우리는 지금 쪼잔하게 넥플릭스를 보거나, 술을 마시면서 일에 반항을 한다. 스케일이 다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순식간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지나가고 월요일이 닥쳐올 것이다. 회사는 가야 한다. 문학 책을 읽거나, 공연을 보거나, 아니면 클럽에 가서 춤이라도 추어보자. 마치 5만 년 전 인류가 우아하게 일에 저항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