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하면서 아이를 볼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하여
둘째의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을 때, 회사에서도 재택근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휴대전화로 찍어 보내온 서류는 '긴급 보육 이용 사유서'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에 따른 서울시의 안내문과 함께 맞벌이 가정은 재택근무, 휴가 등을 이용해 긴급 보육을 최소화로 이용해 달라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긴급 보육을 최소화해달라는 요청. 직장인 부모는 재택근무와 휴가를 이용해 달라는 요청. 다시 읽고 또 읽었다.
며칠 후, 회사의 부서 단톡 방에는 재택근무 신청서가 올라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사내 감염의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재택근무를 시범적으로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부서 전체 인원의 1/3명이 참여할 수 있었다. 재택근무 형태와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쭉 읽어 내려갔는데, 어느 한 문장에서 눈이 멈췄다. "재택 중 연장 야간근무는 불가하며, 8:30 이후 출근 18:15 이전 퇴근 꼭 지켜야 함."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신청서와 회사의 공문을 한데 모아놓고 다시 읽었다.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감염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어린이집은 가정보육을 강력히 권고했고, 회사도 일정 비율의 직원은 재택근무를 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뭐랄까. 마치 지금 호우주의보가 발동했으니 아이를 품에 안고 우산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된 느낌이랄까. 코로나와 가정보육, 재택근무의 교집합이 준 첫 느낌은 안정감이었다. 그러나 안정감은 잠시도 머물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를 품에 안고 우산을 쓴 채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는 노릇, 뛰거나 걸어야 한다. 단순히 '재택'이 아닌 '재택근무'다.
지난주, 초밥집에 식사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타 부서 선배를 만나 합석을 하게 됐다. 선배가 물었다.
"지혜씨, 재택근무를 하면서 애를 볼 수 있어? 어차피 불가능한 거 아니야? 지난번 부서장 회의 때 박 피디가 보직간부도 재택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던데, 그게 가능해?"
초밥을 입에 가득 넣고, 장국을 마셨는데 밥알이 입안에서 엉켜 돌아다녔다. 바로 전날이었을까. 부서 회의에서 재택근무자를 누가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을 잠시 나눴더랬는데, (지금 우리 부서에는 여자 직원이 나 혼자다. 여자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코로나로 초등학생 아이의 공백을 메꿀 수가 없어 육아휴직을 냈다.) 한 남자 선배가 선심 쓰듯 말했다.
"그럼 재택근무는 엄마들이 쓰면 되겠네요."
이 말을 한 선배도 남자였고, 이 말을 받아친 두 명의 선배들도 남자였다.
"재택근무를 무슨 선심 쓰듯 하는 게 어딨습니까?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있는 여성은 재택근무를 우선적으로 하게 해줘야 한다, 아니다' 이런 추측이 난무한 말들이 오갔다.
말들이 탁구공처럼 오가는 사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애를 볼 수 있는지 생각했다. 연령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7살, 4살 남자아이들을 키우는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물론 가능한 방법이 있다. 낮에는 아이들 가정보육을 하고, 아이들이 잠든 밤부터 새벽까지 자체적으로 야간근무를 하는 방법이다. 4살 아이는, 아직도 내가 놀아주지 않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엄마의 행동을 '딴짓'으로 규정한다. 내가 만약 아이 옆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면 아이에게 그 일은 '딴짓 중의 최고의 딴짓'이 될 게 뻔했다.
결국, 어린이집 긴급 보육 신청서에 아이 이름 석자를 적어 냈다. 월화수목금에 모두 동그라미를 그리고, 사유란에 '직장에서의 재택근무와 돌봄 휴가 사용 불가'라고 적었다. '재택근무와 가정보육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아이를 안고 우산을 쓴 채 뛸 수 없어서)'라곤 적지 못했다. 엄마로서 자격 미달인인 것 같고, 사유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낮에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잠든 밤부터 야간근무를 할 체력은 없었다. 적어도 과로로 죽고 싶진 않기에 커피를 들이키며 야간근무를 하고 싶진 않다.
첫 재택근무 날, 퇴근이 늦는 남편이 아이들을 등원시키는데 출근 준비를 하지 않는 엄마를 본 아이들이 내 품에서 떠나질 않는다. 둘째는 항상, 내가 출근할 때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엄마, 스피드로 뛰어와"라고 말한다. 결국,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을 긴급 보육을 보낸 날, 둘째는 엄마 회사에 따라가고 싶다며 서럽게 울면서 헤어졌다.
재택은 역시나 낯설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 여겼다. 15년 직장 생활을 하며, 15년 동안 근무를 시작하기 전 지하철을 타고, 회사 건물까지 보행을 하며,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일을 시작했던 15년 동안의 습관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재택근무는 돌덩이처럼 내 몸에 달라붙은 습관들과의 결별을 요구했다.
아이들도 그랬을까. 엄마와 기분 좋게 무 자르듯 하는 깔끔한 작별인사가 어린이집으로 씩씩하게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을까. 엄마의 바뀐 생활패턴으로 혼란스러웠을까. 이튿날은 아이들에게 재택근무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침에 출근하는 척 먼저 나갔다가, 아이들이 등원하면 다시 집에 들어오는 코스를 준비했다. 평상시 출근하는 시간에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큰 아이 지성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왜 회사에 잠옷 바지를 입고 가?"
화장도 하지 않고, 잠옷 바지 차림으로 나가는 엄마가 이상했을까. 바지만 갈아입고, 다시 작별인사를 시도했다. "어린이집이랑 유치원 잘 다녀와!"
아이들이 나갈 때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을 했다. 아이들이 시끌벅적거리며 아빠와 등원하는 소리가 계단에 울렸고, 다시 집에 들어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코로나와 가정보육, 재택근무는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일이겠지만 영유아를 키우는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래서 코로나와 가정보육, 재택근무라는 조합에 가정보육을 '긴급 보육'으로 바꿔 놓는다. 언젠가 신생아와의 첫 만남을,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외국 땅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읽을 줄 모르는 지도를 들고 있는 일 같다고 쓴 적이 있었는데, 오늘 유독 그 날의 비 냄새가 코 끝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