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와 진술

왜 팩트를 요구하는가

by 빙구

1. 서사란 무엇이고 진술이란 무엇인가? 그것부터 알아야 우리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2. 짧게 정의하자면 진술은 사실(흔히 말하는 팩트)을 편집 없이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서사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즉 이야기의 흐름(주로 기승전결)을 위해 더 중요한 사실과 덜 중요한 사실을 구분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꾸며내는 것이 허용된다.


3. 사회 일반에서 우리는 서사를 사용해야 할 자리, 진술을 사용해야 할 자리를 자주 만나게 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꺼내들어야 하는가에 관한 판단은, 굳이 여기에서 내려주지 않아도 각자 무리없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은 이것이 서사인지 진술인지 혼동하게 된다. 또한 둘을 교묘하게 섞어놓아 언뜻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만난다.



4. 한국 사회에서 언젠가부터(정확하게 말하면 일베가 등장한 시점 즈음부터) '팩트'에 대한 요청이 눈에 잘 띄는 것은 몇 가지를 말해줄 수 있다 : 그 중 하나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가치판단을 배제한 객관적 사실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독자(또는 판관)의 마음이다. 또 하나는 진술의 자리에 진술이 오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접하고 있다는 사회적 경향이다. 흔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례 하에서의 팩트는 녹음된 대화라든가 사진자료라든가 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그것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 팩트가 사실에 관련된 진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전자에 대해 말해보자. 가치판단을 배제한 객관적 사실이란 무엇이 있을까. 사실에 대해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누군가의 눈에 무엇이 유독 띈다는 것 자체가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객관적 사실인가?' 라는 물음 속의 <이것>이 내 눈에 들어온 과정 자체가 다른 것보다 이것을 더 중하게 여겨 강조한 정보 제시자의 가치판단을 반영한다는 말이다. 어떤 것에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말, 나아가 이것이 사실에 관한 진술이라는 말은 단순히 '이것은 조작된 사실이 아니다'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성찰까지 필요로 하는 문장이다.


6. 물론 너무 엄하게 따지게 되면 할 수 있는 말의 양이 거의 없어진다. 그래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팩트라고 불려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조작되지 않았다는 요소만으로는 이것이 팩트인지를 결정하기에 무리가 있다. 생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략해 자기 주장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팩트'의 뜻에 따르면 팩트로도 서사를 쓸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팩트라는 말에서 진술을 기대하는데, 팩트의 정의에 부합하는 말들만을 가지고도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7. 그러면 무언가를 팩트로, 나아가 어떠한 문장이나 누군가의 말을 사실 진술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렇게 많은 것을 따질 필요는 없다. 딱 하나, '이 정보가 이것 자체로 충분하다고 볼 근거가 있는가?' 면 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이 정보가 내가 알아야 할 추가적인 무언가를 공평하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이 없다면 없다는 근거가 함께 기술되어 있는지를 보면 된다는 것이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런 진술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 이런 진술이 희귀한가 하면, 이런 진술로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사실 글로서의 재미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편에서 이어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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