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호기심이 자랄 때
2020년 3월부터 쓰려고 한 이 글을 이제야 올려본다(호호)
과학 전집을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19년 10월 즈음이다. 사실 바당이의 궁금증은, 그리고 질문들은 36개월을 막 지나던 시점부터 이미 달라지기 시작했었다. 그 전에는 밤 산책길에 달을 유심히 보면서 "엄마, 달님이 우리랑 계속 같이 가나봐!", "달님이 우리 쫓아와요!"라고 말하기에 "그러게, 우리 무서울까봐 달님이 지켜주나봐", "우리가 어디로 가나 궁금해서 자꾸 따라오나봐!"라고 대답해주면 "달님아 고마어!!"하며 손을 흔들고 "달님 못 쫓아오게 우리가 빤니 달려가자아!!!"라며 해맑게 웃으며 뛰온 했었는데. 이 즈음에는 그렇게 답하면 “뭐야, 달님이 무슨 다리가 있어?!"라며 아주 미심쩍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 정말 무차별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왜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시는 거에요?"
"물은 어디에서 나요?"
"왜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님이 와요?"
"바다에는 왜 파도가 쳐요?"
"나무는 왜 초록색이에요?"
"자석은 왜 양쪽이 달라요?"
"시간이 뭐에요?"
"산은 누가 만들어놓는 거에요?"
"빨대는 물을 어떻게 슉 빨아들여요?"
이런 대답들에 대한 대응은 우선 남편이 맡았다. 남편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정확한 지식을 알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남편은 원래 누구한테 뭘 설명하는 걸 잘하는 편이다. (나는 상대방이 완전히 모르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이 좀 어렵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그 때 그 때 답해주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런 걸 궁금해하는 시기이니 관련된 지식을 알려주면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도움이 되지 않으려나 싶기도 했다. 바당이에게는 이제 은유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가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아이 수준에 맞는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과학전집을 사는 게 어떨까? 고민하게 됐다. 검색해보니 4살 5살에 첫 과학 전집(자연관찰 제외)을 많이 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그닥 적극적으로 알아보진 않았는데 음, 아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전집은 우리집에서는 언제나 좀 숙제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왜 전집이었냐면, 정말 꽤 많은 그림책을 읽어왔지만 과학을 다룬 책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그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림책에 접근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여튼 그러다보니 아, 이건 아무래도 단행본 보다는 전집이 낫겠구나 싶었다.
전집 얘길 잠깐 하자면. 사실 전집에 대해서 나는 좀 회의적인 편이다. 영역이 나눠져 있는 점(그 중에 인성동화가 제일 이상하다...인성 몰까...?), 그리고 마치 이 월령에 이런이런 영역 중 몇 질은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마케팅, 그런 것들에 사실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책을 도구화한다는 인상도 강하다. 많은 경우 전집은, 어떤 때는 창작전집들도, 형식적으로만 그림책일 뿐 기본적으로 실용서로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어린이들에게도 실용서가 필요하지만 그게 꼭 이렇게 대량의 형식이어야 할까? 의문이 좀 있었다. 아이와 책 읽는 데에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지만 나는 아이가 이야기에 익숙해지기를, 읽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사실 내가 읽는 사람이라서일 뿐, 책으로 뭘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은 거의 없는 편이라 지금 이 책을 읽으면 문해력이, 창의력이, 사고력이, 오감이, 기타등등이 어떻게 된다는 얘기는 사실 좀 황당무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비자로서는 그렇게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들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한 몫 했다. 애들 물건이라는 게 워낙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볼륨의 물건을 한꺼번에 사는 건 여전히 마뜩잖았다.
하지만 과학책은 위에서 얘기한대로 내가 단행본 그림책을 고를 때 딱히 어떤 '주제'나 '영역', 그리고 '연령'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책을 찾아야 할 지가 막막했다. 그러다보니 일단은 과학전집들을 추천받고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리스팅을 하고보니 크게는 백과류인지 스토리텔링류인지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누고 괜찮아보이는 후보를 몇 개 추려서 중고서점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블로그나 카페에서 후기들을 찾아봤다. 문제는 이 때까지 바당이가 백과류에도 스토리텔링류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전집참패의 기억(2세 생일선물로 받았던 자연관찰을 코로나 기간 동안에 당근으로 팔았는데 그 때까지 정말 10권이나 읽었나 모르겠다)이 떠올라 점점 신중해지고 그러다보니 사실 점점 더 사는 게 망설여졌다.
하지만 아이의 호기심은 계속 자라고 또 확장되는 중이라 계속 미룰수만은 없어서 일단 단권들을 찾아보기오 했다. 물려받은 책 중에 동물들의 꼬리를 설명한 [꼬리가 하는 일]이라는 책을 바당이가 잘 보기에 이 책에서부터 시작했다. 보아하니 시리즈인 것 같아 검색을 했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들이 나름 주제를 가지고 묶어서 기획한 과학 시리즈 책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본문인데 과학(대)전집을 안 사고 대신 어떤 것들을 사봤는지 그런 이야기이다.
1. 제일 먼저 한 것은 단행본 출판사들이 기획하는 과학 시리즈 책들을 찾아본 것이다.
[꼬리가 하는 일]을 검색했더니 어떤 시리즈에 속해있는지도 함께 표시된다.
알라딘은 책 세부 카테고리를 보여주는 왼쪽 하단에 '시리즈' 영역이 따로 있다. 여기에서 '과학'으로 검색하면 몇 가지 시리즈들을 볼 수 있다. 위의 화면은 [꼬리가 하는 일]이 속해있는 한림 출판사의 '과학은 내친구' 시리즈. 총 34권이다.
단행본을 내는 출판사들이 소전집처럼 묶음 판매도 하는 책들을 찾아보기에는 알라딘 웹 사이트가 제일 직관적이다. 이 루트를 파악하고 나서 몇 가지 그림책들을 비슷한 경로로 더 찾아볼 수 있었다. 이수지 작가가 그린 [그림자가 하는 일]도 이전에 봤던 책이었는데 사실 이수지 작가 [그림자 놀이]를 바당이가 워낙 좋아했어서 비슷한 책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찾았던 책이었다. 이수지 작가 그림에 담긴 특유의 경쾌함이 좋아 챙겨놨던 책이었고 '과학 그림책'이라는 시리즈로 묶여있었는지는 몰랐다가 이 때 검색해보면서 알았다. 길벗 어린이에서 나온 과학책 세트는 우리 몸, 물, 씨앗, 흙, 중력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들로 구겅되어 있다. 위의 한림 시리즈에 일본 작가의 책이 다수 포함되어있고 편집이나 등등이 좀 올드한 책들이 있었던 반면 길벗 시리즈는 모두 한국 작가의 책이고 가장 나중에 나온 책들은 201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그림이나 이야기, 편집 등등이 좀 더 트렌디한 느낌이다.
2. 백과사전이나 도감들도 몇 권 들였다.
유아용 과학사전, 도감들을 좀 찾아봤다. 유아 눈높이에 맞는 단어들로 지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마음에 쏙 드는 사전은 아직이다.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 과학적 추상개념은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쉽게 풀어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서. 어쨌든 이 영역은 계속 신간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그래도, 나는 너무 올드한 데다가 몇 가지 설명들은 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는 남편의 코멘트가 있었던 책이긴 하지만 '진짜 진짜 재밌는 ooo 그림책' 시리즈도 샀고 어스본 플립북도 주제 봐가면서 몇 권 더 추가했다. 세밀화 도감 중에 바당이는 아래 책을 가장 좋아했다. 바다생물 말고도 주제가 아주 다양해서 모으는 재미가 있을 듯.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23392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아직 바당이에겐 좀 이르고 초등 저학년-고학년들이 잘 활용할 것 같긴 하지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4405052
요즘엔 이 책도 궁금하다. 바당이는 곤충에 큰 관심이 없어서 아직은 지켜보는 중. 물론 곤충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좋은 평들을 많이 봐서 책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093405
3. 대전집(?)을 안 샀을 뿐 소전집들은 샀다.
자연관찰이 정말 망했고 내가 전집을 들이는 것에 비협조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집에 전집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물건 볼륨에 대한 부담으로 나는 주로 소전집들을 살펴보곤 했는데 추피도 대히트였고 바바파파 클래식도 그랬다. 그리고 코로나 기간 동안에 그 흐름을 타서 바바파파 사이언스도 샀는데 이것도 바당이가 아주 좋아했다. 다만 '사이언스'라는 부제에는 한참 못 미치게 과학적 이야기들을 너무 두루뭉술하게 풀어내서 과학 소전집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고. 그러다가 바바파파와 그림체가 비슷한 소전집을 하나 발견하게 됐다. 전권 13권의 물 아저씨 시리즈.
근데 의외로 이 책이 우리집에서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 이것도 아마 코로나 가정보육 당시 충동구매랬던 것 같은데 바당이가 읽자마자 아주 마음에 들어해서 또 한동안 이 책만 읽었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꾸준히 잘 보고있고 여기에서 읽은 내용들을 현실에서 잘 연결시키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스토리텔링형인데 가장 큰 매력은 물, 공기, 해, 불 등 기본적인 자연환경을 의인화했다는 것이다. 종종 여기에서 오는 단점도 있긴 한데(여기저기 흘러다니다보면 물 아저씨가 반으로 나눠진다고? 으아악! <- 이런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바당이 정도의 이해력을 가진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물, 공기, 바람, 해, 파도 이런 과학적 현상들을 연속적인 이야기 안에서 이해하기에 꽤 괜찮은 구조다.
그리고 이 책이 좋은 건 맨 뒤에 이렇게 책 내용과 연관시켜 해볼 수 있는 실험들이 나와있다는 것이다. 괜찮은 것도 있고 별로인 것도 있고 하기 쉬운 것도 있고 애랑 집에서 하긴 힘들겠다 싶은 것들도 있긴 하지만 비교적 간단하게 시간 보내기 좋은 것들이라 가정 보육할 때 한 두개씩 해보기가 괜찮았다.
내가 이 책에 못마땅한 점은 사실 따로 있는데 물도 지구도 해도 불도 나무도 다 아저씨라는 것이다! 공기 아줌마만 아줌마야!!!!! Mother Earth 모르냐 이놈들아!!!(아님)
매직 스쿨버스! 키즈 시리즈다. 매직 스쿨버스도 연령별로 뭐가 굉장히 많던데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이 키즈 버전. 비룡소에서 올해 개정판이 나왔는데 편집만 손 본 것이고 이전 판과 거의 달라진 게 없어서 개똥이네 온라인을 통해 중고로 구매했다. (이것도 코로나발 충동구매다) 작년 언젠가 이로님댁 둥둥이가 넷플릭스에서 잘 본다고 해서 바당이도 보여준 적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 옥토넛처돌이던 시절이라 절대 안 본다고 해서 까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겨울 과학전집 고민하는 글에 여러분들이 추천해주셨었는데 우리 동네 중고책방에서는 거의 매입이 되지 않는지 실물을 보기 힘들었고 정보가 전무한 입장에서 화면으로만 보기엔 그림체나 페이지 구성 등이 너무 올드한 느낌이라(사실 학령기 정도의 아이들이 읽는 학습만화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동안 바당이가 갑자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버전의 애니메이션에 빠지게 되면서(사실 흉내문어가 나오는 부분의 영향이 컸다. 옥토넛처돌이에겐 모든 것이 옥토넛이냐 아니냐로 필터링 되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책도 사보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올드한 느낌이 있긴 해도 책의 구성이나 스토리텔링, 캐릭터들은 참 좋은데 아직 바당이에겐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되서다. 한참 등원 안하고 집에 있던 봄에는 꽤 관심을 가지고 하루에 3-4권씩 읽었었는데 금방 시들해지기도 했고 사실 읽어주면서도 ‘근데 얘가 이런 수준의 문장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게 맞나?’란 생각도 많이 했었다. 여튼 킵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4. 실험키트를 샀다!
https://twitter.com/_inbetweeener/status/1220205063001403392?s=20
사실 바당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이거다. 전집 안 사기로 최종적으로 마음을 굳힌 건 바당이 재우고 맨날 둘이서 전집 뭐 사지?? 하다가 남편이 낸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남편의 실험실 짬빠(?)가 있으니 믿어볼만 했고. 여튼 남편이 이런 키트들을 구입하고 나름 Home LAP for kid 프로그램이라고 꾸려서 일주일에 2-3번 정도씩 이런저런 실험을 하며 보냈다. 제일 좋아했던 건 식용색소를 이용해서 물감 만들었던 거랑 춤추는 스파게티 실험, 그리고 역시 화산폭발! 반응이 좋았고. 우유 위에(?) 그림을 그리던 것도 재밌어했다. 랩세트 중 하나에 간단한 실험카드같은 게 들어있어서 그걸 참고하기도 했다. 사실 바당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실험들이 좀 제한적이다 보니 비슷비슷한 면도 있었다고 하는데 바당이는 매번 가운 챙겨입고 만들어준 명찰도 꼭꼭 달고 고글도 쓰며 아주 진지하게 임했었다. 과학실험 하기로 약속했던 날은 자꾸 7시에 일어나서 힘들었던 기억.
과학실험은 6월 등원 후로 잠정 중단하면서 남편이 시즌2를 하겠다고 약속해 둔 상태인데 바당이가 가끔씩 진도를 체크한다. 어디까지 준비했어? 얼마나 기다려야 돼? 이런 식으로. 여튼 그러던 찰나에 넷플릭스 키즈 오리지널 컨텐츠로 <에밀리의 유쾌한 실험실>이라는 시라즈가 업데이트된 걸 보고 이걸 한 번 봐보자!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있음 응용해보자! 하고 있는 중이다.
길고 길었던 과학전집고민사는 올해 봄에 이렇게 막을 내렸고 바당이는 몇 가지 과학 지식을 뽐내는 어린이 과학자로 자라고 있다. 유명한 과학전집들을 사진 않았지만 아이의 호기심은 위의 방법들만으로도 그럭저럭 잘 채워지고 조금씩 커지고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빛은 왜 액체도 아닌데 움직여?!","로션은 액체인가 고체인가...?"같은 제법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아니 근데 이런게 궁금하단 말야? 난 살면서 한 번도 궁금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신기하다...바당이가 얘기해서 처음으로 생각해봄...)
여튼 워낙 ‘꼭 사야될 것 같아!’ ‘안 사면 큰일날 것 같아!’ 라는 말들이 지배하는 시장이라 '안 사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좀 보태고 싶었다. 그리고 올해 초 바당이의 집중 공략 질문이랄까 호기심의 방향이 과학적인 영역에서 살짝 달라졌었는데 다음 편에선 이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