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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Oct 27. 2020

결혼기념일에 오간 대화들

퇴근하고 저녁 6시 이후에는 온전히 내 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밤 10시 30분이 넘은 지금, 4살 아들은 루피 인형을 품에 안고, 거실을 돌아다니며 뽀로로 인형을 찾는다.


“엄마아아아아, 뽀로로 인형 어딨쎠? 어딨냐구우-“


책 한 권 읽으면 벌떡 일어나 “아, 맞다!”하면서 변신 로봇을 찾으러 가고, 또 한 권 읽으면 “아, 쉬 마려워”한다. 또 한 권 읽으면 목이 말라 물을 마셔야 하고. 소소한 소일거리를 마친 후에는 “졸려, 재워줘, 자장가 불러줘” 한다.


오늘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 거 같길래

보던 동화책을 내려놓고 거실을 배회하는 서진이가 돌아올 때까지 이불로 휴대전화를 가리고,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문장을 써 내려가는데 갑자기 나타나 이불을 들춘다. “엄마아, 뭐해? 동화책 읽어줘어~”


지난 주말, 근무를 해야 해 아이들을 친정에 맡겼다. 초저녁 집에 돌아와 밥을 다 먹고 시계를 봤는데 아직 저녁 7:30이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원래 이 시간 이후는 온전히 내 시간이었는데...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진짜 이 시간은 자유시간이고 쉴 수 있는 시간이었지. 이 시간을 다시 확보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


아이를 낳기 전과 더 이전으로 돌아가 결혼하기 전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무얼 했나 생각했다. 명동이 직장 인터라 느린 걸음으로 쇼핑몰을 배회하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으며, 미드 4-5편을 침대에 누워 내리 봤던 기억들이다. 물론 영화나 책을 보는 시간도 있었다. 때론 이 시간들을 ‘자아 돌봄’이라

생각했다. 소비를 하며 내가 나로 충분히 빛난다고 착각했을까? 새 물건을 감싸 안은 투명 비닐에 중독된 것 마냥 뭐가 들어간 새 물건에 집착했으며, 뜯으면 헌 물건이 되는 순간은 마법처럼 마음이 허해졌다.


오늘은 7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엊그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두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으며, 아빠가 엄마를 만날 때 무척 떨려했다는 둥 결혼할 때만 해도 아빠가 엄마를 만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을 설명해줬다.


“근데 이제 막 싸우기도 하고”


밥 한술이 들어가며 7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익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래, 그렇게 결혼했는데 7년 동안 많이도 싸웠지.


7살 아이 눈에 비친 부부, 부모의 삶이란 것이

때때로 탄 고구마 같아서 겉은 새까맣지만 속은 부드러울 때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 느낌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있다는 걸 다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어제 저녁,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동생이 아이들을 봐줬다. 둘이서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지성이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인데 왜 둘이서만 가?”

“엄마랑 아빠 둘이서 결혼했으니까”

“둘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으면 아기도 데려가야지!”

“지성이가 아기야?”

“내가 아기로 태어난 거지!”


세상 돌아가는 일의 순서와 어떤 일을 행할 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해, 어떤 행사에서 누구를 포함시키고  제외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성원에 대한 이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이로 훌쩍 큰 느낌이었다.


행동과 태도로 삶을 이루는 전체적인 틀이 활발하게 구성되고 있는 또 다른 생명의 성장을 바라보며 마음이 흐뭇해졌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끔 가슴속에 쌀뜨물이 왈칵 스미는 일이다. 그러나 잘 씻어 지은 밥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 올리듯 그 어떤 일보다 생산적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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