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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Sep 03. 2024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러,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와세다 대학교 캠퍼스를 걷다 보면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와세다 대학교 국제문학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으로도 불립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의 졸업생입니다. 그는 여러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대학 생활의 추억에 대해 회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의 오디오 룸에서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 중인 무라카미 하루키


제게 대학의 쓸모에 대해 많이 묻는데, 솔직히 대학에서 배운 것은 많이 없습니다. 우선 대학에 잘 오지 않았어요. 당시엔 파업과 시위 때문에 수업도 잘 열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대학 시절의 추억 또한 별로 없습니다.

추억이랄 것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대학 시절은 지금의 그를 만든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 와타나베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대학 생활 동안 공부보단 음악과 소설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다, 좋아하는 재즈 카페를 차렸고, 동기와 결혼해 수십 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하루키는 이 모든 일을 학생 때 했고,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오전에는 졸업 논문을 쓰고, 오후에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대학생 하루키. 상상이 가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택은 예전부터 방대한 책과 음반 컬랙션의 보관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도쿄의 집이 작고 불편해 보다 여유로운 가나가와 현으로 이사를 간 그였지만, 40년 가까이 쌓인 컬랙션을 보관하기에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자녀가 없는 하루키에겐 자신의 죽음도 염두에 두어야 했습니다. 자신 사후에 자료들을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세상을 떠나기 전 컬렉션을 옮기는 편이 낫겠다 판단한 것이죠. 


자료 기증으로 내 작품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국제적 문화교류의 한 계기가 되면 좋겠다. 

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당연히 전 세계 다양한 장소가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장고 끝에 그는 와세다 대학교에 그가 평생 모은 자료를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그가 학창 시절에 자주 다녔던 연극 도서관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 말이죠.


1950년대 지어진 와세다 대학 4호관은 하루키가 "끔찍한 공간"이라 말할 정도로 도서관으로 사용되기엔 부적절했습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도움이 필요했죠.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견을 수렴해 가며 리모델링했습니다. 리모델링에 필요한 예산 120억 원은 와세다 동문이자 유니클로의 회장인 야나이 다다시가 지원했죠. 건축과정의 주요 부분들은 이 세 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했다고 합니다.  


짓고 보니 공적인 공간이 아닌, 너무 저희의 개인적인 공간처럼 보여서 미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새로 지어진 건물에는 세 사람의 취향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건물을 살펴봅시다.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건물은 건물 밖과 안에 두 터널이 존재합니다. 구마 겐고의 건축에서 터널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를 위해선 구마 겐고가 사랑하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건축관을 알아야 합니다. 하이데거는 “건축은 탑이 아니라 다리다.”라고 말했습니다. 탑은 고독하게 존재하지만 다리는 두 장소를 연결해 주고, 이것이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영감을 받은 구마 겐고는 자신의 건축의 특징을 터널로 설명합니다. 터널은 다리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합니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우리의 사회와 다른 사회가 터널을 통해 연결됩니다. 이러한 구마 겐고의 건축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하루키는 여러 작품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서로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터널 개념을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Q84가 대표적인 사례이죠.


구마 겐고는 말합니다.


현실과 가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작품에서 공존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펴면 일상에서 비일상의 세계로 이동하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일상은 여러 제약이 있지만, 그의 소설은 이러한 일상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죠. 이 도서관 또한 비슷한 느낌을 주었으면 합니다.

이는 어떻게 적용됐을까요? 우선 도서관 외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외부엔 철로 된 구조물이 보입니다. 터널 같기도, 언뜻 보면 파도 같기도 합니다. 해석은 다양합니다. 파도인지, 터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상에 초대받았다는 메시지죠. 구마 겐고는 이를 건축적 공간으로 표현했습니다.


구조물을 통과해 도서관의 지하 1층으로 왔다면,  지하 1층과 1층을 잇는 나무 계단을 볼 차례입니다. 구마 겐고는 분리됐던 1층과 2층의 경계를 수직으로 절단합니다. 분리되었던 차원 간의 경계를 없앤 것이죠. 그리고 그 공간에 나무 계단이 있는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지하 1층과 1층을 수직으로 절단한 나무 터널.

이는 현실과 가상을 잇는 터널을 상징합니다. 터널은 책꽂이와 같은 역할을 해, 작가의 서재에 있던 책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삶과 죽음' 등 작가가 세심하게 설정한 테마에 맞춰 다양한 문학 작품을 하루키가 바라본 방식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 등 하루키가 애정을 보인 작가들의 책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루키가 바로 여기에 놓인 책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사진과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구마 겐고의 도서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구마 겐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개념, '조용히 해야 하는 장소' 개념을 깼습니다. 누구나 커피를 마시며 문학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활기찬 장소를 구상했습니다. 따뜻하고 활기찬 장소에서 대화는 농익습니다. 이런 장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건축 재료를 사용해야 할까요?


하루키 도서관의 주된 건축 재료는 나무입니다. 이는 동시에 구마 겐고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건축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구마 겐고는 20세기의 건축을 단단하고 차가운 재료인 콘크리트가 지배한 시기라 말합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기존의 건물들은 파괴되거나,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건축가들은 대량의 건축 수요에 부응하려 애썼습니다. 넓은 면적의 건물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고, 튼튼해 지속성까지 가진 콘크리트 건축은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20세기 건축을 상징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대표적인 예이죠.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내내 계속됐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게 영감을 받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건축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구마 겐고는 이들과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조금 약할지라도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나무를 선택했습니다. 나무는 콘크리트에 비하면 약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구마 겐고는 이것이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이라 말합니다. 


도치기 현에 있는 구마 겐고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히로시게 미술관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미요시 주택


두 장의 사진 중 첫 번째 사진은 도치기 현에 있는 구마 겐고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히로시게 미술관 건물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미요시 주택입니다. 


두 건축물의 차이가 보이시나요?


구마 겐고는 말합니다.


도서관 안을 목재로 만들어 우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꿈을 키울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오디오 룸. 하루키의 음악 컬랙션에 담긴 음악을 재생한다. 

도서관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 자랄 수 있도록, 1층의 오디오 룸은 하루키의 음악 컬랙션에 담긴 음악을 재생합니다. 그가 창작을 하며 영감을 받은 음악들입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CD와 LP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숫자는 몇이고, 어떤 앨범이 있을까요.


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숫자는 총 만여 점 정도지만 앨범의 이름이나 정확한 숫자는 비공개가 원칙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나올 거야." 하는 편견 없이 들으러 왔으면 하는 하루키 씨의 부탁이었다고요. 매일 다른 음악을 재생하고 있으니 언제 오더라도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건축을 살펴보았으니, 카페를 둘러볼 차례입니다. 카페의 이름인 <오렌지 캣>은 하루키가 직접 지어준 이름입니다. 자신이 운영한 재즈바 <피터 캣>과 이름이 비슷한데요, 이는 <피터 캣>을 운영할 당시 하루키가 키우던 고양이 '피터'의 종이 오렌지 캣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카페 바깥쪽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카페 피터 캣에서 직접 사용했던 피아노가 있습니다. 안쪽에는 하루키 자택에서 가져온 원목으로 된 6인용 식탁과, 하루키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방이 있습니다. 방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하루키가 자택에서 직접 쓰던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카페 <오렌지 캣> 은 개관 초기부터 지금까지 와세다 대학 학생 네 명이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키의 바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와세다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매뉴얼화된 프랜차이즈가 아닌, 학생들이 카페를 운영하며 젊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재즈 바 <피터 캣>을 혼자 운영했던 그가 어느 날 소설 쓰기를 결심했던 것처럼 말이죠.  


전 솔직히 이들의 실력에 대해선 조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솜씨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원두를 가지고 커피를 어떻게 내리는지 물었습니다. 긴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분쇄도를 체크하고, 원두 22g을 분쇄해 95도에서 3분 간 일정하게 160ml를 붓는 게 관건입니다. "한 번에 물을 많이 부으면 감칠맛이 아닌, 쓴 맛이 늘어나요.",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컵에 커피를 담으면 산미만 올라와요. 그러니 미리 컵에 뜨거운 물을 넣어 덥혀 놓아야 해요."  


이런 세심함과 꼼꼼함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 문득 <오렌지 캣>에 원두를 공급하는 곳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디테일함은 원두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이는 원두 공급처와의 긴밀한 소통이 없으면 놓치기 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 계속)


여러분 안녕하세요. 글은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전 현재 무료 뉴스 레터 서비스인 <도쿄 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뉴스레터의 일부를 옮겨 브런치에 함께 연재하려 합니다. 도쿄에서 보고 겪은 것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해 전달합니다. 콘텐츠가 마음에 드셨다면 뉴스레터의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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