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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nownothing Sep 05. 2023

Faust

괴테, 파우스트를 읽고

마치 과거에 세뇌당한 흔적이 있는 듯이, 인생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끊임 없이 성취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렇게 성취에 집착하다보니 어느 순간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숙제처럼 받아들이게 되었고, 작은 관문들을 통과할 때마다 내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은 허무감에 빠졌다.


삶을 성취라는 것으로 압축하다보면 자신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기 쉽다. 그렇게 약 5년 전쯤 파우스트를 읽었다. 세상의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가 자신을 쓰레깃더미를 파헤치는 벌레에 비유한 순간, 텅 빈 해골바가지를 보며 왜 히죽거리냐는 광기어린 질문을 던진 순간을 계속해서 되내였다. 그 때의 나는 내 자신도 벌레같다고 생각했고, 벌레라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어쩌면 파우스트는 그가 멈추는 순간까지 그가 얻지 못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시도했다. 악마 메피스토텔레스가 파우스트에게 계약을 제시했던 의도는 온갖 쾌락을 통해 그의 영혼을 마비시키는 것이었지만 내가 바라본 파우스트는 쾌락에 잠식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진리에 가까운 이유 - 혹은 극도로 개인적인 궁금증을 알아내고자 모든 삶의 방향을 시도해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 가까워보였다. 


그는 사랑을 하고 잃기도, 권력을 얻기도, 신화 속의 미녀와 가정을 이루기까지 하는 등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도해본다. 그런 그의 인생이 종점에 다다르기 직전, 그는 처음으로 남을 위한 목표처럼 보이는 간척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남을 돕는 것으로부터 오는 나의 만족이 더 큰, 또 다시 나 중심적이며 또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인생을 경험한 것이다. 사랑하고, 버림받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죄를 저질러 번뇌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자기 실현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인간, 근대적 인간이자 파우스트적 인간이다.


눈이 멀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소리를 지상낙원이 오는 소리로 착각해 죽음을 선택한 파우스트.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까지도 그는 현자에 가깝기보다는 어리석고 평범한 인간을 닮아있다. 메피스토텔레스는 그의 영혼을 취하려하지만 그의 영혼은 결국 천사로부터 구원받는다.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기독교적으로 바라봤을 때 그는 속죄하지도 않았고,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어구 역시 자기합리화로 쓰일 수 있는 얄팍한 논리로 느껴진다. 그런 와중 '여성적'이라는 단어 역시 갑작스럽게 종교적으로 느껴져 혼란을 준다.


이에 대해 괴테는 에커만에게 '불완전하지만 순수하게 노력하는 인간', 즉 진리를 찾고자 헤매이지만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인간을 파우스트적 구원의 열쇠라고 말했다고 한다. 종교가 중심이었던 문화에서는 충격적인 결말일 수 있겠으나, 근대를 넘어 현대의 인간에게 저 전제가 예전만큼 큰 위로를 주지는 못하는 듯 싶다.


결국 이 책에서 인간 파우스트는 능동적으로 진리를 찾지 못한다. 수동적으로 구원을 받았을 뿐이다. 나는 신에 가까운가 벌레에 가까운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지도 못한다. 나 역시 어딘가에는 내가 살아가는 것에 숨겨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질문했던 사람으로 파우스트의 삶에서 어떠한 정답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간간히 반짝이는 어구들을 발견하기도, 지루한 희곡 부분을 견디기도 하며 마지막을 마주했지만, 결국은 어떠한 정답도 찾지 못한 채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이 고전이 내게 지금 주는 작은 위로는 인간은 진리를 추구할 뿐 찾아낼 수는 없다는 단순한 사실 같다.



폴 세잔의 영원한 여성


환상이 보통때는 대담하게 나래를 펴고

희망에 가득차 영원한 경지까지 날아가다가도,

기대했던 행복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좌초하게 되면

이젠 조그만 공간에도 만족하게 된다.

곧 마음속 깊이 걱정이 둥지를 틀게 되고,

거기 남모르는 고통이 생겨나

불안스레 흔들대며 기쁨과 안식을 방해한다.

걱정은 항상 새로운 탈을 쓰고 나타나는즉

집과 농장, 아내와 자식,

또는 불, 물, 비수 그리고 독약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두려워 떨고,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것을 놓고 줄창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나는 신들을 닮지 않았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쓰레깃더미를 파헤치는 벌레와 닮았다.

쓰레기를 먹으며 살아가다가

나그네의 발길에 밟혀 파묻혀 버릴지도 모른다.


이 높은 벽을 칸칸이 막으며

내 주위를 비좁게 만드는 이것들도 쓰레기가 아닐까?

어디서나 인간들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

어쩌다 하나쯤 재수 좋은 놈이 존재했다는 것,

그걸 알려고 수천 권의 책을읽어야 한단 말인가?

텅 빈 해골바가지야, 왜 너는 나를 향해 히죽거리느냐?

너의 두뇌도 한때는 나처럼 헷갈리면서

안락한 날을 희구하고, 답답한 어스름 속에서

열렬히 진리를 찾아 처량히도 헤매었겠지?



더 알아볼 부분

트비히 판 베토벤은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려고 구상했지만 끝내 그의 죽음으로 무산되었고, 구스타프 말러는 말러 교향곡 제8번 E♭장조 천인의 교향곡에서 파우스트의 제2부를 가사로 채용하고 있다. 프란츠 리스트는 파우스트를 주제로 아예 교향곡을 하나 만들었다. 또한, 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주제로 한 왈츠도 4곡 작곡했다.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등이 파우스트의 한 장면을 그린 회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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