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가슴이 도대체 뭐라고
하루는 퇴근하고 날이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더워서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어제꼈다. 어향가지를 할 계획이라 당장 에어컨을 틀지도 못하겠고 최대한 선풍기에 기대 요리를 시작했다. 불 앞에 있으니 더욱 덥다. 티셔츠에 이미 팬티 차림인데 몸에 후텁지근하게 붙는 티셔츠가 짜증 나 티셔츠까지 벗고 요리를 했다. 티셔츠 하나 벗었다고 이렇게 시원할 수가. 한껏 자유롭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다녀온 제주도 여행이 떠오른다. 바닷가 근처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어야 했는데 차에서 옷 갈아입기 고수인 나도 상의를 갈아입을 땐 신경이 쓰인다. 티셔츠 안에서 브라 벗는 거야 대부분 여자애들은 고수일 텐데 반대로 티셔츠 안으로 비키니 상의를 입는 건 어렵다. 겨우 갈아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왔다. 바닷가에는 웃통을 벗고 노는 남자들이 많았다.
사실 나는 몸을 보여주는 거에 엄청나게 수치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집에서도 창문이나 동거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옷을 훌훌 벗고 다닌다. 브라도 잘 안 입는다. 밖에서 바지를 갈아입는 것도 어차피 팬티나 비키니 하의나 생각하면 그렇게 숨길 것도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이렇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몰카나 품평이나 시선이나 추행이나 그런 것들이겠지.
나는 진심으로 여성의 상체도 남성의 상체와 동등한 지위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너도 벗으니 나도 벗을래, 내 부끄러움은 내가 참아볼게,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뭐랄까.. 전반적으로 몸이 너무 과잉성애화 되어 있다고 느낀다. 몸은 그냥 몸일 뿐인데. 가슴도 그저 신체 기관 중 하나일 뿐인데. 특히나 한국에서, 또 특히나 여성의 몸은 너무나 성애화 된 대상으로 학습돼 있다. 궁극적으로는 몸이라는 것 전체에서 불필요한 상황에, 불필요한 성애화를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백 번 양보해 성기야 그렇다 치는데 가슴은 대체 왜?
작년 바르셀로나의 해변을 갔을 때도, 올봄 카프리 섬의 해변에 갔을 때도 꽤 많은 여성들이 태닝을 위해 비키니 상의를 벗고 하늘을 본 채 누워 있었다. 그래 이깟 가슴이 뭐라고. TPO를 너무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나도 덥거나 불편하면 벗을 수 있다. 벗은 몸을 건조하고 무감각하게 볼 수 있다. 허용된 상황에서 허용된 대상에 의한 섹슈얼을 위한 게 아니라면 상대방의 몸에 대해 원치 않는 성애화는 없어야 하지 않나? 몸에 대한 과잉성애화, 수치심도 일종의 학습 결과일 텐데.
남자인 친구들하고 섞여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나서 나도 웃통을 벗고 싶다. 이런 상황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자유롭게 나도 웃통을 벗고 싶다가도, 오히려 비키니를 입어야 하는 상황에선 내 가슴이 작은 게 또 신경 쓰여 커버업을 고민하는... 원치 않은 수치심과 검열과 감춤. 이 모든 모순의 키는 과잉성애화를 걷어 내는 데 있지 않을까. 이것으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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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친구는 우리가 죽기 전까지 아마 안 되지 않을까 했다. 방금 독일의 혼탕 문화 기원을 찾아보고 싶어서 구글에 검색을 했는데 한 커뮤니티의 '혼탕 가서 여대생 본 썰' 따위 글이 올라와 있다. 독다니엘이 혼탕 문화에 대해 설명한 유튜브 영상 댓글도 비슷하다. '우리(한국에)도 들여 주세요..' 같은. 그래. 이 글에도 누군가는, 누가 벗지 말래?, 또 누군가는 감사합니다..를 말하겠지. 내가 또 헛된 꿈을 꾸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