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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belbyme Oct 10. 2023

모래의 여자

모순이라는 모래로 구성된 사막

이 소설은 시작부터가 모순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남자는 희귀 곤충을 채집하려고 시골로 간다. 희귀한 곤충을 발견하면 자기 이름이 들어간 곤충 이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한 여행이 모래 구덩이 속에 감금되면서 사라짐의 여행으로 바뀐다.


남자는 모래 사구에 빠져서 허둥대는 가운데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상황을 추론하고, 탈출 방법을 고안하고, 모래 안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런 그가 산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받기 위해 구덩이에 같이 살던 여자를 마을 주민들 앞에서 강간하려고 한다. 이처럼 남자는 이성과 감정의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모순적인 면을 보여준다.


여자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는 고장, 집을 지키기 위해서 납치와 감금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감금한 남자가 탈출하려고 집을 허물기 시작하자 남자와 육체적 싸움을 벌여 이긴다(나도 허약해서 이 대목에 공감이 갔다). 남자와의 육체적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실천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자발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을 사람이 던져주는 최소한의 식량에 의존하면서 구덩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녀가 스님처럼 속세와 인연을 끊어 해탈하기 위해 구덩이에 사는 것도 아니다. 구덩이 밖에는 별거 없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 라디오를 간절히 원한다. 바깥세상에 나갈 용기는 없지만 세상을 그리워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모래가 사막처럼 쌓여 이는 소설 속 공간도 모순적이다. 마을이 일본의 한 지역이라고 소설에 나온다. 하지만 일본에 사람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모래가 가득하고, 촌락을 구성할 만큼 넓은 사막이 있을 수가 없다. 만약 정말 그런 지역이 있다면 소설 속 엽서 판매원이 설득한 내용처럼 그 지역은 관광 명소가 되어야만 한다. 사막이 있을 수 없는 섬나라에 사막이 소설의 공간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모순의 끝을 보여준다. 마을을 탈출하기 위해 고생과 모욕을 감당하던 남자 주인공이 정작 아무 감시도 없는 상황에서는 탈출을 포기한다. 로또 당첨을 위해 끊임없이 복권을 구매한 사람이 당첨되었지만 복권과 현금 교환을 포기하는 느낌이다.


소설의 상황, 캐릭터, 결말 등 모래의 여자 안에는 모순이 사막의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끊임없는 모순을 보면서 모순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모순이라 모순을 해결하면 우리 삶 자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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