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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Dec 10. 2023

이 시대의 코미디

*코미디 로얄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

*모든 희극인들을 존경함.

*반박 시 니 말이 다 맞음.


나는 코미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로 안 웃기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일요일 저녁만 되면 꼭 티비 앞에 앉아 개그콘서트를 챙겨 봤다. 그 시절 개그콘서트는 일종의 유행어 사전집 같은 거였다. 모두가 보았고 개그콘서트에서 나오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개콘을 보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었다. 뭐랄까, 웃겨서라기보단 알아야 하기 위해 봤달까. 물론 그럼에도 간혹 웃긴 것들이 있었지만, 대체론 웃기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코미디 영화를 내 손으로 고른 적은 거의 없다. 몇 년 전 진행하던 팟캐스트에서 <내 인생 최고의 깔깔 코미디>를 꼽는 편에서 재밌는 코미디 영화를 고르느라 아주 고전하기도 했다. 사실 뭘 골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크게 웃을 땐 꼼꼼하게 짜인 코미디 극을 볼 때보단 리얼리티 예능에서 아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다. 요즘 나를 가장 터지게 만드는 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의 기안84다.


그런 내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온통 코미디언들의 콘텐츠로 뒤덮여 있다. 여러 우연들이 맞아떨어졌다. 마침 친구 건너의 친구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데 그의 언어와 유머 코드가 좋아 그가 나온 영상이나 그가 쓴 뉴스레터를 챙겨 보고 있던 참이었다. 한쪽에선 피식 대학교의 유튜브 세계 속 활약으로 공개 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여러 코미디언들이 각자 생존을 위해 뒤따라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하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때 메타 코미디 클럽이 떠오른다. 기존 공개 무대의 코미디에서 유튜브 세계로의 코미디 판도가 바뀌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코미디 레이블이 탄생했다. 이제 희극인은 방송국 소속이 아닌 레이블 소속으로 활동한다.


그 레이블엔 실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코미디언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과 예전 삼사 공특채 출신이던 여러 코미디언들이 함께 나와 메타 코미디 클럽 채널에서 무대를 펼친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한국에서 네임드 코미디언들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어떻게 보여줄까? 꼭 전형적인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니더라도, 새 시대의 새 코미디언이자 동시에 뛰어난 기획자들이기도 한 그들이 어떻게 과거의 무대를 지금의 것으로 꾸며낼까 기대 됐다.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에서 만나는 코미디언들이 더 이상 공개 무대 속 개그맨들이 아니라, 나와 같은 기획자나 크리에이터들처럼 느껴진다.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고 판을 짜고 구성을 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내보내는 기획자들. 특히나 피식 대학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나는 이들이 정말 대단한 기획자라 생각했고 그랬기에 메코클에 나오는 이들이 더욱 궁금했다. 코미디언들이 부캐로 열연하는 픽션 콘텐츠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유튜브 속 무대에 나와 펼치는 모습은 과거의 무대와 어떻게 다를까.


니쥬와 오도시. 과연 엄청난 기획자들이다.

적재적소에 터트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꺼이 몸을 굴린다.

그런데 보는 내내 전혀 웃기지 않았다. 왜일까.


주말 동안엔 넷플릭스에 올라온 <코미디 로얄>을 재생했다. 여기서 답을 찾았다.


대충 코미디 로얄의 한 에피소드에서 코미디 스타일을 두고 대선배 코미디언 이경규와 메코클 대표 정영준이 서로 대립한다. 메코클 팀의 코미디언들이 원숭이로 분장해 교미하는 성행위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자, 이경규는 말 그대로 엄청나게 화를 냈다. 코미디라는 건 공감대이고 전 연령 대상인만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해야 한다고, 이런 저질론 웃기진 말아야 한다고. 그러자 정영준 대표는 ‘모두를 위한 코미디는 아무도 보지 않는 코미디’라고 항변한다.


둘 다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화가 더욱 심화되는 대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모든 대중을 만족시키리란 불가능하단 점에서 정영준 대표의 말에 동의한다. 코미디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크리에이터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플랫폼과 그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세상에서 ‘대중 매체’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의미도 없다. 같은 크리에이터로서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메코클의 그 많은 코미디언들 중 대략 98% 정도는 하나의 페르소나만 타게팅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영준 대표가 말하는 이런 코미디를 좋아한다는 ‘MZ세대‘에 정작 MZ 세대인 내가 끼지 못해 유감이지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정영준 대표가 이르는 MZ는, 다소 거칠게 말하면 - 2030 남성, 여미새, 게이 조롱, 욕설을 좋아함, 폭력에 무딘 -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메코클에 소속된 코미디언들이 다수고 메코클 스탠드업에 나오는 코미디언도 다수지만 이들은 어쩐지 비슷비슷한 페르소나만 전제하는 듯하다. 이들은 쉬지 않고 서로를 때리고 예쁜 여성을 찾고 게이를 조롱하고 욕설을 내뱉는다.


나는 남성도 아니고 여미새도 남미새도 아니며 게이를 조롱하지 않으며 원색적인 욕설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전술한 이 모든 것이 없어도 충분히 사람을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메코클을 달마다 챙겨봐도 대부분 웃지 않았고 코미디 로얄의 모든 에피소드를 끝내는 동안에도 크게 웃은 적이 없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PC나치’들이 활개를 치기 때문이라고 처리하는 건 너무 간편하며 비겁하다. 어차피 PC나치들도 한 줌이다. 새로 시작한 개그콘서트가 그렇게 혹평받고, 코미디 로얄에서 메코클 팀이 결국 가장 먼저 탈락하게 돼 뿔뿔이 흩어진 건 단순히 우연이 아닐 거다. 고작 한 줌인 PC나치들 때문도 아니다. 방송국의 규제나 심의 때문도 아니라는 것 역시 넷플릭스에서 만든 코미디 로얄에서 역설적으로 증명 됐다.


코미디 로얄을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장면이 있다. 우스꽝스럽게 캐릭터로 분장해 서로를 웃기되 자신은 절대 웃으면 안 되는 것이 룰인 게임이 있었다. 고전하고 있던 이경규 팀을 위해 멘토인 이경규가 조커로 투입된다. 문이 열리고 분장한 그가 들어섰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저질이라고 비판하고 무려 그날 회식 자리에까지 가서 훈계를 놓았다던 그 원숭이 분장을 하고 들어섰다. 내가 처음으로 빵 터지면서 동시에 감탄했던 장면이다. 코미디는 이런 거구나. 이게 코미디언들이 그렇게 말하던 니쥬와 오도시구나. 롱런하는 사람은 이유가 있구나. 알고리즘과 거칠게 정리해 버린 이른바 MZ 구독자에 천착하지 않는 어떤 본질이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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