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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Aug 28. 2016

콜센터 전화상담원으로 일한다는 것

2020년 Ver 업데이트

2020. 03. 11 업데이트는 중간 쯤 있습니다.


엄청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쓰는 글이다.

사실 콜센터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페이스북에 올리려다 얼마 전 내 꿈에 대한 구구절절한 긴 이야기를 써서... 긴 글을 너무 자주 올리는 건 피해야겠단 생각에 콜센터 아르바이트 후기는 여기에 써보려 한다.


근무 기간 : 15년 9월 13일 ~ 16년 8월 21일

근무 일수 : 90일 (일 8시간 40분)

총 콜 수 : 7,912 (전체 상담원 평균 6,650) 

순 통화시간 : 344시간 21분


# 1년 간의 영어 과외, 일일 출장 뷔페 2번 빼면, 처음 한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였다.

원래는 플로렌스 파티하우스라는 곳에서 시급 6,700원인 서빙 알바를 하려고 했는데 지원서를 넣으려는 순간 이 콜센터 아르바이트 공고가 올라왔다. 시급 8,510원 + 식대 5,500원... 안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2016년엔 인상해서 9,110원이 됐으니 1달 8번 일하면 근 65만 원 이상 벌 수 있었다. 최저임금을 감안하면 (2015년 5,580원, 2016년 6,030원) 굉장히 높은 시급이다. 물론 주휴수당, 휴일근무수당 등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 모두 포함돼있었다. (이걸 하나하나 따져보려다 어차피 다른 아르바이트가 주휴수당 등을 제대로 챙겨주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했다.)


아무튼, A/S센터라 고장접수가 95% 이상이며, 10~20%는 항의 고객이었다.

멘탈이 약한 내가 10개월간 하드 트레이닝을 할 수 있었다.


# 안 좋은 얘기 먼저..


좌식 근무 → 허리 통증

컴퓨터 작업 → 눈, 오른쪽 손목이 피로함

헤드셋 통화 → 왼쪽 귀 아프고 가끔 환청 들림....;; (노이로제..)

전화 많은 날엔 목이 쉬어버림

주말이 없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역시 고객응대이다. 

내가 일했던 회사가 보일러로 아주아주 유명한 ○○○라는 기업인데, 대표적인 게 보일러여서 그렇지 사실은 온수기, 가스레인지, 오븐, 정수기, 비데, 비움, 에어컨, 가스건조기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다 다루며, 식기세척기, 튀김기, 정제기, 밥솥, 국솥 등 업소용 제품들도 많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특정 연령대, 직군으로 고객이 구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학교 학생부터 90대 어르신까지 전화를 하시고, 집에서 사용하는 거뿐만 아니라 가게에서 사용하는 제품까지 다룬다. 그만큼 상대하는 고객이 어떻다고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다.


약 10~11개월 간 근 8,000명과 상담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바로....

"나이와 인성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젊은 사람부터 어르신까지, 관계없이 다 마찬가지다.


대표적 유형 3가지

1. 비인격적 대우 (욕설, 폭언, 인신공격.. 별의별 소리 다 들어봄)

2. 자기 말만 함, 같은 말 반복함 (상담 진행이 안됨)

3. 심지어 접수순서 무시. 본인 먼저 방문해달라 '떼씀'


전화상담원과 A/S 기사는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간단히 말하면 고객을 돕기 위해서 있는 존재다. 제품이 고장 나서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거에 대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래도 직원으로서 죄송한 마음을 표하고 최대한 빨리 도와드리려 노력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객들은 그걸 잊는 것 같다. 불편에 대해서 토로하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제품이 고장 났으니 나는 너에게 욕을 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상담원과 기사를 홀대하고 노예 부리듯이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노예라 칭한 이유는, 그런 고객들이 기사 근무시간, 먼저 접수된 스케줄에 관계없이 자기들이 부르면 곧바로 와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고객의 입장에서, 고장 났을 때 새벽이든 언제든 바로바로 찾아가고 지방의 촌, 면 단위와 같이 A/S가는 요일이 정해져 있는 곳에도 매일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일 일도 줄어들고 서비스 만족도도 높아질 테니깐. 하지만 회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게 된다면 너무 과다하게 인력을 운용하는 것이다. 기사 혼자서 근무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조금 더 빨리 처리하기 위해 인건비를 2배로 지출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접점 때문에 결국 고객과 상담원, A/S기사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은 하는데..... 그 갈등 과정에서 고객들이 서비스 종사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이 도대체 언제부터 존재했고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저 말이 회사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텐데 고객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었고.. 콜센터 아르바이트의 일이 곧 고객상담이지만.. 이 부분이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2020. 03. 11 업데이트


2019년 10월~12월에 스윽배송으로 핫한 '그 마트' 콜센터, 배달어플로 유명한 '그 민족' 콜센터에서도 업무를 했었다. 2016년에 비해 최저시급이 2,000원 가량 올라 주휴수당 포함하면 주말기준 10,560원을 받고 일했다. 2016년보다 훨씬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때는 식대도 받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립읍니다...)


강도는 어땠을까? 1년 짬이 있으니 많이 편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2016년보다 그 마트에서 더 힘들었고, 그 마트보다 그 민족에서 일했을 땐 훨씬 힘들었다.

전산이 더 복잡했던 건 둘째치고 근본적인 원인은 고객들의 심리상태였다.


난방기구가 고장나면 옷을 더 입든 이불을 덮든 난로를 키면 된다.

주문한 식재료가 안 오면 있는 거로 요리해먹든 외식을 하든 할수 있다. (의식'주'와 관련돼 민원 강도 상승)

근데 배달한 음식이 늦게 오거나 안오거나 잘못오면 대참사가 발생한다. 당장 배가 고프니까. (강도 급상승)

업체 사장님도 콜센터의 고객이었는데 매출이 걸려있는 문제니까 또 엄청 예민하다. (강도 최고......)


상담원이 전화를 받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간이 짧아야 할수록 강도는 강력해진다.

(그 결과 난생처음으로 그 민족에선 계약기간 못 채우고 3주만에 빤스런................)


우리 감정노동자 분들께서 수많은 콜센터 중 어디서 일할 것인지 골라야 한다면, 이 부분을 명심하셨으면 좋겠다. 편한 곳이 오히려 시급을 더 줄 수도 있다.


이 얘기를 꼭 쓰고 싶어서 4년 만에 글을 수정해본다.

감정노동자, 화이팅.



그럼에도 계속 일한 이유는 배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높은 시급은 논외 ^^)


# Steve Jobs는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Connecting the dots라는 얘기를 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삶의 점을 찍을 순 없으며, 찍다 보면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일들이 연결돼 지금의 나를 만든다."라는 이야기인데, 이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깊이 느낀 것이다. (막상 말로 표현하려 하니 어렵다.)

처음엔 어떤 그림일지 모르지만, 점을 순서대로 연결하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스티브 잡스의 그림)


●-● 첫 번째 Connecting the dots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공군에서 작전과에서 CQ로 복무했는데 주 업무는 파일럿 보조, 비행 스케줄 관리였다. 타 부서와 협조할 일이 많아 CQ=전화받기라 해도 될 정도였다. 동기들을 보면, 행정병은 엑셀, 한글 등 문서작업 능력을 배웠고 항공기 정비병은 정비 기술을 배웠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무튼 전화하는 스킬을 배웠다. '진짜 이걸 어디다 써먹지? 괜히 CQ 했나'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이래저래 얻은 게 많은 군생활이었지만 아무래도 업무적인 부분에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뭔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잠깐 언급했듯, 작년 9월 플로렌스 파티하우스 서빙 알바에 지원하려고 준비하던 차에 ○○○콜센터 구인공고를 봤다. 콜센터라는 곳이 악명 높은 건 알았지만 시급이 거의 2,000원 가까이 차이 나서 여기서 한번 써먹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웬걸... 2년 동안 쌓은 전화 내공이 헛되지 않았다. 적응도 빨리할 수 있었고 실적도 금방 높였다. 배운 게 없었다고 생각했던 군생활 경험을 잘 살린 알바를 구했다.


여기서 안 좋은 소리 들으면서 쌓은 고객상담 능력이 내 앞으로의 삶에 또 큰 도움이 되겠지.


●-●-● 두 번째 Connecting the dots


강력한 고객들에게 욕먹고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한테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같은 말이라도 더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더 잘 들으려고 하고.. 그러니까 인간관계가 조금은 좋아진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말 상상도 못 한 연결이었는데, 

영어 선생님의 자질을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 위와 같은 맥락. 학생들을 더 소중히, 따뜻한 마음으로 대한다.

2. 기술적인 부분을 오직 전화로만 설명해야 하니 고객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정확하게 안내를 해야 한다. 간단히 '전달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상담하면서 갈고닦은 전달력이 당연히 영어를 가르칠 때 도움이 됐다.

3. 목소리. 고객과 통화한 녹취를 자주 듣다 보니, 어떤 톤으로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듣기 좋은지 자동으로 모니터링이 됐고 목이 안 쉬게끔 관리하는 방법도 체득했다.

4. 간혹 수업하다 보면 압박감을 느낀다. 학생분들 중에서 호의적이지 않을 때.. 마치 내가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평가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그러면 생각한다. '그래도 욕하면서 항의하던 고객들보다는 안 무서울 거야.' 그러면 용기를 갖고 내 페이스대로 해나갈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멘탈 강화.


돈 벌자고 시작했던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내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줄 거라 상상도 못했다.



아직 일을 그만둔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 어떤 점들을 연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2번의 Connecting the dots가 끝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연결돼서 내 인생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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