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서평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뭉툭하고 솔직한 이 책을 나는 앞으로 여러번 다시 읽고 사랑할 것 같다.
사랑은 책임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가장 살아 있다는 걸 뜻했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망각한다는 뜻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겠다는 약속이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자아와 사회에서 충족되어야 할 위치 사이에서 혼란을 겪어왔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먹고 살기 위해 좋아하는 것 보다는 괜찮은 산업군의 괜찮은 직장을 마련했다. ‘풀이 눕는다’의 그녀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종족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단 한 순간도 현재에 살지 않는다고, 거짓 속에 살고 있다고 비난하겠지. 나는 내 안의 그 무엇은 그녀와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도 그녀처럼 솔직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종종 삶을 바친 시인들, 소설가들, 그리고 어릴 적 가치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소수의 친구들을 조용히 동경하곤 했다.
사랑 안에서 아름답게 굶어죽겠다고 말하는 그녀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그녀의 시선을 흠모하는 나마저 나이브하다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인간마저 벽돌처럼 조각나 수치화 되는 시대에. 그녀는 작 중 여러번 타인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쓰레기라고 칭해진다. 언젠가부터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쉬쉬해야 할 행위가 되어버렸다. 가까이 가면 때라도 묻듯이, 왠지 가난한 냄새가 나는 듯한 무언가… 그녀의 말대로 온세계는 돈에 짓눌리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현대의 사랑은 쓰레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신형철의 책 중 ‘그러니까 돈 따위가 우리의 사랑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 사랑 안에서 굶어죽겠다, 아름답게. 그게 내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논리는 그 ‘꿈’을 박살내고 연인들은 몰락한다.’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박살나는 것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자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만난 그녀와 풀은 결국 몰락하지 않는다. 둘만의 아름다움을 잉태한다. 그들을 보며 나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자문한다.
나도 알아. 아름다운 것들은 박물관과 백화점에 있지. 하지만 말이야, 사람들이 잊고 있는게 있어. 박물관이나 백화점은 절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해. 단지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다놓은 것뿐이야. 단지 그것뿐이잖아. 하지만 그 사람들은 말이야. 그때 내가 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가진 아름다움은 어디선가 훔쳐온 게 아니였어. 그 아름다움은 그 사람들 속에서 태어난 거였어.
마지막으로 김사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해가 지는 모습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오는 서늘한 기분을, 아주 긴 시간이 흘러 거대한 돌이 모래조각이 되는 황량함을, 인간의 사랑 안에서 표현할 줄 아는 그녀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슬픔을 아픔 절망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저 운다고 표현할 줄 아는 그녀가 참 좋다.
왜 난 이해하기를 바라는가. 왜 그에게 닿기를 바라는가. 왜 알기를 원하는가. 왜 내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그냥 아름다울 수가 없는가.
그건 끝도 없이 가라앉는 태양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끝도 없이 무너져내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그 이상을 원했다. 그래서 자꾸만 다른 것들이 필요해졌고 점점 더 균형을 잃어갔다. 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랑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게 그해 가을 내가 도착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빈곤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