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세차장의 소음
우리 집에서 정면으로 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엔 셀프 세차장이 있다. 나도 한번 가봤는데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아 꽤 인기인 곳이다. 날이 맑은 주말이면 세차를 하려고 차들이 골목 따라 길게 줄까지 선다. 날 좋은 오후에 집을 깨끗이 하고 소파에 푹 담겨 있을 때 바깥 세차장에선 치지직하고 바람 호스 소리가 종종 들리곤 하는데 왠지 정겹고 차나 집이나 주말 맞이해 함께 깨끗해지고 있구나 기분이 좋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른해지면 아, 이게 주말이구나 싶다.
항상 그 소리가 좋으면 좋을 텐데. 문제는 밤이다. 이 셀프 세차장은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한다. 치지직하는 바람 소리는 듣기 나쁘지 않지만 어떤 자동차들의 배기음 소리는 듣기 힘들다. 날씨가 좋은 계절 창문을 활짝 열고 침대에 누웠다가 머리와 귀 안을 이상하게 울리는 불쾌한 소리에 이게 대체 뭔가 했더니 어떤 차의 배기음 소리였다. 어떤 차들은 그냥 데시벨이 높은 게 아니라 마치 전자음처럼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지, 그냥 시끄러운 게 아니라 뇌 안을 이상하게 울린다.
추측컨대 세차장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역시 이 소음이 힘든지 민원을 여러 번 넣은 듯했다. 얼마 전 세차장에서도 주변 주민들을 방해할 수 있으니 밤 10시 이후에 배기음이 큰 차들을 받지 않겠다는 큰 현수막을 붙였지만 의미 없다. 개념 없는 차주들은 일단 그냥 세차장으로 오는 거고 몇 블록의 골목길을 돌고 난 뒤에야 입구에서 출입이 금지된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내내 배기음 소리를 웅웅 울려댄다.
사실 이런 특이한 배기음의 차들이 많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한번 예민해지니 끝도 없이 예민해질 것 같다. 10시 넘어 들리는 일반적인 차량 소리도 듣기 싫고 듣기 좋던 바람 소리마저 민폐 끼치는 소리로 들린다. 이제는 9시 반 정도에 들리는 소리에도 ‘아 근데 생각해 보니 이 시간도 넘 늦는 거 아냐? 진짜 개념 없다..’ 싶어 진다. 이러니 10시가 넘어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짜증도 난다. ‘구청에 민원 넣을까’. 동거인에게 “아니, 생각해 보니 세차장을 24시간 한다는 거 자체가 문제 아냐?”라는 말도 한다.
진짜 민원을 넣을까 하다가 잠깐 흠칫한다. 그래, 먹고살자고 하는 자기 업인데,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너무 각박하게 구나 번뜩 생각이 든다. 세차하러 온 사람들이 그냥 10시라는 기준이라도 잘 지켜주면 좋을 텐데. 세차장은 10시 넘어서 배기음이 큰 차들의 세차장 출입만 막을 게 아니라, 아예 세차장으로 오지 않도록 해주면 좋을 텐데. 지혜로운 공존은 어떤 걸까. 나도 방해받지 않고, 세차장 주인도 자신의 업을 잘 이어가고, 차주들도 밀린 때를 벗겨 내는, 모두가 서로의 이익을 잘 지킬 수 있는 지혜로운 공존이 가능할까? 지혜로운 공존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