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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l 07. 2024

떠날 수 있을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요즘 들어 다 던져 버리고 저 멀리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 vs시골?"이라며 묻던 수많은 무의미한 질문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아 당연히 도시지"라고 답했었는데. 내가 어떻게 도시에 올라왔는데. 

라고 하기에 나고 자란 곳도 사실 도시지만. 


글쎄다. 전형적인 '도시에 염증을 느끼는 증상'일까. 진부하고 재미없네. 하지만 요즘 마음이 진짜 그렇다.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소비에만 더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싫고 그곳에 공급자로든 수요자로든 있고 싶지 않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온갖 sns를 닫았건만 피드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소비 광고로 범벅이다. 문제는 나도 이 광고를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 그냥 다 던져 버리고 떠나고 싶다. 그런 갈증을 풀기 위해 예전에 방영한 효리네 민박을 보며 효리 언니의 제주도 살이를 상상한다. 언니는 하루 종일 뭐 할까. 새벽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도 전에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는 것 같던데. 그러고서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효리네 민박을 보니 낮잠도 자주 자는 것 같고. 여름엔 해변에 가 패들 보드도 탄다. 그때까지 언니도 sns 안 했다. 


그러다 알고리즘에 이상순의 '완벽한 하루' 티저가 뜬다. 와, 신곡 나오나 보다. 짧은 쇼츠 영상에 기타 소리가 너무너무 좋다. 짧은 티저에 들어간 영상들도 좋다. 흔치 않게 신곡이 발표되는 오후 6시까지 기다렸다 나오자마자 노래를 들었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날들
아무런 근심 없는 하루
매일매일 꼭 어제 같은 날이면 좋겠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한 하루


부럽다. 부러워! 


뮤비를 보니 아! 작년에 일본에서 개봉했다는 <퍼펙트 데이즈> 영화 장면이다. 아~ 이제 이름이 왜 완벽한 하루인지 알겠다. 일종의 프로모션으로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이다. 예고편을 보니,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영화다. 


어제 본 <퍼펙트 데이즈>는 제목 그대로였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새벽 이웃의 빗질 소리에 잠에 깨고 청소부 옷을 입고 현관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번 웃는다. 집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 뽑아 청소할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운전해 간다. 차에선 늘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듣는다. 퇴근하고선 목욕탕에 가 깨끗이 씻고 자전거를 타고 역 아래 단골 술집에 가 술 한 잔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책 한 권을 읽다 잠든다. 이런 일상이 아주 똑같이 반복된다. 마치 시구처럼, 영화에서도 대여섯 번은 넘게 반복된다. 


영화는 너무 좋았다. 아름답고 감동이었다. 굳이 빽빽하게 채워 넣지 않은 히라야마의 이야기가 오히려 마지막 장면에서 긴 여운을 주었다. 이 영화를 보고자 한 내 마음은 충족됐다. 아니, 사실 넘쳤다. 왜냐하면... 처음 히라야마의 날이 나왔을 땐 정말 정말 부러웠다. 와, 도시에서도 저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구나.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두어 번 때까지도 부러웠다. 저 아저씨 도파민이 없는 삶이겄어. 한 대여섯 번 나올 땐 솔직히. 아. 노잼이겠다. 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노잼이란 건 아니고, 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은 아니겠구나. 휴대폰도 하나 없이 매일 음악과 책, 그리고 노동으로만 채워진 히라야마의 삶. 일종의 수행자 같기도 한 그의 삶을 보며,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패턴이나 당장은 자신이 없다.  게다가 마지막의 히라야마의 얼굴을 보고서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일주일 정도면 딱이려나. 역시 그냥 휴가가 필요한 직장인이렸다.


몇 년 전 떠난 외연도가 떠오른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마을. 도통 할 거라곤 없어 친구와 누워 있거나 친구가 치는 기타를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정원을 뛰어다니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강아지와 놀거나 새소리를 들었다. 딱 그 정도가 좋나 보다, 아직은. 조만간 그런 날이 있으면 좋겠다. 그땐 더욱 적극적으로 휴대폰도 멀리하고 히라야마 베타 체험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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